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UP2 영적 영역
4강
내가 경험하는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을 더 크게 만나다
핵심 질문
내가 경험한 성령님이 성경이 보여 주시는 성령님의 전부일까?
Experience
내가 처음 만난 성령님
성령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 봅시다.
언제였나요?
어디였나요?
누가 처음 이야기해 주었나요?
그때 성령님은 어떤 분으로 들렸나요?
(기록 공간)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나는 성령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돌아봅시다.
가장 가까운 것에 표시해 보세요.
□ 기도할 때 도와주시는 분
□ 은사를 주시는 분
□ 위로하시는 분
□ 능력을 주시는 분
□ 죄를 깨닫게 하시는 분
□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
□ 잘 모르겠다
□ 기타 ____________________
어떤 답을 골랐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성령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니까요.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던 장소나 순간이 있었나요?
교무실일 수도 있습니다.
회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퇴근길이나 지친 월요일 아침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과 갈등하던 순간,
채점을 하며 지쳐 있던 시간,
아이들을 혼낸 뒤 마음이 무거웠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왜 성령님을 떠올리기 어려웠을까요?
(기록 공간)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그분을 아주 가까이 느끼고, 어떤 순간에는 마치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실제로 언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Scripture
처음부터 함께하시는 성령님
첫 번째 읽기
창세기 1장 1–2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짧은 본문입니다.
이번에는 한 표현에 오래 머물러 봅시다.
“하나님의 영”
왜 성경은 창조의 첫 장면에서 하나님의 영을 보여 줄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는 시작부터 성령님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까?
(기록 공간)
혼돈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
창세기의 첫 장면에는 아직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도 없고, 예배도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성령님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특별한 기도나 은사의 장면도 없습니다.
성경이 먼저 보여 주는 것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고, 완성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그 자리를 지나친 뒤 질서가 잡힌 곳에 나타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혼돈 가운데 이미 계십니다.
이 장면을 우리의 삶에 겹쳐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
쉽게 풀리지 않는 관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간.
우리는 그런 때를 지나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뒤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Scripture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성령님
두 번째 읽기
이번에는 에스겔 37장 1–14절을 읽어 봅시다.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눈여겨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고 계시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과 같은 자리에서 무엇을 시작하시는가?
(기록 공간)
마른 뼈 가운데서
창세기의 세계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에스겔 37장의 세계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생명이 시작되기 전과 생명이 사라진 후.
그런데 두 이야기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 고백 이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살아 있는 것을 조금 더 좋아지게 만드는 분으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무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교사로 살아가다 보면 “이 아이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문제행동을 바라보며 지칠 때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에스겔에게 주어진 질문이 우리에게도 남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그리고 에스겔의 대답도 함께 기억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가능성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
어쩌면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은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Revelation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일하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두 장면을 보았습니다.
혼돈으로 가득한 창조의 시작과 마른 뼈가 널린 죽음의 자리입니다.
그 두 곳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제 성경의 다른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세 번째 읽기
요한복음 14장 16–17절, 26절
가능하다면 15장과 16장도 함께 천천히 읽어 보세요.
이번에는 ‘성령님’이라는 단어만 찾지 말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 함께하십니다.
□ 가르치십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십니다.
□ 기타 ____________________
어떤 표현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나요?
(기록 공간)
함께하시는 성령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기적을 보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두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을 버려진 사람처럼 남겨 두지 않으십니다.
함께하시고,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의 관심을 성령님 자신에게만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 분명히 알고 그분의 말씀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만난다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따르게 되는 것과 연결됩니다.
Scripture
성령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까요?
네 번째 읽기
사도행전 2장 1–13절
이번에는 오순절의 놀라운 현상만 바라보지 말고, 성령님께서 임하신 뒤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며 읽어 봅시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제자들은 무엇을 하기 시작합니까?
사람들은 무엇을 듣게 됩니까?
(기록 공간)
성령님께서는 제자들을 한곳에 머물게 하셨습니까?
아니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까?
