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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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당부한 말씀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폭로하며 그에 따른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었으니, 어찌 그의 삶이 평안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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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당시 무수히 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을 강조하며 미래의 평안과 회복, 구원을 전하였으니 홀로 죄악을 폭로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앞에 펼쳐진 길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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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영원한 언약을 굳게 믿기만 했던 이스라엘과 예수 이름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맹목적인 신앙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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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없고, 불의와 불법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메시지없는 위로는 참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마약에 지나지 않(는다).
서론 (1:1-3)
- 예레미야는 국력의 쇠락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유다의 죄악 때문에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다.
- 그는 … 이스라엘을 지탱해 주었던 ‘다윗 언약’과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라는 두 기둥을 때려 부수려 했다.
-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 ‘세상의 물질적인 복은 아니더라도 마음의 참된 평안을 얻게 된다’는 식의 말은 예레미야의 비참한 삶 앞에서 그저 무색할 뿐이다.
예레미야서의 구조
- 단락을 구분하는 기준: 예레미야의 말씀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
- 시간대 변화 : 25장, 36장, 45장에서 여호야김 4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시점 변화
- 25장까지 : 일인칭 시점에서 자신에게 주신 야훼의 말씀을 선포
- 26장부터 : 자신을 삼인칭으로 기술하며 사역하던 때의 시대 상황을 주로 언급
- 1장과 45장에 ‘세우다’ ‘헐다’ ‘심다’ ‘뽑다’ 등이 공통적으로 쓰였고, ‘예레미야의 말(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를 볼 때 45장은 1장부터 이어진 내용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중요한 시간대: 여호야김 4년, 1장, 25장, 45장
- 46-51장은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내용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야훼의 말씀 (1-25장)
여호야김 시대부터 시드기야 시대까지의 상황과 예레미야의 사역 (26-45장)
예레미야의 고난과 삶이 담긴 26-29장, 37-44장은 ‘예레미야 수난기’ 혹은 ‘바룩의 비망록’이라고 불린다.
열방을 향한 말씀 (46-51장)
예루살렘 멸망과 포로, 여호야긴의 석방 (52장)
예레미야서를 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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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상황과 연관하여 특정한 청중에게 예레미야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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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문을 ‘영적으로’만─이 의미는 종종 본문의 상황과 역사를 떠나 해석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이용되곤 한다.─(읽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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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는 포로기 혹은 포로 후기 신앙 공동체의 이해와 관심사가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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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를 읽을 때 최소한 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 주전 7-6세기의 맥락 : 다른 모든 것을 규정하는 기본 관점
- 포로기 혹은 포로기 이후의 유대 공동체의 맥락
- 오늘 우리의 맥락 : 기독교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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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시대 그리고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지 고려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성경 본문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리어 경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살과 피를 가진 예언자 그리고 그가 살고 사역했던 구체적인 현실을 배제해 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다.
아나돗 제사장 예레미야
-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은 사사 시대에 언약궤를 모셔 두었던 실로 성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실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사무엘을 언급 (15:1)
- 예레미야는 실로의 붕괴를 기억하고 있는 아나돗에서 자랐다.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전만을 굳게 붙잡고 회개는 하지 않는 백성의 모습과 실로의 멸망을 가져온 상황이 겹쳐 보였을지 모르겠다.
- 하나님은 실로를 파괴하셨듯이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하실 것이다.
예레미야의 시대
- 요시야 왕의 개혁과 관련하여 역대기와 열왕기의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음
- 요시야를 일러 “정의와 공의를 행한” 왕이라고 지칭함 (22:15-16)
- 주전 609년 요시야가 애굽왕 느고와의 전쟁에서 전사함
-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이었으나 느고가 폐위시켜 애굽으로 끌고 갔음
- 친애굽파인 여호야김을 왕위에 올림. 야훼를 바르게 섬기며 행하는데 아무 관심이 없음. 왕의 위엄을 내세우기 위한 거대한 토목 사업에 몰두함.
- 주전 605년(여호야김 4년) 애굽과 바벨론의 충돌. 갈그미스 전투. 느부갓네살이 애굽 군대를 크게 격파함.
- 주전 597년 아들 여호야긴 즉위. 느부갓네살의 팔레스타인 진격 및 여호야긴을 비롯한 수많은 지도급 인사가 포로로 끌려감. 바벨론 포로의 시작
- 느부갓네살이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명목상 왕으로 세움.
- 주전 587년. 느부갓네살이 진격. 시드기야의 독립시도를 저지. 예루살렘 함락. 시드기야 두 눈이 뽑힌 채 압송당함. 아들들 모두 처형당함. 예루살렘에 거하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에 걸쳐 포로로 끌려감.
- 바벨론은 유다에 왕을 세우지 않고 친바벨론 유다인을 총독으로 세움.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
-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남유다)의 멸망 이후에도 계속 사역을 했다. 미스바를 중심으로 그의 사역이 계속 되었고, 마지막 사역은 애굽에 내려간 유다 공동체에서 이루어졌다.
생각해 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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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를 읽을 때 고려해야 할 세 가지 맥락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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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말씀을 받는 것과 예언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일러주시는 말씀을 전한다면 예언자 개인의 견해나 안목, 판단은 아무런 쓸모가 없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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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의 활동이 특정한 시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오늘 우리가 구약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1. 예레미야의 소명 (1:4-19)
- 스스로 정한 비전이나 확신이 아니라, 오직 그를 부르신 하나님만이 그로 하여금 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게 한 원천이었다.
