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강
나는 왜 교사인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사의 삶
들어가며
“저는 교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자신을 여러 방식으로 소개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는 국어를 가르칩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일합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함께 붙들어 보려 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보다 먼저,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인가?
교사가 된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이들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권유로 이 길에 들어섰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이 중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질문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이 자리에 두셨을까? 그리고 이 질문은 다시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오늘 우리는 ‘교사의 소명’을 직업에 종교적인 의미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성경 전체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일과 그 일에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시간의 질문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Experience
나는 왜 교사가 되었을까?
처음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때를 떠올려 봅시다. 무엇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습니까?
□ 아이들이 좋아서
□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 누군가의 권유로
□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어서
□ 특별한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 잘 모르겠다
□ 기타
그때의 이유와 오늘의 이유는 같습니까? 아니면 조금 달라졌습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교사가 되었다가 지금은 한 사람의 삶에 함께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직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두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분명한 소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쳐서 그 의미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오늘은 처음의 대답을 지키려 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 봅시다.
지금 나는 교사를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직업입니까, 소명입니까,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 살아 내는 자리입니까?
나의 소명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소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바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나와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였습니까? 베드로는 처음부터 담대한 사도였습니까? 제자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망설임과 실패가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명은 특별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소명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합니다. 다만 모세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왜 그를 부르셨을까요? 모세 자신의 위대한 성취를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루고 계신 더 큰 일을 위해서였을까요? 이 질문을 오늘의 교사에게까지 가져와 보겠습니다.
Scripture
출애굽기 3장 1–12절
불타는 떨기나무 장면을 읽을 때 우리는 신비로운 사건 자체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이번에는 떨기나무보다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에 집중해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해야 할 일입니까, 가야 할 곳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자신에 관한 무엇입니까?
본문을 다 읽은 뒤 12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Revelation
소명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소명을 이야기할 때 자주 나부터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사명을 맡아야 할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으면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 모세가 그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습니다.
모세의 소명은 모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고 계셨고, 모세는 그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소명의 중심에는 ‘나의 특별함’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십니다.
그래서 소명을 묻는 질문도 달라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Theology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선교보다 큽니다.
‘선교’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먼 나라로 떠나는 일을 먼저 떠올립니다. 해외 선교, 전도, 교회 개척, 선교 프로그램과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바라보면 선교는 이것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성령님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 가운데 살아가도록 부르셨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람의 계획보다 먼저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Christopher J. H. Wright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라는 큰 이야기 속에서 읽을 것을 제안합니다. 그의 관심은 성경이 선교를 얼마나 많이 말하는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부르시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과 열방이 그 이야기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함께 묻습니다. 2025년에 출간된 제2판에서도 이러한 선교적 해석학의 틀을 확장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맡은 역할을 강조합니다. (ivpress.com)
그러므로 선교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로 생각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선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일에 하나님의 백성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Scripture
창세기 12장 1–3절
이번에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약속하시는지 표시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이 아브라함에게만 머무는지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복을 받기 위해서만 부름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까?
Revelation
하나님은 복 받은 사람을 통해 복을 흘려보내십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이유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흘러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바깥을 향한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 동시에 그 은혜가 흘러가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교사의 삶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지식만 주고 있습니까? 좋은 성적을 얻는 방법만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Theology
학교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어떤 자리인가?
여기서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곧 선교다’라고 너무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교사라는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본질적으로 더 거룩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부름받은 삶이며, 교사라는 직업은 그 부르심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학교가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실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움과 성장의 과정이 있고, 공정함과 불공정함이 있습니다. 관계가 깨지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합니다. 약한 사람이 밀려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현실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를 교회 안에서만 일어나는 어떤 활동으로 좁혀 버리면 하나님의 세계 역시 작게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학교에 교회 프로그램을 들고 들어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학교를 살아가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학생을 대하는 방식, 정의를 선택하는 방식, 약한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 갈등을 다루는 방식, 동료를 대하는 방식, 교육 자체를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삶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Scripture
출애굽기 4장 1–17절
다시 모세에게 돌아가 봅시다.
이번에는 모세의 대답에 집중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지만 모세는 곧바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모세의 말 가운데 오늘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을 찾아보십시오.
□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 저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본문을 읽은 뒤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요?
Revelation
하나님은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부르십니다.
모세는 계속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더 잘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왜 하필 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부족함을 없는 것처럼 만들지 않으십니다. 모세를 갑자기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바꾸지도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 자신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소명은 자신감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은 “너는 충분히 능력이 있으니 가라”라는 뜻이 아니라, “네가 부족하더라도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라는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부르심입니다.
나는 무엇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부족함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더 크게 신뢰하고 있습니까?
