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자료
7. 하나님의 특정한 백성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선택받음
p.281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보편성─아브라함에 대한 구약의 반향
오경.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출애굽기 9:13-16.)
…그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에 가서 온 땅이나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애굽에서도 야웨(그가 인정하기를 거부한)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바로 개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다. 바로가 ‘온 천하에’ 야웨와 같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온 천하가 야웨의 능력과 이름에 대해 들어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궁극적인 창조 목적이 나타난다. …이 동사(선포되는 것, sapar)는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선포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이방인들과 야웨의 관계를 형식적 겉치레로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온 천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이 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들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구속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목적은 온 세상을 아우른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 19:5-6)
이 본문은 출애굽기의 주축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속(출애굽)의 주도권을 묘사하는 1-18장과, 언약 수립, 율법 수여, 성막 건축 등을 묘사하는 20-40장 사이의 연결점이다. 창12:1-3처럼 그것은 또한 명령(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과 약속(이스라엘이 나머지 열방 가운데서 무엇이 될 것인가)을 포함한다. …”그 문구는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들을 포괄하는 선교와 관련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것인 세계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위임받는다.”
역사서. 신명기의 역사는 신명기의 일반적인 정서를 따라, 주로 이스라엘 자체의 이야기 및 하나님이 언약의 약속과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이스라엘이 세상을 위해 지닌 더 광범위한 의미 역시 이따금 빛난다. …대부분의 관련 본문은 온 세계가 복을 받았다고 명백히 언급하기 보다는 그들이 야웨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열왕기상 8:41-43, 60-61)
…성전을 봉헌하며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는 외국인들의 축복과 야웨의 명성이 퍼져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바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을 위해 그렇게 하시도록 구한다. …야웨를 알고 경외하는 것이 세상 만민에게 퍼져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 번째 본문(왕상8:60-61)에서 …우리는 선교와 윤리 간의 강력한 연관성을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와,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윤리적 조건 간의 연관성이다.
선지서.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이사야 19: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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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래서 이 외국인들은 단지 축복을 경험하기 위해서 올 뿐 아니라, “세계 중에 복이 되기” 위해 온다. …아브라함의 약속은 자기 복제 유전자다. 그것을 받는 사람들은 즉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특권과 사명을 지닌 사람들로 변한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로 명확하게 드러날 방향으로 이미 재정의되고 확대되고 있다. …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열방 중에 제자들을 재생산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도 이와 비슷하게 자기 복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브라함의 약속은 ‘먼저 전한 복음’일 뿐 아니라, 더욱 적합한 말로 ‘먼저 전한 대위임령’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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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p.302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 같아서 그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48:18-19)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도덕적 차원을 다시 강조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 자체 안에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포함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그것을 성취하려면 똑같은 언약적 반응을 나타내야 했다. …하나님은 또한 기존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이 본을 보인 그 길을 따라 윤리적으로 걸어가기를 열망하신다(선교적 순종). 우리는 …의와 정의에 대한 윤리적 헌신에는 아브라함적 성장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하는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실지 생각해 봐야 한다.
p.308
보편성─아브라함에 대한 신약의 반향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누가복음에 나오는 마귀의 시험은 모두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분 자신을 위해 축복하실 것인가 아닌가를 시험하는 수단으로 제시된다. 즉, 마귀의 기독론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특정한 이익을 위해 행동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들을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을 축복하시겠다는 것이다.
- 누가복음 16:19-31. 죽자마자 아브라함 곁으로 가게 되면서 고통이 끝난 가난한 거지 나사로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정의와 자비에 대해 가르치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는 당시 사람들은 부자가 분명히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을 보기는 하지만, 건너갈 수 없는 깊은 간격 너머 멀리에서만 보는 신세가 되었다.
