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내가 살아가는 복음은 무엇인가?
부제
복음을 더 크게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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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복음’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도,
세례를 받을 때도,
예배를 드릴 때도,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것은
때로 가장 쉽게 작아집니다.
복음을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게 됩니다.
잠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누군가
“복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충분한 여백)
아마도
여러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
“죄 사함을 받는 소식.”
“구원의 소식.”
모두
복음의 중요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처음 선포하실 때,
어떤 말씀으로 시작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장면으로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이번 시간의 질문
나는 복음을 너무 작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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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
내가 처음 들은 복음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복음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그때 나는
복음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 죄를 용서받는 소식
□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식
□ 예수님을 믿는다는 소식
□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소식
□ 잘 기억나지 않는다.
□ 기타
이제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오늘의 나는
복음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복음은
주일에만 듣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월요일 교실에서도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봅시다.
복음은
내 삶을 어디까지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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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3
Experience
복음은 ‘언젠가’의 이야기일까?
우리는 종종
복음을 미래의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물론
그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며
계속해서
오늘을 말씀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외로운 사람을 품으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 내셨습니다.
복음은
죽음 이후만을 위한 소식일까요?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소식일까요?
오늘 함께 읽게 될 성경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를 다시 멈추게 합니다.
(다음 페이지)
Scripture
첫 번째 읽기
마가복음 1장 14–15절
이번에는
예수님의 첫 선포를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짧은 본문입니다.
그래서
두 번 읽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선포하시는지 살펴보십시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살펴보십시오.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어떤 이야기와 함께 말씀하고 계십니까?
본문을 다 읽은 뒤
15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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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lation 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하나님 나라’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생각하면
십자가를 먼저 떠올립니다.
부활을 떠올립니다.
죄 사함을 떠올립니다.
그 모든 것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선포하실 때,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다시 왕이 되신다는 선언입니다.
세상이
다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인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먼 훗날 시작되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나라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한 가지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나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소식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삶으로 나를 부르시는 소식입니다.
잠시 멈춤
나는 지금까지
복음을 ‘믿어야 할 내용’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살아가야 할 삶’으로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충분한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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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두 번째 읽기
누가복음 4장 16–21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십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지 표시하며 읽어 보십시오.
□ 가난한 자에게
□ 포로 된 자에게
□ 눈먼 자에게
□ 눌린 자에게
본문을 다 읽은 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잠시 생각해 봅시다.
왜 예수님은
복음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셨을까요?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②
복음은 삶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살아 내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눈먼 사람을 보게 하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외로운 사람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복음은
교리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어딘가 먼 곳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자리였습니다.
잃어버린 존엄이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자리였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 회복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회복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잠시 멈춤
최근 나의 삶에서
복음은 무엇을 회복하고 있습니까?
나는
복음을 통해
무엇이 달라지고 있습니까?
(다음 페이지)
Theology
복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는 소식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는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단지 새로운 사실을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았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주일 예배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월요일 교실에도,
가정에도,
직장에도,
우리의 말과 선택에도 스며듭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나는
복음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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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세 번째 읽기
누가복음 19장 1–10절
이번에는
삭개오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무엇을 먼저 하셨는지 살펴보며 읽어 보십시오.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회개를 먼저 요구하십니까?
변화를 먼저 요구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십니까?
본문을 다 읽은 뒤
10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③
복음은 사람을 먼저 만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바라보셨다고 말합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예수님은
삭개오의 과거를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먼저 지적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먼저
함께 식사하자고 하셨습니다.
관계를 시작하셨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정죄하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찾아오시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삭개오를 변화시킵니다.
삭개오는
억지로 시킨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말합니다.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드리겠습니다.”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행동을 바꾸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의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행동은
그 삶의 열매였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전에,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잠시 멈춤
나는
복음을
규칙으로 먼저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다음 페이지)
Theology
복음은 공동체를 회복합니다.
삭개오의 변화는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려준 것은 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너졌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시 함께 살아갈 길을 열었습니다.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공동체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변화시키고,
마을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방식은 권력이 아니라 관계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시고,
사람을 부르시며,
공동체를 세워 가십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를 다시 세워 갑니다.
