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예레미야를 단순히 “이스라엘의 죄를 꾸짖은 선지자”로 보는 것보다, 고대 근동의 거대한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유다 왕국이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의 한복판에 예레미야를 세워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약 100년 전에 멸망한 상태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722년경 앗수르에 의해 사마리아가 함락되면서 국가로서 사라졌고,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것은 약 627년경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직접 심판을 선포한 정치적 대상은 기본적으로 남유다였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예레미야의 메시지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었는데도 유다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논리가 반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1.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의 큰 그림

예레미야의 활동 시기는 대략 BC 627~586년입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굉장히 독특합니다.

시기국제정세유다의 상황
BC 627경앗수르 쇠퇴, 바벨론 등장요시야 왕의 개혁
BC 612니느웨 함락앗수르의 붕괴로 유다에 독립의 기회
BC 609이집트가 북상, 요시야 전사여호아하스 폐위, 여호야김 즉위
BC 609~605이집트 영향력유다, 이집트의 속국화
BC 605갈그미스 전투, 바벨론 승리국제질서가 바벨론 중심으로 전환
BC 605~598바벨론 패권여호야김이 바벨론에 조공하다 반란
BC 597예루살렘 함락, 1차 대규모 포로여호야긴 포로, 시드기야 즉위
BC 589~586유다의 최후 반란예루살렘 포위와 성전 파괴

이것이 예레미야가 살아야 했던 세계였습니다. 앗수르 → 이집트 → 바벨론으로 패권이 급격하게 이동했고, 유다는 그 사이에서 **“누구 편에 서야 살아남는가?”**를 놓고 계속 흔들렸습니다. (BibleGateway)


2. 북이스라엘: 이미 한 번 무너진 나라

예레미야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더 이상 독립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경 앗수르에게 멸망했습니다.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상당수 주민이 강제 이주되었습니다. 즉 예레미야가 등장했을 때 유다 사람들에게는 이미 **“이스라엘이 외세에 의해 멸망한 실제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그런데 문제는 남유다가 그것을 자신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유다에는

  •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 다윗 왕조가 이어지고 있으며

  •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예루살렘이 있고

  • 아브라함·다윗 언약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에게는 이런 심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북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다가 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까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생각을 예레미야가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3. 남유다 국내 정치: 요시야의 개혁과 그 이후

① 요시야 시대 — 희망이 실제로 있던 시기

예레미야가 처음 부름받았을 때 왕은 요시야였습니다.

이 시기는 예레미야에게 가장 희망적인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시야는 우상숭배를 제거하고 성전을 정비했으며, 율법책의 발견을 계기로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실시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정세도 유리해 보였습니다.

앗수르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BC 612년에 함락되면서 유다는 오랫동안 자신을 억누르던 앗수르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BibleGateway)

따라서 이때 사람들은 상당히 낙관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구나.”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낙관론의 이면을 보았습니다.

외형적인 종교개혁과 백성의 마음의 변화는 동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0의 문제의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4. 그런데 BC 609년, 모든 것이 뒤집힌다

요시야가 이집트의 바로 느고를 막기 위해 므깃도 전투에 나갔다가 죽습니다.

이 사건은 유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유다는 급격하게 정치적 주권을 잃어갑니다.

이집트의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이름까지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유다는 사실상 이집트의 속국이 됩니다. (BibleGateway)

이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을 이집트의 왕이 임명합니다.

유다의 정치적 자존심이 무너진 것입니다.


5. 경제 상황: 백성은 세금을 통해 국제정세의 비용을 부담했다

여기서 경제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야김은 이집트에 바쳐야 할 막대한 공물을 백성에게 세금으로 거두었습니다.

열왕기하 23:35는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백성에게서 평가하여 거두어 바로 느고에게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BibleGateway)

따라서 국제정세의 변화는 단순히 왕궁에서 벌어지는 외교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전쟁 → 조공 → 세금 → 백성의 부담

이라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고대 유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농업과 토지에 기반한 경제였고, 농촌 가구들은 왕실에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왕권과 중앙정부의 부담이 커질수록 농민층의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Israeli Research Community Portal)

예레미야가 반복해서

  • 가난한 사람

  • 고아

  • 과부

  • 노동자

  • 빚진 사람

  • 토지를 빼앗기는 사람

  • 부정한 재판

을 문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레미야 5:28은 당시 상류층을 상당히 충격적인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살지고 윤택하며…”

그런데 그들의 번영은 사회적 정의와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BibleGateway)

즉 예레미야가 말한 “죄”는 단순히 우상숭배라는 종교적 죄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종교

부패한 정치

착취적인 경제

무너진 사법 정의

국제정세를 이용한 권력투쟁

이 모두가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6. 여호야김: 예레미야와 가장 극렬하게 충돌한 왕

여호야김은 예레미야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요시야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예레미야 22장은 왕에게 직접적으로 정의와 공의를 요구합니다.

