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가르침과 배움 4-5장 요약

4장. 영혼의 움직임

p111.

제롬 브루너는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은 ‘문화의 생활 방식을 대표하는 중요한 구현체이지, 단지 그 분화를 위한 준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앙이 기존의 가르침의 패턴에 대한 불만을 키우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이번 장)와 그 자리에 더 나은 것을 설계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는지(다음 장)에 대해 좀 더 명확히 드러내기를 희망한다.

파리에서의 죽음

“선생님, 죽는 것이 두려우세요?”

“우리는 무서워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늘 이야기해요.”

그동안 프랑스어 연구 논문을 읽으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학생들의 뇌를 언어적으로 투입된 정보를 처리하는 언어 습득 장치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학생들을 좋은 언어 모델에 최대한 노출시키고 목표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할 기회를 극대화하여 유창하게 프랑스어를 구사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형태소를 처리하는 인지 시스템처럼 행동해야 했다.

이것은 사람이 무엇이고, 교육이 무엇이며, 학습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는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제대로 고민할 수 없음을 곧 깨달았다.

당혹감을 느낄 때

데이비드 브리지스는 교육철학이란 느껴진 혼란을 명확히 하여 그것을 더 잘 이해하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는 내가 가르치는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때는 다소 이분법적으로 접근했던 경향이 있다. ‘기독교인’은 내 생각, 믿음, 헌신, 그리고 열정 등 나와 함께 내가 가져온 것들을 묘사하는 단어이지만, ‘교육’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존 관행, 정책, 이데올로기로서, 내가 들어가고 있는 결함 있는 세상이면서 동시에 변화를 돕고 싶은 세상이었다. 나(기독교인)는 다른 사람이 설계한 (타락한) 교육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상상해 보라. 속도를 늦추고 누군가를 찬찬히 보거나 거의 말을 듣는 데 진정으로 집중하여 시간을 할애할 때, 그 사람이 당신의 환경의 일부로서의 한 요소나 성공적으로 탐색해야 하는 기준점이 아니라, 이야기를 가진, 희망과 욕구를 지닌, 취약한 개별성이 ‘보여지는’ 독특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는 일 년 동안 내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내가 조직한 수업 과정의 참여자로서 외에는 내가 정말로 그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자아와 타인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츠빙글리에게도 죄는 자기애에 불과했다. 죄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이들과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하나님을 육체적이고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이익이 동기가 되어 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예배는 자기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자기 사랑,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하나님과 타인, 외부로 향하는 영혼의 움직임이었다. 즉, 그들을 존중하되,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으로서 경외하는 것이었다.

죄는 내가 스스로를 가치 있는 것의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때 발생한다.

반면에 은혜는 나를 자유케 하여 예배할 수 있게 해주며, 예배는 나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페다고지적 실천 그 자체의 윤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미지

첫번째는 시중에 나와 있는 교과서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이 다다를 수 없는 수준의 부와 소비를 전제로 하는 이미지로 온통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 고민은 …사람들의 이미지가 충분히 풍부한 서사적 맥락에 놓여져 강렬하고 복합적인 인격성이 드러나거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희귀했다.

말하기

사회적 예절과 소비 거래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교과서 속 캐릭터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충분히 인간적인 느낌을 주지 못했다. 교과서를 가득 채운 단어와 문장은 학생들에게 언어적 모델을 제공하고 그들의 미래 역할을 상상하게 했다.

이것이 내 이름입니다.

이것이 나의 취미입니다.

이것이 어젯밤에 내가 한 일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획입니다.

이틀 동안 묵을 방을 원합니다.

함부르크행 티켓을 구매하고 싶습니다.

로스트 치킨 주세요.

새 수건이 필요합니다.

교실에서 우리가 하는 말의 패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상된 세계와 우리가 그리는 미래에 대해 무엇을 암시하는가?

내재된 도덕적 세계

내가 언어를 가르치면서 학교에서 접하고 배운 실천들과 행동 패턴들, ‘미시적 상호 작용의 관습들’은 무작위로 존재하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더 큰 이야기에서 나왔다. …그 이야기에는 세속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의 성장과 통일된 문화적 내러티브로서의 종교적 쇠퇴, 그리고 학교 교육과정에서 점점 더 늘어나는 세뇌와 종파적 이해관계의 조장을 피하고자 하는 강력한 우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유 교양 학습과 대조해 실용적 유용성에 대한 강조가 증대된 것과 물질적, 경제적 필요, 개인의 이동성과 개인적 성공 추구라는 측면에서 ‘실용적’이라는 관점도 포함되었다.

배우고자 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나 문화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본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로 휴가를 갔을 때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사회적 차원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는 프랑스에 가서 물건을 사고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다.

