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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년 4월 16일 내용: 프롤로그 ~ 1장. 성경, 해석과 만나다 (15~102) - 이형식 장소: 이지윤선생님댁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프롤로그

  •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
    • 정말 꿀보다 더 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움직이는 힘이 있다(히4:12)는 말씀은 내게 제대로 적용되고 있습니까?
    • 필자의 목적 : 자신의 성경 읽기를 한 번 더 성찰하고, 또 보다 정제된 해석을 위한 자극을 받는 것.

1. 성경, 해석과 만나다

  • 성경관과 성경해석 (성경 무오설)
    • 글을 읽기 전 우리는 ‘장르’를 예측한다.
    • 마태복음 - 예수님의 족보 14+14+14=42 ‘의도적 편집’ 마태가 보고하는 ‘진실’은 구약성경이 보고하는 ‘진실’과 어긋난다.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족보는 서로 다르다
    • 이 외에도 수많은 불일치 하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진술들 p.33
    • 많은 성도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을 ‘대충’ 읽었다는 반증이다.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고서도 ‘신앙 없다고 욕먹을까 봐’ 감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다
    • 우리가 갖고 있지도 않은 원문의 무오성에 관한 교리적 고백
    •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것은 ‘자기 숭배’다. 금송아지 :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
    • 우리의 멋진 성경관이 삶을 조금이라도 더 신실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고상한 교리가 무슨 유익이 있을 것인가?
    •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해석학적 우상숭배’를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복음, 비틀린 일상
    •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
    •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
    • 탕자와 첫째 아들
    • 포도원 품꾼 비유
    • 로마 시민권과 원정 출산, 하늘 나라 시민권
    • Pax Romana : 칼과 돈의 힘으로 지탱되는
    • 검투사의 핏빛 경쟁과 ‘자신의 몸’을 때려 복종시키는 바울
    •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하나님의 양자인 우리와 진짜 아들인 예수님의 십자가형
    • 이처럼 복음이 드러내는 역전과 비틀림은 실상 이미 뒤집히고 비틀린 우리의 세계를 ‘바로잡는’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이것이 바로 ‘의롭게 하다’라는 말이 품은 의미의 한 가닥이다.
  • 해석이라는 이름의 정치
    • 하나님의 계시는 맑지만, 그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우리 안경은 투명하지 않다.
    • 율법을 내세웠던 유대인들의 ‘자랑’은 죄에 휘둘리는 자신의 구린 삶을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가림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 성경의 칼날에 우리를 갖다 대는 일이다.
    • 성경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철저한 검증과 비평의 대상이 된다.
  • 원문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 고전14:34-3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람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
    • 서로 다른 사본들에서 이 구절이 서로 다른 위치에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 34-35절을 위치시키고 있는 사본도 많지만, 이 두 절을 40절 이후에 갖다 붙인 사본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이런 일관성의 결여를 근거로 이 ‘떠돌이’ 구절이 고린도전서의 원문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성경 원문의 불확실함이 완벽한 신학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신학의 완전함에 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 손으로 구성해 낸 신학 속에 가두어지지도 않는다.
    •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걸음조차 성경에 관한 특정 교리 속에 고착시키려는 시도가 위험하다는 뜻이다.
  • 번역 성경 읽기
    • 마6:34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내일 염려하라는 뜻인가?

    •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므로 너희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 대부분의 염려는 내일에 대한 것들이다. (당장 발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 마5:13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 너희는 소금이니 음식을 짜게 하라? (X)

    • 고전11: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 함께 먹으면 안된다 (X) → 비록 열심히 주의 만찬이라 먹고 있지만, 지금처럼 파행적인 방식으로 먹으면 제대로 된 주의 만찬이라 인정할 수 없다. (O)

    •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지니” → 자기 검증에 통과한 후에라야 (X) → 그 후에야 (X) 그렇게, 그런 식으로 (O), 자기를 살피는 방식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기억하는 주의 만찬을 먹고 마시는데 무슨 선결 조건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생각은 은총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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