Revelation
세상으로 보내시는 성령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문을 닫고 숨어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임하시자 그 사람들이 밖으로 나옵니다.
숨고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지키는 데 머물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자신감이 넘치는 특별한 영웅으로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창세기의 장면과도 이어집니다.
창조의 처음부터 성령님은 계셨습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 가운데서도 생명을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그 생명이 세상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이 흐름을 따라가면 성령님을 특정한 체험 하나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집회에서만 경험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삶도 그 이야기 안에 놓여 있습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Theology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을 생각하면 우리의 경험이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뜨거운 기도 가운데 성령님을 경험합니다.
누군가는 말씀을 읽다가 한 구절이 특별하게 마음에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회개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깨우치심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할 힘을 얻는 가운데 성령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성령님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령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하는가?”
성경을 따라가면 성령님은 창조의 처음부터 계셨고, 생명이 사라진 곳에 새 생명을 일으키시며,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하시고, 교회를 세상 가운데 보내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성령님을 더 크게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을 더 많이 갖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던 성령님의 모습을 넘어 성경이 보여 주시는 더 넓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Spectrum
성령님을 이해하는 여러 시선
먼저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부터 확인해 봅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십니다.
이 공통의 고백 위에서 서로 다른 전통이 성령님의 사역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주제 | 서로 다른 이해 |
|---|---|
| 성령세례 | 회심과 함께 주어지는가 / 회심 이후의 특별한 경험인가 |
| 은사 |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 특별한 시대에 주어진 표지였는가 |
| 방언 | 모든 신자에게 가능한 은사인가 /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인가 |
| 성령충만 | 반복해서 경험하는 특별한 사건인가 / 지속적으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삶인가 |
이 차이는 누가 더 성령님을 잘 아는지를 겨루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각 전통이 성경의 어떤 부분에 더 주목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신학적 차이를 알게 되더라도, 우리의 시선이 차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전통은 성령님을 어떤 모습으로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는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특별한 시간에만 함께하실까요?
우리는 기도회나 수련회, 부흥집회와 같은 시간에 성령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곳에만 성령님을 가두지 않습니다.
창조의 혼돈 가운데서도,
마른 뼈가 놓인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러 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성령님은 함께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월요일 아침은 어떨까요?
교무실은 어떨까요?
수업 준비를 하는 책상 앞은 어떨까요?
학생과 갈등한 뒤 마음이 복잡한 시간은 어떨까요?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시간과 내가 혼자 살아가는 시간을 따로 나누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성령님의 일은 언제나 놀라울까요?
성경에는 기적이 있습니다.
병이 낫고, 방언을 하고, 예언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일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오래 참게 하시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를 알아차리는 눈은 특별한 사건만 바라보는 눈과는 조금 다릅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살피는 눈입니다.
나는 어떤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치고 있는 성령님의 일은 없습니까?
(기록 공간)
Formation
나는 누구와 함께 교실에 들어가는가?
교사는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져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도 그렇고, 학생과 어려운 문제를 마주할 때도 그렇습니다.
학부모를 만나야 할 때도, 동료와 갈등을 겪을 때도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한 다음 모셔 오는 분이 아닙니다.
혼돈 가운데 이미 계셨고,
죽음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일하셨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내일 들어갈 교실에도 이미 성령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교실 문을 열기 전에 학생들을 위해 내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교안도 필요하고, 자료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령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 오늘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 주세요.”
“제가 쉽게 포기하는 학생을 다시 바라보게 해 주세요.”
“제 말보다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게 해 주세요.”
성령님은 우리를 단순히 더 능력 있는 교사로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학생을 대하는 마음을 바꾸시고, 쉽게 화내는 사람에게 오래 참는 마음을 주시고, 한 번 실패한 학생에게 다시 기회를 주게 하시며,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성령님은 교사의 삶을 조금씩 빚어 가십니다.
내일 아침 교실 문 앞에서
내일 아침 학교에 도착해 교실 문 앞에 잠시 서 보세요.
