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강

하나님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스펙트럼


페이지 1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기도할 때도,

예배를 드릴 때도,

성경을 읽을 때도

이 표현을 만납니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떨까요?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요?

어떤 사람은

“천국입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입니다.”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모두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만 배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디에서 살아가는지 함께 발견해 보려 합니다.


이번 시간의 질문

나는 하나님 나라를 너무 멀리서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다음 페이지)


페이지 2

Experience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먼저,

지금 떠오르는 생각을 표시해 보십시오.

□ 언젠가 들어갈 천국

□ 교회 공동체

□ 내 마음

□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삶

□ 잘 모르겠다

□ 기타



이제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볼 때,

나는

하나님 나라를

어디에서 경험했습니까?

(충분한 여백)


혹시

한 학생의 미소 속에서였습니까?

용서를 선택한 순간이었습니까?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품었던 시간이었습니까?

아니면

아직 잘 모르겠습니까?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성경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3

Experience

하나님 나라는 왜 ‘나라’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제도’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왕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왕의 가치가 살아갑니다.

왕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란

단순히 장소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함께 읽게 될 예수님의 비유들은

이 질문을 조금씩 풀어 줍니다.


(다음 페이지)

Scripture

첫 번째 읽기

마태복음 13장 31–32절

겨자씨의 비유

이번에는

겨자씨의 크기보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생각하며 읽어 보십시오.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큰 나무가 아니라

작은 씨앗으로 비유하셨을까요?


본문을 다 읽은 뒤

31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①

하나님 나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겨자씨는

매우 작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금세 놓칠 만큼 작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작은 씨앗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나라를

거대한 변화로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

눈에 띄는 기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한 알의 씨앗처럼,

조용히 심기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교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한 번의 수업이

당장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의 격려가

곧바로 열매를 맺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씨앗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작은 시작을 통해

생명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큰 결과보다, 작은 순종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잠시 멈춤

최근 내가 심은 ‘겨자씨’는 무엇이었습니까?

그 씨앗은 아직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품고 있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5

Scripture

두 번째 읽기

마태복음 13장 33절

누룩의 비유

이번에는

비유가 얼마나 짧은지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단 한 문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본문을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왕이나 군대가 아니라,

누룩에 비유하셨을까요?


본문을 다 읽은 뒤

33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②

하나님 나라는 조용히 스며듭니다.

누룩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반죽 속으로 들어가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죽 전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억지로 바꾸지도 않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깊이

사람의 삶 안으로 스며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 나라를

눈에 띄는 변화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하십니다.

작은 친절 하나,

용서 한 번,

진실한 말 한마디,

학생 한 사람을 끝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

그 작은 순간들이

하나님 나라의 누룩처럼

삶 속으로 스며듭니다.


교사의 영향력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좋은 교사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학생 안에서

좋은 열매가 자라도록 돕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변화가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수고를 결코 작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기보다, 사람의 삶을 안에서부터 새롭게 하십니다.


잠시 멈춤

최근 나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스며든 선함이 있었습니까?

혹시 아직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실 일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7

Theology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랍니다.

겨자씨와 누룩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작습니다.

둘 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둘 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크고 빠른 변화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시작을 귀하게 여기시고,

보이지 않는 과정을 통해

생명을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방식은

거대한 권력보다

신실한 사람들의 일상에 더 가깝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영웅 몇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의

오랜 순종의 이야기입니다.


교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학생의 변화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의 신실한 사랑과,

정직한 가르침,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은

학생의 삶 속에서

누룩처럼 천천히 일합니다.


잠시 멈춤

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더 신뢰합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도 신뢰하고 있습니까?


리더용 TIP

예수님은 더 이상 하나님 나라가 _어떻게 시작되는지_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님의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교사는 묻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야기를 마친 뒤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저는 이 질문이 8강 전체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무엇을 믿는가?’**를 걸어왔지만, 이제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가?’**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참가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의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가’를 선택하는 사람의 삶 속에서 드러난다.


페이지 8

Scripture

세 번째 읽기

누가복음 10장 25–37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번에는

강도 만난 사람보다,

제사장보다,

레위인보다,

사마리아인에게 더 오래 머물러 보십시오.


본문을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사마리아인은

왜 그 사람을 도왔을까요?

의무였기 때문입니까?

칭찬받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까?