1장의 짜임새
머리말(1-3절)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우신 하나님(4-10절)
하나님의 부르심(4-5절) 예레미야의 두려움(6절) 하나님의 격려(7-8절) 예레미야의 사명(9-10절)
예레미야가 전할 말씀(11-19절)
첫 번째 환상: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것임(11-12절) 두 번째 환상: 예레미야가 선포할 말씀─북방에서 임할 재앙(13-16절) 결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격려하심
하나님의 부르심
-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성별하셨다는 것은 이후에 그가 정결해지고 순수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를 구별하여 따로 떼어 두셨음을 의미한다. ‘거룩’은 내게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예레미야의 두려움
-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 누가 사람들에게 심판 전하기를 좋아할 것인가? 도대체 누가 임박한 재앙을 즐겨 선포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 백성을 싫어하시는 것인지, 영원히 버리신 것인지, 다시 치료하지 않으실 것인애태우며 부르짖는 예레미야의 마음, 그의 당혹스러움과 슬픔이 4:10에서 묻어난다.
-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 행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절망한다. 우리가 얼나 연약하고 모자란 사람인지, 나의 못난 모습은 어쩌면 그렇게도 바뀌지 않는지, 내 안에 죄성과 쓴 뿌리는 얼마나 강한지 탄식한다.
- 바로 이러한 예레미야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들, 자신이 부족하다고 절감하는 자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격려
- 예레미야는 스스로 ‘아이’라 느끼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이며 그에게 전할 말씀을 주실 것이다. 예레미야의 사역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 그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다.
뽑고 부수다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예레미야는 죄로 인해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것이며 열방은 이를 위해 사용되는 하나님의 도구고 선포했다. 그의 사역은 사역의 웅장함, 여러 나라를 오가는 분주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는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실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열방의 감독자로 사역을 감당했다.
- 감독자로서의 여섯 개의 동사 : 뽑다, 파괴하다, 진멸하다, 뒤엎다, 세우다, 심다
- 참된 회복은 철저한 파괴 위에서 이루어진다.
두 환상
- 살구나무 : 샤케드 / 지켜보다 : 쇼케드 ~ ‘샤케드’와 ‘쇼케드’의 비슷한 발음을 이용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지켜보시면서 반드시 그것을 이루고 성취하실 것임을 단단하게 이르신다.
- 세상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보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세상의 힘 있는 이들이 득세하는 것 같으며, 예레미야가 선포한 심판과 재앙의 말씀도 평안과 구원의 말씀에 눌려 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야훼는 그 말씀을 이루고자 지켜보고 계신다.
- ‘북쪽’(차폰)은 고대 중동 문헌들에서도 강력하고도 신화적인 영역을 상징한다. 이에 대해 구약은 야훼 하나님이야말로 참된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왕이 되심을 증언한다. 야훼의 성인 시온이 ‘차폰’에 있다는 선포가 바로 이 점을 반영하고 있다.
1 주님은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그의 거룩한 산에서 그지없이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2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 온 누리의 기쁨이로구나. 자폰 산의 봉우리 같은 시온 산은, 위대한 왕의 도성, (시편48:1-2)
- 예레미야에게 이 말씀이 주어진 요시야 시대에는 ‘북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애매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벨론을 통한 멸망과 심판임이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 예레미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했음에도, 백성은 이를 납득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겉으로는 야훼를 섬기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상을 섬기는 백성이 있다.
예레미야와 하나님
- 열방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유린할 때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이 모든 재앙이 백성의 죄, 곧 하나님을 버린 죄에 대한 ‘심판’(미슈파트)임을 똑똑히 외쳐야 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다.
-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 이는 그들이 권력과 종교로 아무리 위협을 가한다 해도 예레미야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선포하고 증언할 것임을 뜻한다.
- 예레미야의 소명 기사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와 함께하셔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두 번이나 주어졌다. 무엇이 하나님의 구원인가? 곤경과 재난, 핍박으로부터의 건져내심이 구원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저들이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죽이려 함에도 불구하고 하님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 예레미야의 삶을 보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계속된 고난 속에서 고난을 견뎌내는 순종으로 드난다.
- 그래서 어떤 모욕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하님이 도우시면 모욕과 수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견뎌낼 수 있게 된다. (겔3:8-9)
생각해 볼 점
-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본문에서 그가 이러한 고백을 하는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의 슬픔에 대해 느낀 점을 나누어보자.
- 우리는 무엇에 대해 슬퍼하는가?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애통하는가? 우리는 언제 웃는가? 우리는 언제 기뻐하는가? 하나님 말씀의 강력함으로 인해 슬퍼하며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우리는 언제 그 말씀 듣기를 즐겨하는가?
- 기쁨과 감사, 찬양이 넘쳐야 할 우리의 삶 속에 예레미야의 슬픔은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예레미야를 열방 위에 세우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 자신은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사람에게 열방이 맡겨졌다는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는가?
-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구원하심이 쇠기둥과 놋성벽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묵상해보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예레미야의 사역에 어떻게 나타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