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UP2 영적 영역
3강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 크게 만나다
핵심 질문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Experience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합니다.
나는 교사입니다.
누군가의 부모입니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나를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나를 설명하는 말과 나 자신을 거의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서 말입니다.
잠시 멈추어 봅시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말과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방식도 같을까요?
혹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보세요.
그리고 이름 주변에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 봅시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사
엄마
아빠
장남
성실함
게으름
걱정이 많음
책임감
외로움
리더
실패
성공
내향적
완벽주의
따뜻한 사람
좋은 단어를 고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그대로 적어 보세요.
(충분한 기록 공간)
그 이름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제 조금 천천히 적은 단어들을 바라봅시다.
내가 가장 자주 떠올리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그 단어는 누가 내게 붙여 준 것인가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평가가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인가요?
그 단어가 사라진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될까요?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단어는 무엇인가요?
왜 그것을 숨기고 싶습니까?
반대로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요?
(기록 공간)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적어 놓은 단어들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Scripture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소개하실까요?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성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소개하시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직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좋은 문장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지도 않아도 됩니다.
그저 본문을 천천히 읽어 봅시다.
첫 번째 읽기
창세기 1장 26–31절
(성경을 읽는다.)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표현을 표시해 보세요.
반복되는 말에는 ○
마음에 걸리는 문장에는 밑줄
잘 이해되지 않는 곳에는 ?
를 표시해도 좋습니다.
읽고 나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기록 공간)
다시 읽기
이번에는 인간에게 조금 더 집중해서 읽어 봅시다.
창세기 1장 26–31절을 다시 읽으면서 다음 질문을 따라가 보세요.
인간은 무엇을 하는 존재입니까?
무엇을 이루어 낸 존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존재입니까?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뒤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렸습니까?
다시 본문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을 적어 보세요.
(충분한 기록 공간)
잠시 멈춤
창세기 1장을 읽는 동안에는 아직 ‘죄’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나요?
성경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기록 공간)
세 번째 읽기
이번에는 창세기 3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창세기 3장 1–13절
(성경을 읽는다.)
이번에는 다음 질문을 가지고 읽어 보세요.
인간은 무엇을 선택합니까?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무엇을 숨깁니까?
하나님은 무엇을 찾으십니까?
읽고 난 뒤 한 구절을 천천히 다시 읽어 봅시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왜 죄를 지었느냐?”였습니까?
아니면 “네가 어디 있느냐?”였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위치를 묻는 말일까요?
죄를 추궁하기 위한 질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사람을 다시 찾으시는 질문일까요?
잠시 이 질문을 마음에 머물게 해 봅시다.
네가 어디 있느냐?
혹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Revelation
하나님은 인간을 먼저 무엇이라고 부르시는가
창세기 1장과 3장을 함께 읽고 나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성경의 첫 선언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기 전까지 하나님의 형상이었다가 죄를 지은 뒤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워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죄와 상처와 왜곡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인간을 설명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 질문은 죄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을 죄 그 자체로만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내가 이룬 성취에서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 내가 경험한 실패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도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실패도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상처도, 직업도, 역할도, 다른 사람의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보다 앞에 놓여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바라보시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심히 좋았더라.”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이름을 붙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나를 바라보며 만들어 낸 사람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바라보신 사람이다.
Theology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합니다.
그런데 익숙하다고 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 영혼
□ 이성
□ 자유의지
□ 사랑
□ 관계
□ 창조성
□ 거룩함
□ 하나님을 닮은 모습
□ 잘 모르겠다
□ 기타 ____________________
내가 떠올린 것은 성경이 직접 말하고 있는 내용일까요?
아니면 교회에서 오랫동안 들어 온 설명일까요?
이 질문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의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무엇을 맡기셨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복 주시고, 땅에 충만하도록 하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도록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인간 안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들어 있다는 뜻을 찾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세계를 어떻게 대하는지와도 연결됩니다.
여러 가지로 이해해 온 하나님의 형상
교회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 왔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인간에게 있는 이성이나 도덕적 능력과 같은 특징에 주목했습니다. 인간 안에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도록 지음받았다는 관계적 특징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본 것입니다.
또 다른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상을 돌보고 다스리는 책임을 맡기셨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도록 부름받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해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세 가지 설명을 반드시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보지 않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것,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책임을 맡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의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설명이 성경의 어떤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여 주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머릿속의 개념에서 조금씩 사람의 삶에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나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나는 나 자신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있었나요?
성취입니까?
실패입니까?
성격입니까?
직업입니까?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 말입니까?
그것들은 모두 나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성공했기 때문에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정체성은 내가 무엇을 이루었을 때 얻는 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주어진 정체성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게 합니다.
정체성이 사명보다 먼저입니다.
Spectrum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서로 다른 신학적 설명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한 가지 공통된 고백을 붙들어 봅시다.
함께 고백하는 것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람의 가치는 성취나 능력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여러 신학적 설명을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강조점
어떤 전통은 인간 안에 있는 이성과 도덕성, 자유의지와 같은 특징을 강조합니다.
어떤 전통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또 어떤 전통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고 다스리도록 맡겨진 존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는 신학적 접근도 있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그 형상은 죄로 인해 왜곡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어 간다는 이해입니다.
이런 설명들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안에 있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세계를 돌보는 삶에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가는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일까요?
각각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단순한 개념으로 붙잡기가 어려워집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여기에서 질문을 조금 더 넓혀 봅시다.
하나님의 형상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나에게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관계가 불편한 사람에게도 있을까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있을까요?
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도 있을까요?
