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양 함께 읽기 (4장~5장)
4장. 교양 실천의 측면
- 인간과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그때그때 다른 관심의 지평을 열어 놓는다. 인간이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의미의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측면에서만 파악되는 지평이 있다. 이와는 달리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지평이 있다. 동일하게 인간이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1) 종교 없는 교양 없다 ─ 교양 없는 종교 없다.
① 종교 없는 교양 없다
- 종교는 교양의 내용이다. 종교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는 예술도 문학도 음악도 건축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갈등과 분쟁 중 상당수가 종교 차원을 내포한다.
- 종교 개론과(Religionskunde) 종교 수업(Religionsunterricht)
- 종교 개론: 종교에 대한 일반적 정보를 제공. 예컨대 인권 입장에서 종교를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것.
- 종교 수업: 종교적 물음과 실존적으로 씨름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공해주자. 종교 관련 물음은 그 본성상 한 사람의 고유한 인격과 관계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 종교는 교양의 차원이다. 종교는 인생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내포하기 때문에 여러 영역을 포괄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적 실천의 다양한 형태(정치,예술,종교,노동,윤리,교육)는 명목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총체적 실천의 여러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 교양의 목표. 종교가 교양의 내용이자 차원이라면, 그와 연관된 교양의 목표도 제시되어야 한다.
- ”궁극적 물음에 대해 깨어 있음” by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
② 교양 없는 종교 없다.
- 종교적 교양.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기독교의 전승, 또한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일찍부터 잘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주된 관심사다. …이와는 달리, 교양과 종교의 연결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사회화가 아니다. 종교적 교양은 종교와 만나고 비판적으로 씨름하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며, 그와 연관된 나름의 목표를 추구한다.
교양 개념은 종교적 교양의 경우에도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어느 정도의 자질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빚어 나가는(형성하는) 주체’에 집중하는 것이며, 모든 교수 학습 과정과 교육과정은 반드시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종교적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준다고 해서 종교적 교양이 되는 게 아니다. 학생이 그런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을 제공하고 그 모든 과정이 학생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을 지지할 때 비로소 종교적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견적 성숙은 모든 교양의 본질적 목표에 속한다. 우리의 맥락에서는 당연히 종교적 성숙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교양의 모든 과정은 자기 스스로를 빚어 나가는 주체를 특정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양 과정은 나름의 판단 능력과 결정 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2. 특히 개신교 신학 전통에서는, 신앙이란 결코 가르칠 수 없으며 따라서 신앙이 학습의 목표 혹은 교양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견지한다.
종교는 일반 교양의 모티프다.
- 교양은 교회의 근본 과제다. …신약 성경에서 이미 분명히 묘사하듯 초창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수업과 교양의 과제를 끌어안고 그것을 위한 별도의 직책을 만들었다. …교회는 명백하게 ‘교양 기관’이라 할 수 있다.
- 교회에 교양이 필요한 근거 7가지
(2) 학교 안에서의 종교
: 교양의 내용, 교양의 차원, 대화적 공존
① 종교는 교양의 내용이다: 종교 수업
종교를 교양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 제기되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
- 첫 번째 과제 …중요한 종교 전통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 각 종교 전통에서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진리를 주장’한다. 그 진리 주장은 물론 객관적 서술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오직 실존적 씨름을 통해서만 포착할 수 있다. 여기서 ‘씨름’이라는 개념은 어떤 신앙의 확신에 대한 인격적 동의만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거친 입장 표명과 결단을 의미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해는 해석자가 자기 자신이 이해해야 할 텍스트를 자신의 현재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2. 두 번째 과제 …교양과 종교의 연관성을 깊이 통찰해야 한다. 예컨대 인간상을 성찰하는 것, 종교적 전통에 기초한 인간상과 그것이 후대에 끼친 영향과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근대의 역사에서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밝혀낸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번지는─북아일랜드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 팔레스타인 지역의 갈등─정치적 출돌의 배경에는 다소간 분명하게 종교적 이슈가 개입해 있음을 짚어볼 수 있다.
세 번째 과제 …다양한 종교 전통의 관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관계를 직접 다룬다. 종교적 교양은 다원적 종교·세계관의 지평을 더욱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종교적 교양은 평화와 관용에 기여해야 한다는 우리 시대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종교가 무조건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는 너무나 단순한 생각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② 종교는 모든 과목에서 교양의 차원이다
- 종교를 학교의 모든 수업에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차원으로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종교는 보편적인 인격 발달의 한 부분이다. 그 인격 발달을 도와주는 일을 하나의 과목에 제한할 수는 없다. 둘째, 모든 과목의 내용은 직간접적으로 종교적 주제를 건드린다. 그런 주제는 그에 상응하는 맥락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
③ 학교는 종교적 다원성 속에서 대화적 공존의 공간이다
- 우리가 학교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종교적 다원성이라는 현실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성찰이 꼭 필요하다.