기독교사가 된다는 도전은 단지 기독교적인 것을 말해야 하는 때를 알아차리거나,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순응하여 따르고 있는 ‘이 세상의 패턴’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신앙과 실천

우리의 페다고지에는 공감이나 존중 혹은 영적 성장을 꾀하고자 설계된 부분이 거의 없었다.

구속redemption은 자기애로부터 예배로 옮겨 가는 ‘영혼의 움직임’을 포함하는데, 이는 삶의 실천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나는 성공적인 경제적 경쟁이라는 선, 소비자적 자아의 번영, 그리고 실용주의를 중요시하는 교육과정 내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나의 자아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적 주제에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찰과 토론을 위한 질문

5장. 동기 부여된 설계

p137. 불만족은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 다음 질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이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가치관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날 때 양심을 자극하는 데 그칠까, 아니면 새로운 실천을 형성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훌륭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페다고지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관광객을 배출하는 데 더 적합해 보였다. 우리의 실천은 우리의 수사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전략 수립

  1. 우리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인을 향해 환대의 공간을 열어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2.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낯설다는 것과 우리도 그들의 환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호스트이자 게스트다.

▶ 사람

첫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서의 사람과 조우하도록 하는 데 의도적인 초점을 두기를 원했다. 그것은 번쩍이는 소비자의 표면적인 모습을 넘어서 깊이 있는 인식을 제공할 수 있는 이미지, 텍스트, 영화 등을 중심으로 학습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했다.

▶ 이야기

둘째, 이것은 내가 모델링하고 가르치는 언어의 종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언어 모델은 거래적인 영역을 넘어서 확장되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우는 것은 자신이 요청하는 바를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 도덕적 중요성

셋째, 남들에게 배우고 그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두려면, 정서적으로 영향을 주고 도덕적, 영적 도전이 있는 가르침들의 조치들이 필요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휘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도 닿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이 정서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할 방법이 필요했다.

▶ 세심한 주의

넷째, 이러한 종류의 참여를 지원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을 실천하도록 가르치고자 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를 기울임과 기꺼이 경청하려는 의지였다. …나는 학생들이 남의 말과 삶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만날 때 판단 속도를 늦추고 판단을 적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백장미 (White Rose, 저항 단체)

애매하고 모호한 사진과 개방형 질문을 결합하여, 초기 인식을 연속적으로 수정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는 생각하는 속도를 늦추는 순간을 만들어, 처음에 내린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한다.

이 질문의 순서는 무작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 가지 뚜렷한 단계로 진행한다. 첫 번째 질문 리스트는 사물, 수량 및 외형에 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 리스트는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를 사물의 세계에서 인간 행동의 세계로 이동시킨다. 세 번째 질문 리스트는 사진 속 인물의 주관적인 관심사에 집중한다.

질문은 점차 외부에서 내부로, 사물에서 인물의 의도와 경험으로 이동한다. 이 순서를 통해 학생들은 그림 뒤에 숨겨진 이야기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한다.

페다고지적 움직임은 변화를 보장하는 기술이 아니다. 단지 초대할 뿐이다. 우리의 페다고지는 암묵적으로 학생들을 그들 자신의 신념과 욕망이 자신의 성장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물질적 객체로 위치시키지 않아야 한다. 페다고지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집’과 같다.

동기 부여된 실천

조지 레이코프, 인간의 범주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 첫번째 : 논리적 단계들이 모든 새로운 움직임을 반드시 출발점에 연결해야 한다.
  • 두번째 : 관계가 임의적이고 실제적인 연결이 없으며, 그저 무작위적 겹침일 뿐
  • 세번째 : 마음이 사물을 범주화하는 방식, 레이코프는 이러한 사고의 확장이 종종 논리적으로 예측 가능하지도 않고, 자의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동기 부여된’것이라고 제안한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연결을 만들도록 강요받거나 영감을 받거나 부적절한 방식으로 편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측 가능한 논리적 필연성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통하고 타당하다면 범주의 확장은 ‘동기 부여된’ 것이다.

가르치는 실천은 동기 부여하는 신념과의 관계에서 이와 다소 유사하다. 실천은 우리를 세계와 타인과 연결시켜 주어 참여하게 하며, 종종 즉흥, 조절, 수정,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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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파악

“물론 언어 교수에서는 기독교적 접근이 가능할 거야. 하지만 내 수업에서는 효과가 없을거야.”

더불어, 가르침이 ‘효과적인지’ 하는 질문은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명확한 아이디어를 배경으로 할 때만 의미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츠빙글리에게도 죄는 자기애에 불과했다. 죄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이들과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하나님을 육체적이고 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자기 이익이 동기가 되어 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예배는 자기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자기 사랑,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하나님과 타인, 외부로 향하는 영혼의 움직임이었다. 즉, 그들을 존중하되, 다른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으로서 경외하는 것이었다.

성찰과 토론을 위한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