잠시 멈춤
복음을 믿은 이후,
내 주변에는 어떤 회복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나만의 믿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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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네 번째 읽기
요한복음 20장 19–22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먼저 주시는지 살펴보며 읽어 보십시오.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을 보내시기 전에
먼저 평안을 말씀하셨을까요?
왜 먼저
성령님을 주셨을까요?
본문을 다 읽은 뒤
21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④
복음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가라.”
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평안을 주셨습니다.
먼저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교를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던 삶을
계속 살아가도록 보내셨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세상에서 데려가는 소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세상 속으로 다시 보내시는 소식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살아내고,
예수님의 용서를 살아내고,
예수님의 정의를 살아내며,
예수님의 희망을 살아내도록 보내시는 소식입니다.
교사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실에서 도망치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교실로 다시 보내십니다.
학생들 곁으로,
동료 교사들 곁으로,
학부모들 곁으로 보내십니다.
복음은
교실을 떠나게 하는 소식이 아니라,
교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나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소식인 동시에,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소식입니다.
잠시 멈춤
오늘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보내고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복음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페이지 13
Theology
복음은 믿는 것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살아갑니다.
이 둘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삶으로 이어지고,
삶은
다시 믿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단지
죄 사함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곳에서는
용서를 선택하고,
정직이 필요한 곳에서는
정직을 선택하며,
약한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그 사람 곁에 서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복음이 삶이 되는 모습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 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새롭게 하십니다.
잠시 멈춤
나는
복음을 설명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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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복음을 이해하는 스펙트럼
① 함께 고백하는 믿음
먼저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
복음은 오늘도 사람을 새롭게 하며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이 고백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붙드는 믿음입니다.
② 대표적인 신학적 스펙트럼
교회는 복음을 다양한 관점에서 풍성하게 이해해 왔습니다.
| 주제 | 스펙트럼 |
|---|---|
| 복음의 중심 | 개인의 구원 / 하나님 나라 |
| 구원의 이해 | 칭의 / 성화 / 영화 |
| 복음의 실천 | 전도 / 제자도 / 사회적 책임 |
| 하나님 나라 | 이미 시작됨 / 아직 완성되지 않음 |
이러한 차이는 복음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풍성함을 함께 배우기 위한 다양한 강조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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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③ 복음을 살아가는 여러 층위
복음은…
믿는 내용일까요?
그렇습니다.
복음은 믿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말하는 소식일까요?
그렇습니다.
복음은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하는 소식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이야기일까요?
그렇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가정을,
교회를,
세상을 향해 흘러갑니다.
미래의 약속일까요?
그렇습니다.
복음은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복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기도 합니다.
잠시 멈춤
나는 지금까지
복음을 어느 한 모습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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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④ 교사의 삶
교사는
매일 학생들 앞에 섭니다.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칩니다.
기술을 가르칩니다.
삶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교사의 말보다
교사의 삶입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은
복음을 설명하는 교사보다,
복음을 살아가는 교사를 통해
복음을 먼저 만납니다.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배워 가는 사람,
정직을 선택하는 사람,
약한 사람의 곁에 서는 사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성공을 통해
복음을 배우지 않습니다.
교사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보며
복음을 배웁니다.
잠시 멈춤
내 학생들은
나를 통해
어떤 복음을 만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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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⑤ 다시 함께 고백합니다
복음에는
다양한 설명이 있습니다.
다양한 신학이 있습니다.
다양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붙드는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복음은 나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소식인 동시에,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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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tion
복음은 교실에서도 살아갑니다.
복음은
주일 예배에서만 들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
교실 문을 열 때에도
복음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학생의 실수를
다시 품어 주는 순간에도,
정직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포기하고 싶은 아이를
한 번 더 기다려 주는 순간에도,
복음은 살아갑니다.
우리는
복음을 학교에 가져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학교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교실은
복음을 설명하는 장소가 되기 전에,
복음이 드러나는 삶의 자리가 됩니다.
잠시 멈춤
내일 학교에서
복음을 말하지 않아도,
복음이 드러날 수 있는 한 가지 모습은 무엇일까요?
(충분한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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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의 질문
강의를 시작하며
우리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복음을 너무 작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같은 질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나는
복음을 주일의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복음을 죽음 이후의 소망으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복음을 설명해야 하는 내용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더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는 어디에서 복음을 살아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