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UP2 영적 영역
제3강
나는 누구인가?
부제
하나님의 형상을 더 크게 만나다
페이지 1
들어가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자신을 정의합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
나는 실패한 사람.
나는 성실한 사람.
나는 부족한 사람.
나는 상처받은 사람.
나는 교사다.
나는 부모다.
나는 리더다.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
나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
어느새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는 말들을
조금씩
‘나 자신’이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봅시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말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말은
항상 같을까요?
혹시 우리는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시간의 질문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다음 페이지)
페이지 2
Experience ①
나는 누구인가?
잠시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 이름 주변에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오르는 만큼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
교사
-
엄마
-
아빠
-
장남
-
성실함
-
게으름
-
걱정이 많음
-
믿음이 약함
-
책임감
-
외로움
-
리더
-
실패
-
성공
-
내향적
-
완벽주의
-
따뜻한 사람
정답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활동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적어 봅시다.
(충분한 여백)
□□□□□□□□□□□□□□□□□□□□□□□□
□□□□□□□□□□□□□□□□□□□□□□□□
□□□□□□□□□□□□□□□□□□□□□□□□
□□□□□□□□□□□□□□□□□□□□□□□□
□□□□□□□□□□□□□□□□□□□□□□□□
(다음 페이지)
페이지 3
Experience ②
이제 천천히
방금 적은 단어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아래 질문들을
서두르지 말고 읽어 보십시오.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그 단어는
누가 내게 붙여 준 것입니까?
내가 선택한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평가였습니까?
그 단어가 없어지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될까요?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단어는 무엇입니까?
왜 그것을 숨기고 싶습니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요?
잠시 침묵해 봅시다.
(약 1분)
(다음 페이지)
페이지 4
Scripture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아직 해설하지 않습니다.
먼저
본문이 우리에게 말을 걸도록 기다려 봅시다.
첫 번째 읽기
창세기 1:26–31
(성경을 읽는다.)
읽으며 표시해 보세요.
반복되는 단어에는 ○
마음에 걸리는 문장에는 밑줄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는 ?
를 표시해 봅시다.
읽은 뒤
잠시 생각해 봅시다.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 설명보다 경험이 먼저 온다.
- ‘죄’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 참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바라본다.
- 그 다음에 성경이 먼저 인간을 어떻게 부르는지 듣게 된다.
- Revelation을 최대한 늦춘다. 아직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 독자가 먼저 창세기 1장을 만나고, 그 이후 Revelation에서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르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른다.”라는 강력한 전환을 경험하도록 리듬을 설계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Revelation을 너무 빨리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이 먼저 독자의 마음속에서 질문을 일으키고, 그 질문이 충분히 머문 뒤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리듬을 유지하겠습니다.
페이지 5
Scripture
두 번째 읽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1장 26–31절을 다시 읽으면서, 이번에는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집중해 봅시다.
다시 읽으며 질문해 봅시다.
본문에서 인간은 무엇을 한 존재입니까?
무엇을 이루어 낸 존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먼저 선언하신 존재입니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뒤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기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렸습니까?
본문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발견한 것을 적어 봅시다.
(충분한 여백)
내가 발견한 것
잠시 멈춤
창세기 1장에서
‘죄’라는 단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옵니까?
(다음 페이지)
페이지 6
Scripture
세 번째 읽기
이번에는 창세기 3장을 읽겠습니다.
(창세기 3:1–13)
읽으며 표시해 보십시오.
인간은 무엇을 선택합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찾으십니까?
인간은 무엇을 숨깁니까?
읽은 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3장에서 가장 먼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죄를 지었느냐?”
였습니까?
아니면
“네가 어디 있느냐?”
였습니까?
이 질문은
죄를 추궁하기 위한 질문일까요?
아니면
잃어버린 인간을 찾으시는 질문일까요?
잠시 묵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실까요?
“네가 어디 있느냐?”
(다음 페이지)
페이지 7
Revelation
하나님은 인간을 먼저 무엇이라고 부르시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창세기 1장과 3장을 함께 읽었습니다.
두 본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보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
이 순서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라보시는 출발점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죄를 지은 뒤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 버린 것이 아니라,
그 형상을 왜곡하고 손상시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먼저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질문 속에는
정죄보다 먼저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은
내가 이룬 성취에서도,
내가 경험한 실패에서도,
심지어 내가 저지른 죄에서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소개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뒤
잠시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평가로 끝납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기 전에,
세상이 인간을 평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이것이
성경이 들려주는
인간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나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바라보신 사람이다.”