Scripture
출애굽기 19장 3–6절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백성이 되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너희는 무엇이다’라는 표현과 ‘너희는 무엇을 하게 된다’라는 표현을 찾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만 복 받게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Revelation
하나님은 한 사람을 넘어 한 백성을 부르십니다.
여기에서 소명은 다시 넓어집니다.
모세는 혼자 부름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섬기는 대상은 이스라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선택받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세우신 것은 세상과 단절된 특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길을 살아 내며,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교사의 소명도 조금 달라집니다. 교사는 혼자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소명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고, 동료와 함께 일하고, 학교의 공동체를 세워 가며, 다음 세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됩니다.
소명은 “내가 무엇을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에 나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넓어집니다.
Scripture
민수기 11장 10–17절
이번에는 모세가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말하는 장면을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무엇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는지 찾아보십시오. 백성 때문입니까? 사명 때문입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무게 때문입니까?
16–17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떤 해결책을 주십니까?
Revelation
하나님의 선교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모세는 모든 백성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만 더 버텨라”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칠십 명의 장로를 세우시고, 모세에게 주셨던 영을 그들과도 나누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세 한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이 장면은 교사의 삶에서도 중요합니다. 좋은 교사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학생과 함께 배우고, 동료와 함께 고민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학부모와 함께 아이를 바라보고, 교회와 함께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큰 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을 완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Spectrum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는 스펙트럼
먼저 우리가 함께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은 세상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과 회복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부르셔서 그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가 드러났습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 가운데 살아가도록 이끄십니다.
-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선교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는 여러 강조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교의 시작을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강조하기도 하고 교회의 파송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복음 선포를 중심에 두기도 하고 하나님 나라와 삶의 회복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선교의 영역을 교회와 전도에 집중하기도 하고 사회와 문화, 창조세계까지 넓혀 이해하기도 합니다. 개인의 구원을 중심에 두기도 하고 공동체와 열방을 함께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서로를 지워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교가 우리가 익숙한 하나의 영역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선교를 한 가지 활동으로만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과 삶, 복음과 사랑, 교회와 세상, 개인과 공동체, 현재와 미래를 함께 바라볼 때 하나님의 선교가 더 넓게 보입니다.
Formation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사의 하루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삶은 특별한 일을 시작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립니다. 수업 준비, 회의, 생활지도, 공문, 상담처럼 하루의 일정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그 전에 질문 하나를 품어 보면 어떨까요?
“오늘 하나님께서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내가 학교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내가 만날 학생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동료와의 관계에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필요는 무엇인지 살펴보게 합니다.
선교적 삶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세는 삶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차리고, 그분이 일하시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학생을 보면 우리는 쉽게 ‘지도해야 할 사람’을 생각합니다. 동료를 만나면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을 생각하고, 학부모를 만나면 ‘상담하거나 협력해야 할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는 한 가지 시선을 더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내게 맡기신 이웃입니다.
이번 주에는 학생·동료·학부모 가운데 한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평소에는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며 물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실까?”
“나는 오늘 이 사람의 이웃으로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작은 섬김 하나를 선택해 봅시다.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바라보고, 그 사랑에 어울리는 작은 행동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선교는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상의 시선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묻고, 하루 중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작은 사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소명의 기준을 다시 세워 봅시다.
교사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과를 바라봅니다. 학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수업이 얼마나 잘되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학생과 학부모와 동료에게 얼마나 인정받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소명을 그것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공은 모든 것을 내가 이루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실함은 모든 결과를 내 손에 쥐지 않고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완성되는 장면을 직접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삶을 실패로 끝맺지 않습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학생의 인생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심은 모든 씨앗의 열매를 볼 수도 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내가 떠난 뒤에 더 크게 성장할 것이고, 내가 건넨 작은 말 한마디를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결과를 모두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나의 소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공한 교사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신실한 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이번 주에 시도해 봅시다.
매일 학교에 들어가기 전, 잠깐 멈추어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오늘 하나님께서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주에는 학생·동료·학부모 가운데 한 사람을 정해 보십시오. 그 사람을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내게 맡기신 이웃’**으로 바라보며 작은 섬김 하나를 선택해 보십시오.
하루를 마칠 때는 “오늘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보다 “오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어디에서 보았는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성찰
TIMUP2 영적 영역을 시작하며 우리는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물었고,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를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보았고, 성령님은 누구신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함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왜 교사인가?
