교육간담회 기록

기독교적 성교육은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다루지 말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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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 성은 기호나 선택의 문제가 아닌, ‘절대적’인 가치의 영역이다.
  • 선호나 취향과 같은 상대적인 성의 가치가 아니다. 나의 성, 너의 성, 그녀의 성, 그의 성 등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이라면, 상품화되기 쉽고, ‘너는 그렇게 살아. 나는 이렇게 살게.’ 의 태도를 취하게 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 성은 ‘생명 존중’과 같은 절대적인 위치와 가치를 지닌다. 꽃이 예쁘다고 해서 함부로 꺾지 않는 것처럼, 내가 화가 난다고 해서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처럼, 성 또한 나의 기분이나 의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무엇이 아닌,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영역이다.

2.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 다음 세대들, 특히 중학교 이상의 학생들에게 ‘성’에 대한 (학교와 가정에서 지겹게 들어온) 선과 악의 개념은 너무 진부하고 못 들어줄 것이 되어버렸다.
  • 시대가 급변하고, 문화와 인식이 엄청나게 다양해지는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며 가르쳐야 할까?
  • 릴스, 숏츠, 틱톡 등의 ‘챌린지’, 춤 등은 선한가? 또는 악한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중앙선을 그어주자. ‘여기까지는 괜찮아.’ ‘여기부터는 네 자신을/상대방을 해하는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기준. 그것을 알려주자.
  • 그렇다면 그 중앙선은 어디일까? 행동이나 노출의 수위도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그 행위를 하는 의도를 짚는게 더 근본적이다. 돈을 위해서, 관심을 위해서, 또는 갖고자 하는 무엇을 위해서 무분별하게 그 행동을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 나 자신의 가치는 그런 것으로 판단되거나, 값이 매겨지지 않는다. 아니, 그 무엇도 나의 가치를 치환할 수 없다. (feat. 좋아요를 받지 못한데서 오는 수치심 → 우울증, 극단적 선택 …)
  • 릴스이건 숏츠이건 무엇이건 내가 어떠한 거대한 문화와 맥락에서 그 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알게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소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우자.

3.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할까?

  • 잘못된 성지식 → 남자는 정복욕구, 여자는 수동적인 자세를 학습하게 되었음
  • 올바르며 실제적인 성 지식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콘돔을 나눠주는 교회?)
  • 마릴린 먼로 이야기, 우리가 성적 매력을 느끼는 어떤 특징이 사실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창작된 결과물일 수 있다. (엉더이즘, 어깨 깡패, 큰 키 …)
  • 부모님에게, 옆집 어른에게, 교회 집사님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로부터 배울 것인가? 누구나 다 알지만 쉬쉬하는 분위기가 수치심을 불러 일으킴은 물론, 사건/사고를 만들고, 곪아 터지게 할 수 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들에게 성에 대한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플리마켓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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