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내가 경험하는 성령님은 누구신가?

부제

성령님을 더 크게 만나다


페이지 1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보다

성령님을 이야기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누군가는

성령님을 생각하면

뜨거운 기도회가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눈물 흘리며 예배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방언이나 은사를 먼저 떠올립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특별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성령님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다른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분명 소중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함께 품어 보려고 합니다.


내가 경험한 성령님이, 성경이 보여 주시는 성령님의 전부일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2

Experience

내가 처음 만난 성령님

잠시 눈을 감아 봅시다.

성령님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언제였습니까?

어디였습니까?

누가 이야기해 주었습니까?

무엇을 느꼈습니까?


(충분한 여백)


이제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나는

성령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가장 가까운 것에 ○를 해 보십시오.

□ 기도할 때 도와주시는 분

□ 은사를 주시는 분

□ 위로하시는 분

□ 능력을 주시는 분

□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

□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

□ 잘 모르겠다

□ 기타



정답을 고르는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3

Experience

이번에는

반대로 질문해 보겠습니다.

혹시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을 것 같은 장소를 떠올려 보십시오.

예를 들면,

교무실.

회의 시간.

퇴근길.

학생과 갈등하던 순간.

채점하던 시간.

아이들을 혼내고 돌아선 교실.

지친 월요일 아침.


왜 그곳을 떠올렸습니까?

우리는

어떤 순간에는

성령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으면서,

어떤 순간에는

성령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오늘 함께 읽게 될 성경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넓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4

Scripture

첫 번째 읽기

창세기 1장 1–2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본문은 짧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한 단어를 오래 바라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


읽으며

이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왜 성경은

첫 장에서부터

성령님을 소개할까요?


(다음 페이지)


리더용 TIP

창세기 1장
↓
 
에스겔 37장
↓
 
요한복음 14–16장
↓
 
사도행전 2장

이 네 본문은 각각 다른 주제를 설명하는 자료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점점 더 크게 보여 주는 네 개의 창입니다.

그 여정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하시는 성령님 — 혼돈 위에서 생명의 질서를 시작하시는 하나님.

  2. 살리시는 성령님 — 메마름과 절망 속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

  3. 함께하시는 성령님 — 보혜사로 우리 곁에 거하시며 가르치고 기억나게 하시는 하나님.

  4. 보내시는 성령님 — 교회를 세상 속으로 파송하시고, 평범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참가자가 강의를 마칠 때 성령님을 하나의 특정 체험이나 신학적 논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에서 시작하여 지금 내 삶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이야기로 만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4강의 가장 큰 차별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3강이 각각 하나님, 세상, 인간을 더 크게 만나게 했다면, 4강은 성령님을 시간과 공간, 교회와 일상, 창조와 새창조를 관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하는 강의가 될 것입니다.


페이지 5

Revelation ①

혼돈 위를 운행하시는 성령님

창세기의 첫 장면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도 없습니다.

기도도 없습니다.

예배도 없습니다.

은사도 없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혼돈.

공허.

흑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단어들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혼돈 한가운데에서

한 분을 먼저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아직 세상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이미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창조는

성령님께서 뒤늦게 참여하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하신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이 잘될 때에만

성령님이 함께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질서가 완성된 세상이 아니라,

혼돈과 공허 위에서부터

성령님을 소개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삶에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 있습니까?

성령님은

그곳에도 먼저 와 계십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6

Scripture

두 번째 읽기

이번에는

에스겔 37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겔 37:1–14)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보십니까?

마른 뼈입니까?

아니면

다시 살아날 생명입니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7

Revelation ②

생명을 다시 시작하시는 성령님

창세기에서는

세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한쪽은

아직 생명이 시작되기 전입니다.

다른 한쪽은

생명이 모두 사라진 뒤입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있는 생명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없는 곳에서

생명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에스겔의 환상은

단지 이스라엘의 회복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교사인 우리는

학생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 아이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십니다.”

Formation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 가능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가능성을 다시 바라보는 자리에서 말입니다.


리더용 TIP

성령님은 **‘더 크신 분’**일 뿐 아니라, **‘먼저 오시는 분’**이십니다.

  • 혼돈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 죽음보다 먼저 희망을 말씀하셨습니다.

  • 제자들의 두려움보다 먼저 보혜사를 약속하셨습니다.

  • 교회의 사명보다 먼저 임재하셨습니다.

이 흐름은 4강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줍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인간의 응답보다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것이 4강의 숨은 중심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후 이어질 두 본문도 이 관점으로 읽으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 요한복음 14–16장에서는 제자들이 성령님을 구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보혜사를 약속하십니다.

  • 사도행전 2장에서는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성령님께서 먼저 교회를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되면 4강은 단순히 “성령님의 사역”을 배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하시는 은혜를 성령님의 사역 안에서 발견하는 여정이 됩니다.