- 누가복음 19:1-10. 삭개오 이야기. 그는 세리라는 직업(그리고 그가 그 직업을 이용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사람들에게서 거두어들인 것)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과 만남으로, 개인적으로 회개하게 되고, 율법의 기준들을 충실하게 따를 뿐 아니라, 더욱 관대한 행위를 보였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은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9절)이라고 선언하신다.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는 달리, 이 실제 인물은 이제 의로 돌아서며,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는 자리로 돌아선다.
p.332 그들이 경험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제 살아 계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다. …하나님은 계시와 구속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을 통해, 이 땅에 그분을 아는 엄청난 특권을 누린 한 민족을 창조하심으로, 그 선교를 시작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이스라엘로 제한시키려고 하시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것은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결어: 성경적 선택과 선교
- 이스라엘의 선택은 하나님의 보편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편협한 민족적 배타주의이기는 커녕, 그 반대라고 주장한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다른 민족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아주 처음부터 그것은 다른 민족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묘사된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이스라엘 자신의 어떤 특별한 특징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다른 민족들보다 수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에게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신명기는 그런 교만한 환상들을 재빨리 제거해 준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불가해한 사랑에만 근거하고 있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적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온 땅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이 퍼져 나가는 수단으로 선택되었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의 일부이다.
- 이스라엘의 선택은 단순히 구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선교적인 것이다.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
(출 6:6; 15:13)은 성경이 최초로 구속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다. 두 경우 다 히브리어 동사는 ‘가알’(גָּאַל)이다. 인격적 존재가 이 동사의 주어가 될 때는(하나님이든 사람이든), 그는 ‘고엘’(גאל), 즉 구속자로 묘사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고엘이 맡은 역할에는 훨씬 더 넓은 사회적 측면이 있었다.
고엘은 확대 가족에 속한 구성원으로, 가족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특별한 필요를 갖고 있는 가족 구성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은 고엘의 역할이 어떠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 흘린 피에 대한 복수. 어떤 사람이 살해당하면 피해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가해자를 찾아서 그를 처벌할 책임이 있었다. (민 35:19)
- 땅 또는 노예를 구속함. 친족이 빚을 지고 경제적으로 파산하지 않기 위해 땅을 팔아야 한다면, 부유한 친족은 그 땅을 확대 가족 내에 보존하기 위해 그 땅을 남보다 먼저 사 주거나 구속할 책임이 있다. 친족이 경제적으로 가난해져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이나 가족이 노예가 될 처지라면, 고엘이 되어 그들을 종살이에서 구출하는 것이 부유한 친족의 의무였다. (레 25장)
- 상속자를 제공함. 어떤 사람이 그의 이름과 재산을 이어받을 아들이 없이 죽는다면, 친족은 죽은 사람의 과부를 아내로 맞이해서 죽은 자를 대신할 상속자를 키울 도덕적(법적 책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이 있다. (룻 4장)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그분의 백성을 ‘가알’하기로 약속하신 분으로 묘사하면서(출 6장), …세 가지가 그 문제의 핵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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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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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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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회복
야웨는 이스라엘의 고엘로서, 그분 자신과 이스라엘의 유대를 인간 친족의 어떤 유대만큼이나 친밀하고 헌신적인 것으로 확언하신다.
하나님의 포괄적인 구속
하나님은 행동하는 고엘이라고 묘사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인류 역사 가운데 행동하기로 하셨을 때, 무엇을 행하셨는가?
정치적. …그들은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애굽에서 정치적 자유가 없었으며 정치적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애굽인들의 적대감을 사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현대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처지에서 해방시킨 후 마침내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행동하셨다.
경제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강제 노동으로 착취를 당했다(출 1:11-14).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소유하지 못했다. …소수 인종이 애굽 왕을 위하여 더럽고 힘든 일을 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이 명백하게 말씀하신 약속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출 6:8). …이스라엘을 노예 노동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은 출애굽 구속의 핵심이었다.
사회적. 출애굽기 1장 나머지 부분은 야만적이고 어리석은 애굽 정부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국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그는 ‘그의 모든 백성’을 선동해서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을 죽이도록 한다. …부패하고 몰락하는 정권에 재앙이 닥친다. 그 재앙의 절정에서 애굽의 장자들이 죽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 사실을 기억나게 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구속의 사회적·가정적 본질과, 그런 광적인 악 가운데서 구출받은 사실을 영원히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 인간 생명의 신성함과 사회 정의의 보존이 그들의 사회적 법적 구조에서 핵심 요소를 차지한다.
영적. 노예 신세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데 엄청난 방해를 받는다. ‘아바드’(עָבַד)는 ‘섬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아보다’(עֲבוֹדָה)는 ‘섬김’ 또는 ‘노예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부르짖었다(출 2:23). 그러나 동일한 단어가 예배, 즉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장자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아바드, 예배하게) 하라.”
