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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년 9월 25일 내용: 3 예수 왕에 놀라다 - 손기범 장소: 이지윤선생님댁

이것이 복음이다-3. 예수 왕에 놀라다

유대 사회 전통은 하나님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의 왕이 되고 계신다고 말했다. 예수님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 꿈이 현실로 드러날 때가 왔다고 믿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과 동일한 믿음을 공유했지만, 그분은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믿었다.

  1. 다른 종류의 왕 하나님이 왕이 되신다는 생각은 예수님 시대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실제 사람들, 실제 공동체, 새롭게 이루어진 실제의 해방과 맞먹는 중요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모든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고 그 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좋은 소식의 기이한 점 중 하나는 예수님이 폭력 혁명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시는이것이 복음이다-3. 예수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다른 비전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완전히 물러서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어떤 곳일지 보여 주는 일들을 계속 행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다른 방식인 사람과 섬김으로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이 선포하신 좋은 소식의 핵심은 하나님의 왕권은 다른 왕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라는 사실이다.
  2. 사랑의 능력 예수님과 세상 권세와의 충돌 혹은 하나님 나라와 인간 제국 간의 충돌은 단순히 하나님이 인간보다 더 힘이 세서 그들의 방식의 게임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바로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종종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좋은 소식을 뭔가 좀더 믿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복음이 ‘나 그리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 혹은 ‘천국에 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것)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매우 중요하지만 이런 것이 좋은 소식의 핵심은 아니다.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꺾으시고 마침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공의와 평화로 다스리는 통치를 시작하신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승리는 세상과 똑같은 종류의 힘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류의 능력을 통해 성취된다. 세상의 제국은 폭력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사랑으로 다스린다고 선포하셨다. 나사렛의 예수는 그분의 죽음이 좋은 소식의 궁극적 순간이 될 것임을 믿고 그 자리로 가셨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하루아침에 유토피아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기에 자신들이 여전히 고통과 감옥에 죽음에 직면해야 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이 메시아적 승리였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들이 “메시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다.
  3. 부활이 드러내는 것 예수님의 죽음이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새로운 육체적 생명으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부활이라는 단어는 항상 육체를 의미한다. 그 단어는 언제나 일정 기간 육체적 죽음의 상태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생명을 지칭했다. 두 번째, 고대 사회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믿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부활이란 하나님이 모든 것의 마지막에 그분의 모든 백성을 위해 하실 일이었다. 다른 모든 이들에 앞서 오직 한 명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형된 지도자를 따르던 사람들은 또 다른 지도자를 선택하거나 운동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그분이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며 온 세상의 적법한 주인이시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음을 그들이 정말로 믿었다는 것밖에는 이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부활에 대한 믿음은 유대인에게 다른 두 가지의 근본적인 믿음을 함께 끌어온다. 첫째, 하나님은 아름다움과 능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든 창조주시다. 둘째, 하나님은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고자 하신다. 창조와 심판이 부활에서 만난다. 부활 없이 십자가 자체만으로는 이전의 장에서 논한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특별한 관점에 비추어 보아야만 한다.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부활 역시 잘못된 서사 안에서 파편적으로 읽힐 수 있다.
  4. 진짜 좋은 소식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특별히 받게 된 공짜 티켓 같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무엇보다 하늘에 가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좋은 소식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그분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것을 통해 이제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다는 것이다. 고대의 소망이 상취되었지만 그것이 성취된 방법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발제 우리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 혹은 ‘천국으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많이 믿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이야기를 믿고 살아갈 때 실제 신앙 생활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