이 방향은 지금까지 1~3강에서 계속 이어 온 핵심 정신과도 잘 맞습니다.

  • 1강: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 2강: 세상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하나님의 세상이었습니다.

  • 3강: 인간은 우리가 자신을 평가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렸습니다.

  • 4강: 성령님은 우리가 찾기 전에 이미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 연결이 TIMUP2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Formation 서사로 묶어 주는 매우 중요한 축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중심축

성령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기존

성령님은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

수정

성령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더 크게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페이지 8

Scripture

세 번째 읽기

이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 26절

그리고 가능하다면

15장과 16장까지 천천히 이어 읽어 보십시오.

이번에는

‘성령님’이라는 단어만 찾지 말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 귀 기울여 봅시다.


읽으며

다음 질문을 마음에 품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왜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

라고 부르셨을까요?


본문 속에서

성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 함께하신다.

□ 가르치신다.

□ 생각나게 하신다.

□ 증언하신다.

□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 영광을 나타내신다.


어떤 표현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9

Revelation ③

함께하시며 기억나게 하시는 성령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뒤에도

제자들이 계속 예수님 안에 머물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또 다른’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두 번째라는 뜻이 아니라, 같은 본성을 지닌 또 한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셨던 것처럼,

이제는 성령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새로운 복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복음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페이지 10

Scripture

네 번째 읽기

이제 마지막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1–13절

이번에는

오순절에 일어난 놀라운 현상보다,

성령님께서 사람들을 어디로 이끌어 가시는지를 살펴보며 읽어 보겠습니다.


읽으며 표시해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임하신 뒤

제자들은 무엇을 합니까?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사람들은 무엇을 듣게 되었습니까?


본문을 읽은 뒤

잠시 생각해 봅시다.

성령님께서는

제자들을 한 자리에 머물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11

Revelation ④

세상으로 보내시는 성령님

제자들은

오랫동안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두려웠습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용기가 아니라,

방향의 변화였습니다.

안으로 숨어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걸어 나갑니다.

숨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지키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제자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야기를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성령님은

혼돈 가운데 생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에스겔에서는

죽음 가운데 생명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머무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그 생명이

세상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모든 순간에도 함께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잠시 눈을 감아 봅시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니

성령님께서 함께하셨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충분한 여백)


페이지 12

Theology

성령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네 개의 본문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한 가지 공통된 흐름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처음에도,

포로 된 백성의 절망 속에서도,

두려워하는 제자들 곁에서도,

복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에도

늘 함께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특별한 시대에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전체를 함께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한 가지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님을 뜨거운 기도 가운데 만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읽다가 조용히 만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깊은 회개의 순간에,

어떤 사람은

한 학생을 오래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이 경험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모두 성령님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성령님 전체를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나는 어떤 경험을 했는가?‘보다,

‘성경은 성령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하는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더 넓고,

더 깊고,

더 풍성한 성령님의 이야기로 초대합니다.


잠시 멈춤

다음 질문을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 나는 성령님을 어떤 경험 안에만 가두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 나는 성령님께서 교실에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 오늘 성경은 성령님을 이전보다 더 크게 만나도록 나를 초대하고 있습니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13

Spectrum

성령님을 이해하는 스펙트럼

① 함께 고백하는 믿음

먼저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 성령님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 성령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변화시키십니다.

  •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십니다.

이 고백은 교단과 전통을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붙드는 믿음입니다.


② 대표적인 신학적 스펙트럼

이제부터는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다양한 전통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시다.

주제스펙트럼
성령세례중생과 동시에 받는가 / 이후의 특별한 경험인가
은사오늘도 계속되는가 / 사도시대의 특별한 표지였는가
방언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는 은사인가 /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인가
성령충만반복되는 경험인가 / 지속적인 삶의 태도인가

이 차이는 서로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성경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신앙의 노력입니다.


페이지 14

Spectrum

③ 성령님을 경험하는 여러 층위

앞에서 우리는

성령님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신학적 전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성령님을 다시 바라보려고 합니다.

아래의 질문들은

‘정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조금 더 크게 만나기 위한 질문들입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시간에만 함께하시는 분일까?

기도회.

수련회.

부흥집회.

새벽기도.

우리는 이런 시간을 통해

성령님을 깊이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 경험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곳에서만 성령님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혼돈 속에서도,

광야에서도,

교실에서도,

길 위에서도,

성령님은 함께하십니다.


질문

나는 언제 성령님을 가장 가까이 느낍니까?

혹시 그 경험이

성령님을 이해하는 전부가 되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성령님은 놀라운 순간에만 역사하시는 분일까?

성경에는

기적도 있습니다.

병 고침도 있습니다.

방언도 있습니다.

예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오래 참게 하시는 성령님,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성령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님도 이야기합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놀라움만이 아니라,

매일의 성실함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질문

나는 어떤 성령님의 역사를 더 기대합니까?