집필 메모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조직신학적 정의(실체적·기능적·관계적 이해 등)를 아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Revelation의 역할은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성경의 순서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후 Theology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를 다양한 신학적 통찰과 함께 탐구하고, 이어지는 Spectrum에서는 여러 전통이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공통 신앙고백에서 출발해 비교하며, 마지막에는 다시 교사의 삶과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돌아오도록 전개하면 3강의 Formation Circle이 자연스럽게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Formation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로 이 질문이 Theology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기존 신학 교재처럼 “하나님의 형상이란 ○○이다.”라고 정의부터 내리면, 지금까지 공들여 만든 리듬이 무너집니다.
오히려 Theology 역시 질문 → 본문 → 짧은 해설 → 다시 질문의 리듬을 유지해야 합니다.
페이지 8
Theology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익숙하게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정말 이 표현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릅니까?
잠시 적어 보십시오.
□ 영혼
□ 이성
□ 자유의지
□ 사랑
□ 관계
□ 창조성
□ 거룩함
□ 잘 모르겠다.
□ 기타
혹시 지금 떠오른 대답이
성경이 직접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들어 왔던 설명입니까?
이번에는
성경이 스스로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9
본문이 먼저 말하도록 하기
창세기 1장을 다시 펼쳐 봅시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형상”
이라는 단어보다
그 앞뒤 문장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1:26–28)
읽으며 표시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맡기십니까?
무엇을 축복하십니까?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읽은 뒤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왜 하나님은
정의를 먼저 설명하지 않으셨을까요?
(여백)
(다음 페이지)
페이지 10
잠시 멈춤
우리는 대개
사람을 능력으로 평가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얼마나 뛰어난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얼마나 똑똑한가.
하지만 창세기 1장은
전혀 다른 순서를 보여 줍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후에
사명을 맡기십니다.
성경에서
사명은
정체성을 얻기 위한 시험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정체성 위에
맡겨진 선물입니다.
이 순서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꿉니다.
우리는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세상을 돌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순서는
교사에게도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존귀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 들어서
존귀한 것도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배움도,
성장도,
책임도,
사명이 놓입니다.
(다음 페이지)
페이지 11
하나님은 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정답을 하나 배우기보다,
성경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깊이 고민해 왔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에 주목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사명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현대 신학에서는
이 세 가지를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서로를 비추는 다양한 빛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의 정의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풍성한 주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설명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각 설명이 성경의 어떤 측면을 비추고 있는지를 함께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더 많이 논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풍성하게 바라보시는지를 더 크게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중요한 수정
여기까지 집필하면서 한 가지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3강의 Spectrum은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신학적 견해들’만 다루기에는 아깝습니다.
오히려 2강에서 확립한 Spectrum의 철학을 그대로 적용하면 훨씬 깊어집니다.
3강 Spectrum 제안
① 공동의 신앙고백
-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
②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대표적인 신학적 스펙트럼
-
실체적(Substantive) 이해
-
관계적(Relational) 이해
-
기능적(Functional) 이해
-
(필요하면) 그리스도 중심(Christological) 이해
↓
③ 인간을 바라보는 여러 층위의 스펙트럼
-
죄인인가, 형상인가? (순서의 문제)
-
개인인가, 공동체인가?
-
자유인가, 의존인가?
-
현재의 나인가, 되어 가는 나인가?
-
회복된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④ 교사의 삶
-
성적 이전에 형상
-
문제행동 이전에 형상
-
장애 이전에 형상
-
실패 이전에 형상
-
나 자신도 형상
↓
⑤ 공동의 고백으로 돌아오기
“나는 내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르신 사람이다.”
이 구조는 단순히 신학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교사가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재형성(Formation)**하는 데 훨씬 강력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저는 이 구성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세워 온 TIMUP2의 철학과 가장 잘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독자가 **“아,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구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렇다면 내가 교실에서 만나는 저 아이도 하나님의 형상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3강의 Formation이며, TIMUP2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페이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독자를 죄책감으로 몰아가지 않습니다. “학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세요.”라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학생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천천히 성찰하도록 돕습니다.
페이지 12
Formation
나는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교사가 하루 동안 만나는 학생은
수십 명입니다.
짧은 하루가 지나면
학생들의 이름보다 먼저
그 학생의 특징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늘 산만한 아이.”
“말이 없는 아이.”
“자꾸 거짓말하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
우리는 그렇게 학생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의 질문을 더해 보고 싶습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도 그 학생을 가장 먼저 그렇게 부르실까요?
(충분한 여백)
페이지 13
다시 생각해 보기
다음 학생들을 떠올려 봅시다.
최근 가장 마음이 쓰였던 학생 한 명.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 한 명.