문을 열기 전에 오늘 만날 학생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성령님께서 나보다 먼저 이 교실에 계십니다.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성령님께서 그들을 아십니다.
내가 그 학생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전에 성령님께서 그 학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의 교실은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기록 공간)
이번 주의 질문
강의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성령님이 성경이 보여 주시는 성령님의 전부일까?
이제 이 질문을 조금 바꾸어 봅시다.
나는 성령님을 특별한 집회에서만 찾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놀라운 체험이 있어야만 성령님이 일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교회에서는 성령님을 믿으면서 학교에서는 그분을 잊고 지내지는 않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한 가지 더 마음에 품고 한 주를 보내 봅시다.
오늘 나는 성령님과 함께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가?
영성일기
이번 한 주 동안 성령님께서 이미 함께하고 계셨음을 발견한 순간을 기록해 보세요.
특별한 경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학생과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바뀌었던 순간,
말씀 한 구절이 오래 남았던 순간,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기다렸던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지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순간이면 충분합니다.
1
성령님의 도우심을 가장 가까이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기록 공간)
2
돌이켜 보니 성령님께서 나보다 먼저 일하고 계셨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나요?
(기록 공간)
3
이번 주 한 학생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기록 공간)
이번 주의 기도
성령님,
제가 성령님을 특별한 순간에만 찾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할 때에도 함께하시고,
수업을 준비할 때에도 함께하시고,
학생과 갈등할 때에도 함께하시고,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제가 혼자 교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먼저 그곳에 와 계시는 성령님과 함께 학생들을 만나게 해 주세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시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시고,
제 말과 행동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게 해 주세요.
오늘도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마치는 묵상
성령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크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차리는 것보다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창조의 처음부터 함께하셨고,
마른 뼈 가운데 생명을 일으키셨으며,
두려워하는 제자들 가운데 찾아오셨고,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특별한 순간에만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에도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성령님께서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성령님이 계신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의 일하심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잠시 눈을 감아 봅시다.
내일 내가 걸어갈 길을 떠올려 보세요.
학교로 가는 길,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
학생을 만나는 순간,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모든 자리에서 성령님과 함께 걷는 나를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조용히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성령님, 오늘도 저와 함께 걸어 주세요.”
(충분한 여백)
교사용 TIP
4강에서는 성령님에 대한 참여자의 경험을 평가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방언이나 강렬한 기도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고, 누군가는 특별한 체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도 성령님을 더 많이 경험했다는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Experience에서 개인의 경험이 충분히 드러난 뒤, Scripture를 통해 시선을 성경으로 옮겨 주세요. 성령님에 관한 신학적 차이를 먼저 설명하기보다 창세기, 에스겔, 요한복음, 사도행전의 본문을 따라가며 성경이 보여 주는 성령님의 모습을 먼저 경험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Spectrum에서는 교단이나 전통의 차이를 판단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공통의 신앙고백을 먼저 확인하고, 서로 다른 해석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강조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정도로 진행하면 충분합니다.
이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 Formation입니다.
참여자가 “성령님은 특별한 집회에서만 만나는 분”이라는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이 매일 살아가는 교실과 관계와 일상 속에서도 성령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4강의 목적은 충분히 살아납니다.
시간 운영안
| 과정 | 내용 | 시간 |
|---|---|---|
| Experience | 성령님에 대한 첫 경험과 현재의 이해 돌아보기 | 15분 |
| Scripture ①·② | 창세기 1장과 에스겔 37장 읽기 | 20분 |
| Revelation | 창조와 회복의 장면에서 성령님의 일하심 발견 | 10분 |
| Scripture ③·④ | 요한복음 14–16장과 사도행전 2장 읽기 | 15분 |
| Theology |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성령님의 정체성과 사역 정리 | 10분 |
| Spectrum | 성령세례·은사·방언·성령충만에 대한 다양한 이해 | 10분 |
| Formation | 교실에서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교사의 삶 성찰 | 5분 |
| 영성일기·기도 | 이번 주의 질문과 기도 | 5분 |
| 총 90분 | 9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