특히 여호야김은 왕궁 건축과 사치에 몰두하면서 백성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예레미야의 비판은 단순합니다.

“왕이 왕답게 정의를 행하지 않는다.”

여호야김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와 백성의 정의라기보다 왕권 유지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었습니다.

그리고 국제정세가 이를 더 악화시켰습니다.


7.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 — 세계의 주인이 바뀐다

여기가 예레미야 시대의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에서 이집트 군대를 격파합니다.

이 순간 국제질서가 사실상 바뀝니다.

이전에는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앗수르를 견제할 수 있다.”

였다면,

이제는

“바벨론이 이 지역의 주인이 되었다.”

가 됩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봉신이 되었지만 약 3년 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BibleGateway)


8. 그런데 유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여기가 예레미야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의 판단은 반드시 “미친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영원히 강하겠는가?”

“이집트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주변 국가들도 바벨론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가 이집트와 연합하면 바벨론을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는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친이집트파와 반바벨론 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예레미야가 이 정치적 계산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9. 예레미야의 주장은 정치적으로는 매우 위험했다

예레미야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라.”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조언이 아니었습니다.

유다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반역적인 주장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과 군대와 외교관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생존전략은

“어떻게 하면 바벨론을 물리칠 것인가?”

였는데,

예레미야는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세력이다. 저항하지 말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는 굴욕입니다.

민족적으로는 패배주의입니다.

군사적으로는 항복입니다.

종교적으로는 더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데 왜 바벨론에게 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10. 여기서 “성전 신앙”이 등장한다

예레미야 7장의 유명한 성전 설교가 바로 이 배경에서 이해됩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이다. 여호와의 성전이다. 여호와의 성전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버리실 리 없다.
예루살렘을 버리실 리 없다.
다윗 왕조를 버리실 리 없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할 수 없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바로 그 확신을 깨뜨립니다.

성전이 있다고 해서 죄를 계속 지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가 함께 존재했고, 성전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안전보장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성경허브)


11. 백성들의 심리: “설마 우리가 망하겠어?”

저는 당시 백성들의 심리를 이해할 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이런 식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안전하다.”

↓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

“예레미야가 말하는 심판은 지나친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상대해야 했던 가장 무서운 신앙적 착각입니다.


12.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사용자께서 제시하신 문장이 정확히 이 지점을 짚고 있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조금 더 정밀하게 표현하면,

“당시 모든 예언자가 평안을 외쳤다”라고 일반화하기보다는,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실제로 예레미야와 대립하면서 ‘평안·회복·빠른 해방’을 선포한 예언자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하나냐입니다.

예레미야 28장에서 하나냐는 공개적으로 예레미야의 멍에를 부수고,

바벨론의 멍에가 2년 안에 꺾일 것

이라고 선언합니다.

백성 입장에서는 누가 더 듣기 좋은 말을 하는지 명백합니다.

예레미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온다.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
예루살렘이 무너질 수 있다.”

하나냐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신다.
2년이면 바벨론의 멍에가 깨진다.”

실제로 하나냐는 제사장들과 백성 앞에서 이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BibleGateway)

어느 쪽이 인기가 있었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13. 예레미야가 더 고통스러웠던 이유

여기서 예레미야의 고통이 단순히 “사람들이 말을 안 들어줘서 힘들었다”는 수준을 넘어갑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이 듣고 싶어 하는 말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경험했습니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위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맡기신 것은

폭로

였습니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회복의 약속

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해야 했던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찾아올 심판

이었습니다.

백성이 듣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전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이 죄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다.”

였습니다.


14. 왕들은 왜 예레미야를 싫어했을까?

정치인의 입장에서도 예레미야는 매우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왕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드기야 시대에는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저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왕 입장에서

“백성들에게 항복하라고 말하는 선지자”

를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국가적 자존심도 있고, 정치적 압력도 있고, 군사적 이해관계도 있습니다.

결국 예레미야는 체포되고 구덩이에 던져지는 등 실제적인 박해를 받습니다.

당시 예레미야를 반대했던 세력은 단순히 “예레미야가 싫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 왕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 군사적 사기를 떨어뜨리고

  • 국가의 저항 의지를 꺾으며

  • 백성에게 항복을 권하고

  •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패배주의를 퍼뜨린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가해진 박해에는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갈등이 서로 얽혀 있었습니다. (BibleGateway)


15. 경제적으로도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불편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기득권층에게 상당히 불편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원인을 단순히 “백성이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 전체의 구조를 폭로합니다.

부자들은 부유해졌지만 가난한 자의 권리를 짓밟았다.

재판은 공정하지 않았다.

지도자들은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

왕은 자신의 궁전을 짓는 데 관심이 있지만 정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에게 거짓된 확신을 주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단순한 종교개혁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종교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고발이었습니다.