본문을 다 읽은 뒤

36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③

하나님 나라는 ‘누구를 만나는가’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입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그 질문은

범위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디까지 사랑해야 합니까?’

‘누구까지 도와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을 그대로 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신 뒤,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이웃을 찾는 문제에서,

이웃이 되어 주는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계산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나라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의 신분을 묻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묻지 않았습니다.

자격을 묻지 않았습니다.

먼저 다가갔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먼저 함께 걸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특별한 사람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잠시 멈춤

최근 나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 준 적이 있었습니까?

혹은

누군가가 나의 이웃이 되어 준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10

Theology

하나님 나라는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제도나 조직으로 먼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는

경쟁보다 사랑이,

무관심보다 돌봄이,

배제보다 환대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교사의 삶도 그렇습니다.

교실은

학생들의 성적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

매일 수많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깨어지고,

다시 회복되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먼저 학생의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학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실패한 학생에게 다시 기회를 주며,

보이지 않는 학생을 먼저 발견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는 교실 안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대교에서는 **“언약은 계약(contract)이 아니라 관계(covenant)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계약은 조건이 맞으면 유지되지만,

언약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약속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계약이 아니라 언약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도

계산보다 관계를,

효율보다 신실함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잠시 멈춤

나는 학생들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먼저 이웃이 되어 줄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페이지 11

Scripture

네 번째 읽기

마태복음 25장 31–40절

이번에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장면보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살펴보며 읽어 보십시오.


본문을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입니까?

놀라운 기적을 행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입니까?


본문을 다 읽은 뒤

40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다음 페이지)

Revelation ④

하나님 나라는 가장 작은 사람에게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가장 작은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


놀라운 것은

의인들도

자신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묻습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을 보았습니까?”

그들의 돌봄은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칭찬을 기대한 행동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미 그렇게 빚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특별한 순간에만 나타나는 나라가 아닙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교사에게도

하나님 나라는

가장 뛰어난 학생에게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있는 학생,

실수를 반복하는 학생,

아무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장 작은 사람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잠시 멈춤

내 교실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학생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함께 상상해 봅시다.

(충분한 여백)


페이지 13

Theology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기준을

능력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공으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종교적인 성취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억하신 것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가였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규칙을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선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볼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사람을 먼저 기억하십니다.


영적 성숙은

더 많은 지식을 갖는 데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라갑니다.


교사에게

하나님 나라는

교실을 떠나 다른 곳에서 찾는 이상이 아닙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조너선 색스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위대한 문명을 세우기 전에 한 사람을 부르시고, 한 공동체를 세우신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그 변화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교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대한 계획보다,

오늘 한 학생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은 선택에서 자라납니다.


잠시 멈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게 맡기신 사람 가운데

누구를 가장 먼저 바라보고 계실까요?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페이지 19

이번 주의 질문

8주 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으로 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너무 쉽게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질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날수록,

세상도,

사람도,

나 자신도,

조금씩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다시 품어 봅시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너무 멀리서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장차 완성될 소망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시작하신 삶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내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통해 누구를 더 크게 사랑하시겠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20

영성일기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조용히 지난 여덟 번의 여정을 돌아보십시오.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까?

어떤 질문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까?

어떤 성경 말씀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 보십시오.

“하나님, 지금 제 안에서 무엇을 빚어 가고 계십니까?”

(충분한 여백)


조급하게 답을 쓰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천천히 빚어 가십니다.

오늘 적은 한 줄도,

아직 적지 못한 침묵도,

하나님께서는 소중히 받으십니다.


페이지 21

파송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는 여정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덟 번의 만남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Formation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학기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과 함께 걸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 큰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세상을 향한 더 깊은 사랑을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실에서,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조금씩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완벽한 교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교사를 만날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당신이 심는 작은 겨자씨 하나를,

당신이 삶으로 섞어 넣는 작은 누룩 하나를,

당신이 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는 작은 선택 하나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당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사랑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학생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내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통해 누구를 더 크게 사랑하시겠습니까?”


에필로그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는 여정

우리는 이 교재를 통해

정답을 더 많이 배우기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날수록,

세상은 더 넓어졌습니다.

사람은 더 소중해졌습니다.

교사는 더 큰 책임이 아니라,

더 큰 은혜의 부르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첫 문장이 됩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는 사람은,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오늘 당신이 만나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이 책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빚어 가시는 여정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