(3) 교양은 교회의 활동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 교양과 종교의 연관성은 두 가지 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교양의 종교적인 전제와 의미를 계속해서 견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학과 교회가 교양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① 왜 교회의 교양 프로그램은 교양 자체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는가?
- 교회의 교양 프로그램은 비공식적 영역으로 분류된다.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다. 교회가 교양을 견인해 나가는 주체라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와 신학은 교양을 자신의 고유한 과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일개신교교회협의회는 이러한 입장을 두 번에 걸쳐 확실하게 표명한 바 있다. 교육백서 『인간적인 것의 척도』는 교회가 인간성의 척도를 지향하는 교양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② 사례1 : 기독교 계통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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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사상의 설득력은 그것이 학령기 이전의 아동에게도 의미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에 달려 있다. 유치원이야말로 다른 종교의 배경을 가진 친구, 다른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친구를 처음 만나는 자리, 종교적 다양성과 최초로 만나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이미 이 시기의 어린이에게도 신뢰할 만한 종교교육적 동반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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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유치원에서 이루어지는 종교교육학적 과제는 처음부터 어린이의 발전을 전체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③ 사례2: 견신례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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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신례 사역에서는 의식적으로 학교완느 전혀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성적을 중요시하는 비인격적 학교 방식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는 방식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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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그 당시 종교 수업은 전문적인 신학 지식이 없는 교사가 진행했는데, 졸업반 학생들은─대개 14세에 학교를 졸업했다─목사가 맡아서 진행하는 견신례 수업을 들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 당시 견신례 수업은 더 나은 수업을 의미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수업은 학교와 대립 관계를 이루지 않았고, 학교 및 학교의 교양이 원래 지향하는 바를 실현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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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금의 견신례 사역이 부정적 의미에서 학교 교양의 목표에서 분리되어 사실상 그 수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며 우려한다. 그래서 견신례 사역은 교회의 이해관계를 따를 뿐, 교양의 목표에서는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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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가르치는 입문 수업은 애초부터 교양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교양은 수긍과 동의가 아니라 비판 능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교양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면 교회가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빚어 나가는 주체가 중심에 있어야 하며 그 주체가 정확한 앎에 기초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만약 종교가 철저하게 사적인 관심사라고 한다면, 견신례 사역도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해서 용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교양으로서─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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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를 헤아려 볼 때, 견신례 사역과 교양을 둘로 나누어 생각하는 기존의 방식은 극복되는 것이 옳다.
사례 ③: 교회의 성인 교양 프로그램
- 교회의 성인 교육 프로그램이 교양의 과제를 지향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교육 사업의 질을 개선한다는 게 아니라 확실한 지향을 도모한다는 뜻이다. …이 교육 프로그램이 인간의 자기 발견에, 인간의 판단 능력 함양 및 종교적 성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꾸준히 물을 때 그만큼 높은 질적 수준을 달성할 것이다.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인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에서 책임을 자각한다는 것, 지구적 도전 앞에서도 그런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양이 없다면 이런 요구는 공허할 뿐이다.
- ‘종교적 교양이 어떤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 있는가?’ ’교양은 모든 실용적인 것(이익이 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은─인생의 위기를 맞았을 때, 자신의 유한함을 직면했을 때에도─인간됨의 근본 요소다.’ 이런 깨달음은 모두 교양과 종교의 연관성에서 나온다.
5장. 교양과 초월
교양의 경계 지우기, 경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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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을 언급하는 곳에서는 일상적·세상적인 사유와 행동의 지평이 명확한 한계(경계)를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우리가 초월 개념을 붙잡는 것은 교양이 지속적으로 개방성을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교양 개념 자체만으로도 인간은 그저 생존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이 세상의 성공과 경력으로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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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은 인간이 궁극적 의미에서는 자신의 실존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 인간의 실존은 결코 인간의 업적이나 성공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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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강압적으로 경계를 제시하는 초월적 힘과 초월적 권위의 대상이 아니다.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다(창1:27). 이로써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릴 수 없는 존엄성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위해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창조의 이야기를 책임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길, 그것은 창조물은 결코 창조주가 아니라는 의식,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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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교양으로 자기를 빚어 나가기 위해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밖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경계가 없다면 필연적으로 자기를 상실하게 된다. 세상에서 자기를 찾지 못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수많은 경험과 행위 속에서 인간 자아가 해체된다. 그래서 훔볼트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먼저 하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적 기독교 전통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마주함으로써 이 전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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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길은 오로지 믿음이다. 그래서 교양의 초월 관련성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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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교양 사상은 ‘양심도 없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도 없이’ 작동되는 교양 규칙으로 귀결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