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할까? 세례, 회심, 거듭남, 구원의 확신, 주일 교회 출석, 교회 봉사, 기도생활, 성경 묵상, 제자훈련, 성경공부, 집사, 장로, 권사 그런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은 전혀 신자답게 살아가지 않는가?

  1. 분리된 신앙과 삶: 이원론 신앙
  2. 윤리 결핍의 교리지상주의
    • 성육신, 동정녀 탄생, 십자가 대속교리, 부활신앙을 확고하게 고백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좋은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단정에 불과하다. 교리지상주의(dogmatism) 사고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교리를 철석같이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정작 십자가 고난을 즐겁게 감내하며 참여하는 제자도의 길에 따 살지 않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정작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상당히 많다.
  • ‘오직 믿음으로만’의 오해
    • “값싼 은혜”의 교리로 변질,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 도덕 무용론 or 도덕 폐기론
  • 인간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 교리의 잘못된 이해
    • 인간은 비록 부패하였지만,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훼손되었으며, 그 잔여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죄로 인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며,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양심적 기능을 유지한다. 다만, 그러한 선행 능력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
  • 내세 종말관
    • 현세를 부정하고 다가올 천국을 대망하는 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신속히 탈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 피안적 종말관
    • 하나님 나라는 저세상에서만 실현된다는 사고.

■ 사적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 신앙의 목표는 개인구원과 개인 경건이다. 예수 믿는 이유는 구원받고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으며, 죽은 다음 천국 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한다. 심령의 평안, 가정의 평안, 만사 형통

한국교회가 경계해야할 두 가지 요소 : 이원론과 세속화

  1. 이원론적 신앙
    1. 믿음과 행함과 이원화
  • 행위와 분리된 구원중심의 신앙
    •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는 있지만, 구원받은 신자로서 어떻게 세상 속에서 성경적 원리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교회 안에서, 사회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등의 문제는 가르치지 않는다.
  • 신앙과 삶의 불일치
    • 교회는 성장했고, 기독교 인구는 늘어났고, … 행위 없는 신앙, 도덕이 결여된 신앙이 더 문제다.
  • 교회와 세상의 이원화
    • 목회자가 원하는 성도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 그리 교회봉사에 충실한 ‘교회안의 그리스도인’이다. ‘예배에 목숨 걸라’고 말하면서, 직장과 일, 일상의 삶, 사회의 공적 자리에서 상식과 교양, 도덕성을 갖춘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일에는 거의 관심조차 없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극복하지 못하였으며, …사회적 제자도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데 실패하였다.
  • 성속이원론 :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교회 밖의 세상은 죄악된 곳.
  • 영육이원론 : 영적인 것은 거룩하고 고상하나, 육적인 것은 죄스럽고 악하다는 사고다.
  1. 세속주의적 신앙: 문제는 이원론이 아니라 세속화다.
  • 이원론이 물러가고 세속화 신앙이 도래했다. 세속화의 도래로 미래의 저 천국은 지금 여기의 현세 천국으로 바뀌었으며, 영적인 부요함은 물질의 부요함으로 대체되었고, ‘영혼의 구원’, ‘몸의 건강’, ‘범사에 잘됨’과 같은 번영신앙의 요소들은 왜곡될 해석의 여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총체적 구원(wholistic salavaiton)‘으로 포장되어 설파되기에 이르렀다.
  • 세속화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우리는 세상 속에 머물러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 우리의 신앙이 초월성은 내팽개치고, 내재성에만 치닫거나, 내세의 희망은 망각한 채 현세서의 풍요와 번영만을 추구하거나, 이웃과 타자들이 겪는 비참함에 무감각한 채 나만의 행복과 형통만을 추구한다면, 그러한 신앙은 그야말로 물질구원주의와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아 행복주의 신앙이며,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교회 친구에게 보내는 세속화와 세속주의 기독교에 관한 글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현대인의 관점은 ‘존재적 인간’에서 ‘소유적 인간’ 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세속화된 사회가 도래하자,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 지탱해 왔던 초월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의미부여가 거의 사라져버리고, 오직 현세에서 행복과 성공과 번영만이 중요한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부자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자녀교육, SKY캐슬, 부동산, 주식 등… “내가 더 욕망해도 괜찮죠?” 부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그러나 부를 탐닉하는 것은 죄다. 물질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주의적인 인간으로 사는 것은 죄다. 섹스나 쾌락 자체가 죄악이 아니다. 그러나 쾌락주의적으로 사는 것은 죄다.

제2강. 분리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어야 한다-분리유형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와 세속 질서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적대적인 분리주의, 포용적인 적응주의, 문화 완성적인 종합주의, 또는 변증법적인 변혁주의의 태도를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