처음에는 이 질문이 나의 직업과 소명에 관한 질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조금 더 큰 이야기가 보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소명은 내가 만들어 내는 특별한 사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하시는 일 가운데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신실하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파송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딘가 특별한 곳으로 떠나야 할까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까요? 더 많은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내일 아침에도 다시 교실 문을 엽니다. 다시 학생을 만나고, 동료를 만나고, 수업을 하고, 생활지도를 하고, 학교라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겉으로 보면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자리를 바라보는 눈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학교는 하나님과 무관한 공간이 아닙니다. 학생은 내가 관리해야 할 대상만이 아닙니다. 동료는 업무를 함께 처리해야 할 사람만이 아닙니다. 학부모 역시 행정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람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들의 삶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나는 그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 교실 문을 열기 전에 다시 질문해 봅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봅시다. 그 사람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내게 맡기신 이웃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작은 사랑 하나를 선택해 봅시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의 거대한 계획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보내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세상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보내심을 받습니다. 모든 학생을 성공시키기 위해 보내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보내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다음 세대 가운데 계속 이어지도록 우리의 삶을 내어놓기 위해 보내심을 받습니다.
마지막 질문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겨 봅시다.
내일,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누구를 더 크게 사랑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을 정답으로 바꾸지는 마십시오. 해야 할 과제로 만들지도 마십시오. 그저 내일 아침 교실 문을 열 때 마음에 품고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그 답을 찾아가 봅시다.
마지막 기도
하나님,
저를 교사로 살아가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제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성과에 마음을 빼앗기고, 비교에 지치고,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세상에 참여하는 사람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제가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학생을 성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게 하소서. 학교를 단지 일하는 곳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의 한 자리로 보게 하소서.
혼자 감당하려 할 때에는 공동체를 기억하게 하시고, 지칠 때에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소서.
오늘도 먼저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제가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자리들을 알아차리게 하소서. 학생과 동료와 학부모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제게 맡기신 이웃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그들을 향해 작은 사랑을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
모세와 함께 걸으셨던 하나님,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하나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성령님으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하소서.
내일 다시 교실 문을 열 때 성공보다 신실함을 기억하게 하시고, 결과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며, 내가 모든 것을 완성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계속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크게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리더용 TIP
이 강의의 핵심은 ‘교사의 직업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교사는 특별하고 거룩한 직업이다”라는 결론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도록 유의해 주십시오.
중요한 것은 교사라는 직업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삶이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시선을 넓히는 틀로 사용하십시오.
참가자들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무엇으로 부르시는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그 일에 참여하는가를 함께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 이야기를 성공담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모세의 이야기는 뛰어난 지도력을 배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고, 혼자 감당하지 못하며,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결국 모든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자신의 길을 마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하셨습니다.
따라서 참가자들이 “나도 모세처럼 위대한 일을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기보다, “나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십시오.
기존 원고에서도 모세의 부족함과 공동체성을 거쳐 마지막에 ‘성공한 교사’보다 ‘신실한 교사’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축은 이번 강에서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Formation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선의 훈련입니다.
이번 주에 참가자들이 붙들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아침에는
“오늘 하나님께서 학교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나는 그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를 묻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며 내게 맡기신 이웃”
으로 바라보며 작은 섬김 하나를 선택합니다.
많이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이런 시선으로 학교를 살아보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지막 파송은 부담이 아니라 ‘돌아감’입니다.
마지막에 참가자들이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부담을 안고 돌아가게 하지 마십시오.
파송은 새로운 활동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살아가고 있는 자리로 다시 보내는 것입니다.
내일도 같은 학교, 같은 교실, 같은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으로 그 자리를 다시 바라봅니다.
마지막 질문은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내일,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누구를 더 크게 사랑하시겠습니까?
그 뒤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침묵을 허락하십시오.
시간 운영안
| 순서 | 내용 | 시간 |
|---|---|---|
| 1 | 들어가며 + 교사의 소명에 대한 경험 | 10분 |
| 2 | 출애굽기 3장 + 소명과 하나님의 함께하심 | 10분 |
| 3 | 창세기 12장 + 하나님의 선교 | 10분 |
| 4 | 출애굽기 4장 + 부족함과 부르심 | 10분 |
| 5 | 출애굽기 19장 + 하나님의 백성 | 10분 |
| 6 | 민수기 11장 + 공동체적 소명 | 10분 |
| 7 | Spectrum + 선교의 다양한 이해 | 10분 |
| 8 | Formation + 이번 주 실천 | 10분 |
| 9 | 신실함에 대한 성찰 + 파송 | 10분 |
| 10 | 마지막 질문 + 기도 | 10분 |
| 합계 | 100분 |
90분으로 운영할 경우 창세기 12장과 출애굽기 19장의 설명을 조금 압축하고 Spectrum의 토의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Formation의 두 실천과 마지막 파송의 침묵은 가급적 남겨 두는 것을 권합니다.
TIMUP2 영적 영역의 마지막은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고 계시는 세상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