그리고 어떤 역사는

너무 평범해서 지나쳐 버리고 있습니까?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분일까?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학교로 출근하는 순간에도

성령님은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교무실에서도,

학부모 상담에서도,

수업 준비를 하는 책상 앞에서도,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질문

내 삶에서

‘성령님과 함께하는 시간’과

‘내가 혼자 살아가는 시간’을

나누어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15

Spectrum

④ 교사의 삶

이제

교사의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성령님은

설교자에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목회자의 사역만 이끄시는 분이 아니라,

교사의 사역도 이끄십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먼저 준비합니까?

교안입니까?

교구입니까?

평가 자료입니까?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준비보다 먼저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학생들의 마음은

교사의 기술만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학생을 향한 오래 참음도,

한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도,

실수한 아이를 다시 품는 용기도,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열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더 뛰어난 교사’로 만들기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교사’로 빚어 가시는 분입니다.


잠시 멈춤

최근 한 주를 돌아보십시오.

수업 중에

잠시 멈추어

성령님의 도움을 구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학생을 바라보는 마음이

내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바뀌었던 경험이 있었습니까?


페이지 16

Spectrum

⑤ 다시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신학적 전통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교사의 삶 속에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는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함께 붙드는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처음부터 함께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죽은 뼈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내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4강에도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을 한 문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음 문장을 제안합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모든 순간에도 함께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이 문장은 창세기의 혼돈, 에스겔의 마른 뼈, 요한복음의 보혜사, 사도행전의 오순절을 모두 하나로 묶어 줍니다.

또한 교사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 월요일 아침에도.

  • 지친 교무실에서도.

  • 학생을 기다리는 침묵 속에서도.

  • 수업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도.

성령님은 이미 함께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4강의 가장 깊은 Formation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지 17

Formation

나는 누구와 함께 교실에 들어가는가?

우리는 종종

혼자라고 느낍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도,

학생을 기다릴 때도,

학부모를 만날 때도,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혼자 버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혼돈 위에도,

마른 뼈들 사이에도,

두려움에 문을 닫은 제자들 곁에도,

성령님은 먼저 와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들어가는 교실에도

성령님은 먼저 와 계시지 않을까요?


잠시 상상해 봅시다.

내가 교실 문을 열기 전에,

성령님께서 먼저 그 교실에 계십니다.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기 전에,

성령님께서 먼저 그 아이들을 아십니다.

내가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성령님께서 먼저 그 아이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성령님을 교실로 모셔 오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함께하고 계시는 성령님과

교실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잠시 멈춤

내일 아침,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문을 열기 전에

어떤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18

이번 주의 질문

강의를 시작하며

우리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성령님을 너무 좁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같은 질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나는

성령님을 특별한 집회에서만 찾고 있지 않은가?

성령님을 놀라운 체험 속에서만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성령님을 교회 안에서만 만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성령님을 내 삶의 일부에서만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더 넓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창조의 시작에도,

절망의 한가운데에도,

예수님의 약속 속에도,

세상을 향한 교회의 걸음 속에도,

성령님은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같은 이야기를 이어 가십니다.


이번 한 주,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는 성령님과 함께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가?

(충분한 여백)


페이지 19

영성일기

이번 한 주,

성령님께서 이미 함께하고 계셨음을 발견한 순간들을 기록해 봅시다.

거창한 체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성령님의 동행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이번 주,

성령님의 도우심을 가장 가까이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여백)


2

이번 주,

성령님께서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셨음을 깨달은 순간이 있었습니까?

(여백)


3

이번 주,

한 학생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성령님께서 어떤 변화를 주셨습니까?

(여백)


이번 주의 기도

성령님,

제가 성령님을

특별한 순간에만 찾는 사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함께 걸어가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하소서.

혼자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와 계시는 성령님과 함께

학생들을 만나게 하소서.

제 말보다 먼저

제 삶이

성령님의 열매를 드러내게 하시고,

제 능력보다 먼저

성령님의 생명이 흘러가게 하소서.

오늘도

저를 통해

예수님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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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용 TIP

이 강의의 핵심은 ‘성령님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성령론의 차이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고, 성경이 보여 주는 더 크신 성령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토의를 진행할 때는 서로의 경험을 비교하거나 평가하지 않도록 유의해 주십시오.

누군가는 강렬한 체험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특별한 경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를 존중하며,

성경이 증언하는 성령님께 함께 시선을 돌려 주십시오.


토의를 이끌어 볼 질문

  • 오늘 가장 새롭게 보인 성령님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 창세기부터 사도행전까지 이어지는 성령님의 이야기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 ‘성령님은 이미 먼저 와 계셨다’는 말이 나의 교사 생활에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 내 교실에서 성령님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가장 바라는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