갈등의 영적 본질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요청하는 것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이야기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야웨는 노예를 해방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들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사적 문제뿐 아니라 영적 영역도 중요한 핵심이다.
두번째는, 그 갈등을 야웨의 신적 능력과 신 행세를 하는 바로 및 “애굽의 모든 신”(출 12:12)간의 능력 대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재앙들이 애굽인들의 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향하고 있었다. …나일 강과 해는 애굽의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들이었다. 야웨는 그 둘에 대해 주권을 가지고 계심을 증명하였다. …그것(출 15:18)은 억압과 불의의 인간 및 신적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며 영원무궁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모세의 노래다.
그러므로 출애굽의 영적 측면은, 하나님이 출애굽 전 과정의 목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고 예배하도록 이끄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는 것이다.
출애굽 사건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필요의 모든 측면에 반응하셨다. 하나님의 기념비적 구속 행위는 그저 이스라엘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억압으로부터 구출해 놓고는, 그들 마음대로 예배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이 처한 역사적 조건은 변화시키지 않은 채, 그들에게 하늘 위 본향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영적인 위로만 제공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총체적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총체적 반응이었다.
하나님의 구속의 동기
하나님이 그와 같이 행동하시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겪는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억눌린 자들을 아심.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었다.”는 이야기를 읽는다(출 2:23). …우리는 누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는지 안다. 바로, 창세기 18:20-21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들으실 뿐 아니라 또한 보신다. 듣고 보시는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아신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기억. ”하나님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זכר, zakar).” ‘자카르’라는 단어는 일정 기간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해 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행동을 취하기로 의도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을 사려 깊게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모델이 되는 구속. 그러므로 출애굽 이야기는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구속 활동을 하게 하셨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억압을 당하면서 인간이 겪는 참상에 대한 광경 및 소리,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약속과 목적에 대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반복될 수 없는 독특한 사건이지만,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동하기 원하시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 창조 세계를 위해 행동하실 방식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는 모델이 된다. 출애굽은 우리가 성경적인 하나님의 선교를 들여다보는 가장 중요한 렌즈다.
p.348
출애굽과 선교
출애굽 형태의 구속은 출애굽 형태의 선교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또 그것은 우리가 선교를 하는 전체적인 동기와 목표가 출애굽 이야기에서 선언된 하나님의 동기 및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에 대한 총체적인 선교적 해석에 미치지 못하는 두 가지 해석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것의 영적 의미에 집중하고 그 이야기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측면을 소홀이 여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것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측면에 너무 집중하고 영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을 너무 과도하게 지향하면, 균형을 잃어버린 성경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선교학적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영적 해석. 영적 접근은 신약이 그리스도께서 신자를 위해 죽으신 의미를 설명하는 한 가지 모델로 출애굽을 사용하는 방법에 집중한다. …문제는 …원래의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에게 의미했던 역사적 현실, 즉 불의, 억압, 폭력 가운데서 실제로 구출된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충분히 성경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누구의 죄인가?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받는 것은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출과는 전혀 다르다. 출애굽은 그들 자신의 죄에서 구출받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신의 죄가 아니라 그들을 억압한 자들의 죄였다.
출애굽은 불의, 폭력, 죽음의 외부적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승리였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속박하여 노예로 삼고 있는 권세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셨다.
우리가 이 점을 완전히 이해할 때, 우리 자신의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다는 점보다는(물론 그런 면이 있는 것이 분명 사실이긴 하다), 인간 생활과 복지를 억누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출애굽과 십자가를 연결시키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어떤 현실인가? 둘째, 본래 역사적 사건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측면을 무시하고 출애굽을 영적으로만 적용하려고 하는 자들은 구약을 신약과 연관시키는 예표론적 방법을 오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약을 단지 신약을 ‘예시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그 결과 구약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다 잃어버리고 만다.
어떤 하나님이신가? 셋째, 출애굽을 단순화해서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심사의 대단한 변화를 전제하는 듯하다. 이처럼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법과 그 해석의 결과 따라오는 선교학적 암시는, 성경의 하나님은 세대를 넘고 세기를 넘어서 사회 문제(정치적 오만과 학대, 경제적 착취, 사법적 부패, 가난한 자들과 억압당하는 자들의 고통, 야만적 행위와 유혈 사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그분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우상숭배를 제외하면 어떤 다른 문제보다 사회 문제들에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말라기에서 마태복음으로 가는 사이에 그 모든 것이 변화되고 말았다. 그런 문제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관심을 끌거나 그분의 분노를 촉발하지 않는다. 또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모든 일들의 근원은 영적인 죄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해결한 것은 그것뿐이다. 교묘한 형태의 마르시온 주의(영지주의적 이단)가 이 접근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 견해를 묘사한 방식은 약간 희화화한 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선교관을 대표하는 것이다.