말을 듣지 않는 학생에게도 있을까요?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도 있을까요?
장애가 있는 학생에게도 있을까요?
실패한 사람에게도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결국 이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나의 존엄만 설명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존엄까지 함께 설명하는 말입니다.
Formation
나는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교사는 하루 동안 아주 많은 학생을 만납니다.
그러다 보면 학생 한 명을 떠올릴 때 이름보다 특징이 먼저 생각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늘 산만한 아이.”
“말이 없는 아이.”
“자꾸 거짓말하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을 알아야 하고, 학생의 특징을 살펴야 합니다.
다만 오늘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 말로 하나님께서도 그 학생을 부르실까요?
한 학생을 떠올려 봅시다
최근 가장 마음이 쓰였던 학생을 한 명 떠올려 보세요.
가장 가르치기 어려웠던 학생도 좋습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학생도 좋고, 반대로 가장 자랑스러웠던 학생도 좋습니다.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됩니다.
그 학생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 하나를 적어 보세요.
(기록 공간)
이제 그 단어 아래에 한 문장을 적어 봅시다.
이 학생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나요?
아니면 생각보다 어색한가요?
혹은 특정한 학생을 떠올리면 이 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나요?
그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기록 공간)
예수님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고백이 실제 삶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예수님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세리장이며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삭개오를 쉽게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 가운데 하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야.”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잘못을 모른 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과거만 바라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나셨습니다.
그 만남 이후 삭개오의 삶은 실제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사람의 잘못을 없는 것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현재의 모습 하나로 가두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죄라고 부르면서도 사람 전체를 그 죄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을 실패한 사람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것.
예수님에게서 그런 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학생을 보는 교사의 시선은 학생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같은 학생을 보면서도 어떤 이름을 먼저 붙이느냐에 따라 내가 그 학생에게 기대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기다리는 시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교리는 교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학생을 성적만으로 보지 않는 것,
문제행동만으로 보지 않는 것,
장애나 가정환경만으로 보지 않는 것,
한 번의 실수로 그 학생의 미래를 판단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어려운 행동을 무조건 눈감아 주자는 뜻도 아닙니다.
학생을 정확하게 보고, 필요한 것은 바로잡되, 그 학생을 우리가 본 한 부분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학생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교사인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나요?
“나는 부족한 교사야.”
“나는 원래 이것밖에 안 돼.”
“나는 실패했어.”
“나는 믿음이 부족해.”
그 말들이 나를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닙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이번 주의 질문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성공으로만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실패로만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처로만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죄로만 나를 정의하고 있지는 않은가?
직업이나 역할로만 나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내 이름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주에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마음에 품고 살아가 봅시다.
나는 누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바라보게 될까?
영성일기
이번 한 주 동안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실제 삶에서 떠오른 순간을 기록해 보세요.
학생과 나눈 짧은 대화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학생을 바라보게 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려다가 한 번 더 기다렸던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오래 머물렀던 한 구절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던 순간도 기록해 보세요.
1
이번 주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 사람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떤 모습이 보였나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무엇이 새롭게 보였나요?
(기록 공간)
2
이번 주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나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다고 느꼈나요?
(기록 공간)
3
이번 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가장 실제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기록 공간)
마치는 묵상
학생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학생을 바라보셨습니다.
학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학생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내가 잘했을 때만이 아니라
잘하지 못했을 때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만이 아니라
실망시켰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충분한 여백)
이번 주의 기도
주님,
제가 저 자신을 너무 작은 말들로 가두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붙인 이름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매이지 않고
주님께서 먼저 바라보신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학생들을 성적과 행동과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학생에게서도,
어려움을 주는 학생에게서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한 사람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같은 시선을 배우게 해 주세요.
아멘.
교사용 TIP
3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질문이 생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perience에서는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붙어 있는 여러 이름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성급하게 해석하거나 좋은 방향으로 정리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Scripture에서는 창세기 1장과 3장을 먼저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죄”에 대한 해석을 너무 일찍 제시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만난 뒤 창세기 3장을 읽도록 해야 합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도 정답을 설명하기보다 참여자 자신에게 열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질문이 회개의 질문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경험하는 질문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Formation에서는 실제 학생 한 명을 떠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마음이 쓰이는 학생이나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떠올리게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만 “학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세요”라고 결론을 강요하지는 마세요. 참가자가 스스로 자신의 시선과 성경의 시선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 운영안
| 과정 | 내용 | 시간 |
|---|---|---|
| Experience |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올리고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 돌아보기 | 15분 |
| 함께 나누기 | 나를 설명하는 이름과 그 이름이 생겨난 과정 나눔 | 10분 |
| Scripture | 창세기 1장과 3장 읽기, 인간에 대한 성경의 첫 시선 발견 | 20분 |
| Revelation |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성찰 | 10분 |
| Theology |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이해 | 10분 |
| Spectrum | 공통 고백에서 출발해 여러 신학적 강조점 살펴보기 | 10분 |
| Formation | 학생과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기 | 10분 |
| 영성일기·기도 | 이번 주 질문과 묵상 | 5분 |
| 총 90분 | 90분 |
3강을 마치며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수많은 답을 붙이며 살아갑니다.
교사, 부모, 자녀, 리더, 실패한 사람, 성공한 사람, 좋은 사람, 부족한 사람.
그 모든 말에는 나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이야기합니다.
그 사실은 나에게도,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바라보신다면,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특히 매일 만나는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3강의 질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아마 우리는 이 질문에 앞으로도 계속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완성된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 사람을 빚어 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