가장 안타까운 학생 한 명.
가장 자랑스러운 학생 한 명.
그리고
가장 많이 기도하게 되는 학생 한 명.
이 학생들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좋습니다.
대신,
그 학생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보십시오.
(여백)
이제
그 단어 위에
조용히 한 문장을 덧붙여 봅시다.
이 학생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한 문장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습니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쳐 버렸습니까?
잠시 생각해 봅시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페이지 14
하나님의 시선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만나실 때마다
그 사람의 현재 모습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세리는
죄인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지 않았고,
사마리아 여인은
과거의 상처로만 정의되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실패로 끝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먼저 바라보셨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시선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상처를 없는 일처럼 여기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을 가장 깊이 아셨기에,
그 사람을 현재의 모습으로만 가두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이 먼저이고,
창세기 3장이 그다음인 것처럼,
예수님의 시선도
죄보다 먼저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보완
여기서 저는 예수님의 사례를 조금 더 성경 본문에 밀착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원고는 다소 추상적입니다. 반면, 이 교재의 원칙은 **“좋은 신학은 성경을 다시 읽게 만든다.”**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한 인물을 깊이 다루는 편이 더 강력합니다.
예시: 삭개오(누가복음 19장)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죄인.”
“돈밖에 모르는 사람.”
“함께 식사하면 안 되는 사람.”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부르실 때,
그 별명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그리고 그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삭개오의 과거에 머물렀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회복될 사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 장면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선언이 예수님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3강의 흐름이 더욱 선명해진다고 봅니다.
-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선언하십니다.
-
예수님은 그 선언을 삶으로 살아내십니다. 죄와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그 현재 상태로만 규정하지 않으십니다.
-
교사는 그 시선을 이어받아 학생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연결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창세기의 교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과 교사의 삶을 관통하는 Formation의 원리가 됩니다. 이는 3강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주는 중심축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은 행동 목록이 아니라 시선의 변화로 끝나야 합니다.
처음 질문은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였지만,
마지막에서는 그 질문이 자기 자신을 넘어 학생과 공동체를 향해 확장되어야 합니다.
페이지 15
이번 주의 질문
강의를 마치며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처음에
이 질문으로 출발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같은 질문을
다시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나는 나를
성공으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실패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상처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죄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역할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평가로만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그 모든 이야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나는
내가 붙인 이름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더 품고 한 주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나는 누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될까?
(충분한 여백)
페이지 16
영성일기
이번 한 주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형상’의 순간들을 기록해 봅시다.
거창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학생과의 짧은 대화,
내 마음의 작은 변화,
말씀을 읽다가 멈춰 선 한 구절,
누군가를 다시 바라보게 된 한 장면이면 충분합니다.
1
이번 주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 사람을 떠올릴 때,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 보였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 새롭게 보입니까?
(여백)
2
이번 주,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다고 느꼈습니까?
(여백)
3
이번 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가장 실제가 되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여백)
마지막 페이지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학생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학생을 바라보셨습니다.
학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학생을 사랑하셨습니다.
학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다음 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빈 페이지의 절반 이상을 여백으로 둔다.)
이번 주의 기도
주님,
저를 제가 붙인 이름으로만 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불러 주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학생들을 문제와 성적과 행동으로만 보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시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제 안에서도,
제 교실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이 지닌 존엄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소서.
아멘.
페이지 17
교사용 TIP
이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토의를 진행할 때는 정답을 정리하기보다, 참가자들의 경험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십시오.
누군가는 자신을 여전히 실패한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특정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험을 성급히 교정하거나 해결하려 하기보다, 성경의 이야기가 그 경험과 만나도록 기다려 주십시오.
토의를 이끌 때 도움이 되는 질문
-
“오늘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무엇이었습니까?”
-
“창세기 1장과 3장의 순서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교사인 내가 학생을 가장 먼저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까?”
-
“예수님의 시선과 나의 시선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낀 부분은 무엇입니까?“
3강 전체를 돌아보며: 한 가지 더 깊게 다듬고 싶은 부분
현재 3강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매우 안정적으로 전개됩니다. 하지만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이 둘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선언이고,
‘나는 누구인가?‘는 인간의 평생에 걸친 질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3강의 마지막에 독자가 단순히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를 기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과 같은 긴 여운을 품고 강의를 마치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하나님께서 빚어 가고 계신 사람이다.”
이 한 문장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선언과, 죄와 상처 속에서도 회복되어 가는 존재라는 여정을 함께 담아냅니다.
그러면 3강은 정체성을 하나의 고정된 명제로 마무리하지 않고, 형성(Formation)의 여정으로 마무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