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축복하시며 그 이름을 두신 하나님의 집이 여기 있으니, 백성은 이 성전에 나아와서 정성껏 제사를 드리면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성전이야말로 유다 백성의 회개와 변화를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었다.

절박한 현실 (4:5-6:30)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4:23)

비교. 창세기 1장 1절.

예레미야가 보기에, 백성이 전쟁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경보를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4:22-5:21).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며 따르는 신앙은 먼 곳에서 구해 온 희귀하고 매우 값비싼 선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전부터 말씀하신 선한 일을 행하는 삶, 악을 버리고 선을 구하는 삶(암 5:14)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제물만큼 하나님께 정성을 보이기 분명한 것이 없기에, 언제든 신앙은 정성(精誠)의 종교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성전 설교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5절의 ‘정의(미슈파트)‘는 6절의 약자들, 곧 이스라엘 중 가장 연약한 집단의 억울한 피가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산다고 할 때 우리는 대개 우상숭배하지 않고 열심히 교회 다니고 성경 보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삶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작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고, 이는 가난한 이웃, 달리 도움을 청할 길 없는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부차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야훼를 섬기는 신앙의 본질이다.

야훼께서 찾으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야훼 하나님이 아닌 엉뚱한 신을 섬기는 것, 즉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심을 고취시키는 ‘경건하고 엄숙한 예식’을 빙자하여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욕망을 부추기면서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배격해야 할 ‘우상숭배’다. 수천 년 전 이스라엘에게나 지금의 우리 교회에게나 가장 강력한 대적은 재물로 구체화된 우리의 욕망이다.

성전 설교에 대한 반응

고소를 당한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주신 대로 말씀을 전한다고 말하자 “고관들과 모든 백성”(26:16)은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말한다.

  •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예언을 전했던 미가
  • 여호야김 왕이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우리야를 애굽까지 추격하여 죽인 사건
  • 고관들과 모든 백성, 장로들의 노력,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도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되는 공의와 심판의 말씀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제사와 순종

16-20절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늘 여왕 숭배가 자행되었다고 알려준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삶,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길로 걸어가는 삶을 원하셨다. 이를 보건대 21절은 하나님의 ㅁ여령에 순종하지 않고 드린 희생 제물과 번제물에는 하나님이 아무 관심이 없으니 마음대로 먹으라는 조롱 섞인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제물과 번제물의 고기를 아울러 먹으라 22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마치 하나님이 제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보일 만큼 일상의 순종이 없는 제사는 의미가 없다.

생각해 볼 점

  1.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데 앞장선 이들은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었다. 이들과 신약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오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누구일까?
  2.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말씀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않는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억울한 피가 땅에 흘려지지 않게 하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까?
    • 이러한 말씀과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 함께 놓였다는 점은 우상숭배의 본질을 달리 생각할 여지를 준다. 앞에서 다룬 내용을 참고해서 정리하며 나누어 보자.
  3. 예루살렘이 야훼의 성전이라는 고백은 어떻게 거짓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