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에 놀라다
7. 하나님에 놀라다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God)이라는 단어가 둔하고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으며 아마도 위험한 존재를 지칭한다고 추측한다.
- 모든 신은 단지 만물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기운이다.
- 신과 세상을 합쳐 놓았다.
-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은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 신을 위층으로, 어쩌면 아예 집 밖으로 쫓아내고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게 했다.
- (중세) 그 오래된 하늘의 심술쟁이가 교회로 돌아와 지옥 혹은 적어도 연옥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자신의 끔찍한 진노를 달래라고 요구했다.
- 르네상스 ← 계몽주의,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위층으로 떠밀어 보내고 이곳 아래층은 순수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만 움직이도록 했다.
- 개혁주의, 청교도, 초기 감리교 ← 예수님의 죽음=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수단
- 무신론자들 → “아마도 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기셔도 됩니다.” ~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들이 걱정하는 데 모든 시간을 써야 함을 의미하는 반면, 없다면 모두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수가 반대하는 모든 것을 나는 좋아해요. 라는 불평)
2-1. 머나먼 하늘에 사시며, 땅을 만드셨으나 그것을 지속시킬 능력은 없으신, 그다지 전능하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 는 여전히 서구문화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수하는 기본 입장이다.
다른 종류의 하나님
- 그는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그들의 원수로부터 구하셔서 그들의 땅에 다시 세우실 것이며, 친히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돌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온 세상을 공의와 평화로 채우실 것이다.
창조주, 심판자, 사랑하는 분
-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주시다. 우리는 낯선 우주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고통이 가장 심한 곳에 오셔서 그 고통을 직접 떠안으셨다.
-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 특별히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행한 모든 것, 예수님의 죽음과 새 생명의 능력으로 행한 모든 것, 성령께 이끌려 행한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무한하고 풍성하며 아낌 없는 관대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상이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자신과 다른채로 남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 새로움. 새 출애굽. 새 창조. 새 생명. 새 소망. 좋은 소식(news). 예수님은 자신의 좋은 소식이 현재 통용되는 옛 방식에 많은 투자를 해 놓은 사람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라는 것을 아셨다.
우리는 정말 참 하나님을 만났을까?
- 마침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그분의 백성을 구하시고 세상 가운데 자신의 주권을 세우기 위해 친히 오셨다.
- 참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만유의 창조주시며, 그리고 악을 뿌리째 뽑고 새 창조의 프로젝트를 시작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마침내 이루셨다.
- 우리는 우리와 먼 곳에 떨어져 있고 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 철학적: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
- 종교개혁적: 괜찮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을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 선도적 종교개혁가들 : 이 그림은 잘못되었다. 순전한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빠진 곤경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자신의 분신을 내어주신 것이다.
- 핵심은 이것이다. 일단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사로잡히고 나면, 곧 과거의 소식(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일)과 미래의 소식(궁극적인 새 창조)으로 눈을 돌리는 동시에 현재의 소식(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의 도전과 당신 자신의 삶의 변화)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이웃을, 당신 자신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과 내일을 위한 좋은 소식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