고대 유다의 경제구조에서도 왕실과 농촌 가구 사이에 세금과 경제적 압력이 존재했고, 후기 왕국의 경제적 번영이 사회 전체에 균등하게 돌아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Israeli Research Community Portal)


16.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현실적으로도” 예레미야가 틀린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비극을 훨씬 깊게 만듭니다.

예레미야가 처음부터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시대에 나타났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상황이 좋아 보였습니다.

요시야

  • 종교개혁

  • 성전 정비

  • 율법 발견

  • 앗수르의 쇠퇴

  • 국가적 독립의 가능성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고 계신다.”

그런데 요시야가 죽습니다.

그리고

이집트가 들어옵니다.

그다음

바벨론이 들어옵니다.

왕이 바뀝니다.

또 왕이 바뀝니다.

백성은 세금을 더 냅니다.

전쟁의 위험은 커집니다.

포로가 발생합니다.

예루살렘은 불안해집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종교적 확신에 더욱 매달립니다.

바로 그때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그 확신 자체가 너희를 속이고 있다.”


17. 그래서 예레미야의 적은 단순히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관점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를 괴롭힌 사람들을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사람들”

이라고 이해하면 예레미야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이 원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해도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우리 국가를 반드시 지켜주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절대로 무너지지 않게 하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하나님”

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선포한 하나님은

“너희가 선택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언약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18.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유다에게 경고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레미야 3장에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비교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그것을 보고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메시지의 아이러니입니다.

역사가 이미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했다.”

그런데 유다는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이야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사실상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너희 앞에 놓인 너희 자신의 미래다.”


19.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예루살렘의 한 일반적인 유다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아침

밭으로 나갑니다.

세금을 걱정합니다.

올해 수확이 충분하지 않으면 빚을 져야 합니다.


시장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바벨론이 또 움직인다고 하더라.”

“이집트가 도와줄 거라던데.”

“우리 군대가 있으니 괜찮겠지.”


성전

제사를 드립니다.

성전이 그대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안도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잖아.”


길거리

예언자가 외칩니다.

“회개하라! 심판이 가까웠다!”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곧 다른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평안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왕궁

정치 지도자들은 논의합니다.

“이집트와 연합해야 한다.”

“바벨론은 멀리 있다.”

“지금 항복하면 나라가 끝난다.”

“우리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예레미야가 말합니다.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국제정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20. 이것이 예레미야의 삶이 평안할 수 없었던 이유다

따라서 질문에 제시하신 문장은 상당히 정확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당부한 말씀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폭로하며 그에 따른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니, 어찌 그의 삶이 평안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이면 좋습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심판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허무맹랑한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매우 현실적인 위기였습니다.

바벨론은 실제로 강해지고 있었고, 이집트와의 패권경쟁도 실제였습니다. 유다의 왕들은 실제로 외교적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백성은 실제로 세금을 내야 했고, 전쟁의 위험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BibleGateway)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현실을 한 단계 더 깊은 곳에서 해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벨론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우리에게 보내시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집트가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우리가 하나님보다 이집트를 의지하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안전한가?”

라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이 있는데도 왜 너희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21. 그리고 이것이 예레미야의 가장 고독한 지점이다

예레미야가 외친 메시지는 단순히 **“망한다”**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구조는 이렇습니다.

죄의 폭로 → 회개 요구 → 심판 경고 → 심판의 불가피성 → 그 이후의 회복

즉 예레미야는 심판만 말한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하게 심판을 선포했기 때문에 동시에 누구보다 깊이 새 언약과 회복을 이야기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심판을 이야기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백성은 회복만 듣고 싶어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심판을 먼저 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예레미야는 외로웠습니다.


결국 예레미야 시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북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고, 남유다는 그 멸망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도 자신만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앗수르가 무너지고 이집트와 바벨론이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유다의 왕과 정치 지도자들은 생존을 위해 외교적 동맹을 선택했고, 경제적으로는 전쟁과 조공과 세금의 부담이 백성에게 전가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부와 권력이 집중되고 가난한 자들이 억압받았고, 종교적으로는 성전과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신앙이 회개를 대신하는 안전장치처럼 변질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외친 말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안전하다.”

라는 시대에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숨기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

“예루살렘은 무너지지 않는다.”

라고 믿는 시대에

“예루살렘이 무너질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라고 외치는 시대에

“먼저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시는지를 직면하라.”

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예레미야가 짊어졌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냐가 “2년 안에 바벨론의 멍에가 깨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했을 때, 예레미야가 그 앞에서 맞서야 했던 장면은 이 시대의 긴장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BibleGateway)

따라서 사용자께서 제시하신 두 번째 문장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고독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심판의 말을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선포한 메시지가 당시 백성의 종교적 확신·왕의 정치적 계산·지도층의 경제적 이해관계·국가적 자존심을 동시에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고난은 그의 사역에서 부수적으로 따라온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는가에서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BibleGate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