정치적 해석. 이와 정반대되는 해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야웨는 억압을 미워하시고 그것에 반대하여 단호하게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옹호하는 신학, 윤리, 선교학이 만들어진다. 현대에 그런 해석학을 지지하는 가장 유명한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등장해서 세계의 다른 부분으로 퍼져 나간 여러 분파의 해방 신학들이다. 이 가운데 어떤 해방 신학들은(결코 전부는 아니다) 불의와 억압에 대항해 투쟁하는 곳마다 하나님은 구속적으로 일하신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억압을 타도하고 자유와 정의를 가져오는 행동은 무엇이나 본질상 구속적이고 구원적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믿든지 믿지 않든지, 교회가 세워지든지 세워지지 않든지 간에 상관이 없다. …이 입장은 출애굽의 사회 정의적 측면을 강조하고, 그 사건 안에 담겨 있는 영적 목적과 신약에서 그것을 분명히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을 간과한다.
부당한 반대. 해방 신학이 출애굽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한 가지 주요한 반대 입장은 이것이다. …이것은 일부 해방 신학자들이 심각한 혼란으로 간주될 정도로 구원이라는 개념을 정치화한 데 반대하면서 존 스토트가 제시한 논증이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출애굽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이 특별한 관계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언약을 따라, 그리고 시내 산에서 갱신할 언약을 내다보면서, 그분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셨다. 하나님은 수리아 사람들이나 블레셋 사람들과는 언약을 맺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이스라엘만의 유익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은 언제나 최종적으로는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모든 땅과 모든 나라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고대 근동의 모든 제국에 있는 억눌린 자들을 구출하지 않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억눌린 자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하셨다고, 또는 도처에서 불의를 행하는 범죄자들에 대해 화를 내지 않으셨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 이야기의 이 부분에 대한 선교학적 관점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한다.
충분하지 못함.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멈추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적 이야기에서 출애굽의 목표는 분명히 정치적 해방에 국한되지 않았다. 진실로, ‘해방’(자유나 독립을 이룬다는 현대적 의미에서)은 이야기 전체를 묘사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가 아니다. …그보다 출애굽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노예 상태(아보다, עֲבוֹדָה)에서 벗어나게 해서 자유롭게 야웨를 섬기고 예배드릴(아보다, עֲבוֹדָה)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지 그들이 노예이며 따라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된 주인에게 사로잡힌 노예들이며 따라서 올바른 주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분을 섬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통합적 해석.
전도 없는 사회 활동. 사회 활동이 선교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와 봉사로 이끌지 못하는 것은, 위락 이러저러한 식으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복하는 잘못을 범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거듭해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잘못을 범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멸망하고 말았다.
사회 활동 없는 전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적 전도가 선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식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영적 전도’는 복음을 죄사함의 수단으로 그리고 미래에 천국에 들어가는 수단으로만 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정직하게 살라는 도덕적 도전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정의와 동정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라는 선교적 도전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그 결과 일종의 개인화된 경건주의, 또는 같은 마음을 가진 신자들과는 잘 어울리나 넓은 사회와 관련하여 선지자적 안목이 없는 신앙인이 된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사방에서 일어나는 육체적·물질적·가정적·사회적·국제적 필요와 위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시 이 유혹에 넘어갔다. 선지자들은 사람들이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만 매일의 삶에서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부인하는 것을 목도했다. 많은 카리스마적 열정(암 5:21-24),수많은 제물의 피에 나타난 많은 속죄 신학(사 1:10-12), 성전을 향해 주장된 많은 구원의 확신(렘 7:4-11), 대축제와 연회에서 준행된 많은 종교 규정이 있었다(사 1:13-15). 그러나 그들의 코와 발 아래서는 가난한 자들이 무시를 당하고 짓밟히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셨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나타나 모든 허구를 중단시키기를 바라셨다(말 1:10).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것을 다 없애 버리셨다.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면, 사회적 동정과 정의가 없는 선교는 성경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