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자료

11장.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의 삶

p451.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야웨의 도를 지켜 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를 알았나니(택하였나니) 이는 나 야웨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게 하려는 목적이니라.(창 18:18-19, 저자 사역)

‘쩨아카’ 혹은 ‘체아카’는 억압이나 침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의 외침이나 도움을 청하는 외침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다.

p458. …**야웨의 ‘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7-19, 저자 강조)

  • 의: ‘쩨데크’와 ‘쩨다카’, 보통 영어 성경에서 righteousness라고 번역된다. …어원적 의미는 아마도 ‘곧은’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의, 마땅히 되어야 하는 것, 기준에 걸맞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체데크/체다카는 사실상 관계를 진하게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본질상 sdq(쩨다카/쩨데크)는 단지 사회 내에 존재하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객관적 규범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나타나는 관계로부터 그 의미를 끌어내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재판, 올바른 통치, 올바른 예배와 자비로운 행동은 모두,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언약적이고 의롭다고 말할 수 있다.

  • 공도: ‘spt’, ‘sapat’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그것은 ‘바로잡다’, ‘잘못되거나, 억압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개입하여 그것을 고치다’ ‘mispat’ -미쉬파트는 소송의 전 과정, 혹은 그것의 결과(판결과 그것의 시행)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법령, 판례법. 출애굽기 21-23장은 언약 법전, 혹은 언약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미쉬파팀’ (mispatim)이라고 되어 있다. ”고아와 과부의 미쉬파트”라는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정당한 주장을 의미한다.
  • 미쉬파트는 다소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다 광범위한 ‘정의’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 반면 체데크/체다카는 보다 정적인 느낌을 지니게 되었다.
  • 미쉬파트는 사람들과 환경들이 체데크/체다카에 따라 회복되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 미쉬파트는 질적인 일련의 행동들, 즉 당신이 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체데크/체다카는 질적인 일의 상태, 즉 당신이 이루고자 목표하는 그 무엇이다.

p463-464.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윤리적으로 나타내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이 교회론적 관련이 또한 윤리적인 것이라는 점을 좀더 분명히 보게 된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하나님 자신의 윤리적 성품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가 되도록 애쓴다. 그러기 위해 억압과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의와 정의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 공동체만이 열방에 축복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윤리 없이 성경적 선교는 없다.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거룩함: 레위기 19장.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너희는 독특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야웨께서 독특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19장에 나오는 거룩함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 가족과 공동체 내에서의 존중
  • 하나님이신 야웨께만 충성을 바침: 적절한 제사법
  • 농업에서의 경제적 관대함
  • 사회적 관계에 관한 명령들을 준수함
  • 직장에서의 경제적 정의
  • 불구자들에 대한 사회적 동정
  • …
  • 인종적 소수 집단을 학대하지 말고, 율법 앞에서 인종적 평등성을 나타내고, 외국인 체류자를 자신과 같이 실제적으로 사랑하는 것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19:9-10)

너희가 그 땅으로 들어가 온갖 과일나무를 심었을 때에, 너희는 그 나무의 과일을 따서는 안 된다. 과일이 달리는 처음 세 해 동안은 그 과일을 따지 말아라. 너희는 그 과일을 먹어서는 안 된다. (레19:23)

p481-483.

이스라엘 경험의 독특성(신 4:32-35).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아는 그들의 지식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계시하시고 구속하시는 능력에 대한 독특한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이러한 일들이 나타난 것은 너희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야웨를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는 열방의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이제 그 극히 중요한 지식을 위임받은 나라다. …문제는 이제 그들이 그 지식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 지식을 갖는 특권과 책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p492.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선한 삶으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베드로전서).
  • 순종을 배우고 열방에 순종을 가르쳐야 한다(마태복음).
  • 서로 사랑함으로 그들이 누구에게 속했는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요한복음).

<이형식의 개똥신학 1>

25 당신들이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 그 땅에서 오래 산 뒤에, 어떤 형상의 우상이든,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26 오늘 내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울 것이니,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 차지하는 땅에서 반드시 곧 멸망할 것입니다. 그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27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여러 민족 사이에 흩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쫓아보내실 그 곳 백성 사이에서 살아 남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28 당신들은 거기에서, 사람이 나무와 돌로 만든 신, 즉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는 신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신 4:25-28)

  • 구원, 성장(≒성화, 윤리), 선교는 분리하여 볼 수 있을까요?
  • 신4:27에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습니다. 선택(구원)받은 그 사람들을 치셔서 하나님 나라의 모델인 그 땅으로부터 배제하시겠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 이스라엘의 역사(출애굽, 광야 생활, 가나안 땅 정착, 남유다&북이스라엘, 멸망과 포로기, …)와, 예수님의 제자 양육 방식과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들을 살펴보면 ’구원’과 ‘믿음’이 그저 영접 기도문으로 대표되지 않음을 봅니다.
  • 애초에 하나님께서 구원, 성장, 선교의 단계적 구분을 하신 적이 있으셨던가요?
  • 저는 이러한 정황들로 구원, 성장, 선교는 일련의 커다란, 동시 다발적이며,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적 장애, 자폐, 영아의 이른 죽음을 비롯한 신학적 질문들이 ‘구원 이란 무엇인가’에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논의할 것들이 많지만, 구원을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안개 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영접한 순간 구원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는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 또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이라는 표현도 알고 있습니다만, 자칫 잘못하면 나이브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조금 더 강한 어조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 바울의 고백으로 코너?를 마칩니다. (빌3:9-16)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4부 선교의 무대

p496-497 개념적 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행하신 모든 것(안쪽 삼각형)의 궁극적 목표는, 인류의 모든 나라들을 축복하고 온 땅을 최종적으로 구속하는 것이다(바깥쪽 삼각형).


12장 선교와 하나님의 세상

p499.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이 지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소작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주하는 소유물로 이 땅을 주셨다(시 115:16). 그러나 우리가 최종적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재산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cf. 달란트)

  • 선하신 하나님만이 선한 창조 세계를 만드실 수 있다.
  • 창조 세계는 본질적으로 선하다
  • 창조 세계의 존엄성(하지만 신성은 아니다)
  • 온 땅은 하나님의 선교지이자 우리의 선교지다.
  • 창조 세계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 창조 세계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 창조 세계 돌보기와 기독교 선교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오늘날 세계에서 긴급한 문제다.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에서 나온다.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땅과 관련해서 우리의 제사장적·왕적 역할을 시행하는 것이다.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선교에 대한 우리의 동기를 시험한다.
  • 총체적 선교는 그것이 인간들만을 포함한다면,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화목케 하기 위해 피를 흘리신 나머지 피조물들을 배제한다면, 참으로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교회에 예언자적 기회가 된다.
  •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자비와 정의의 성경적 균형을 구현한다.

p527. 이 모든점들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께 지니는 본질적 가치 및 우리가 하나님처럼 그것을 돌보아야 하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행동은 다른 어떤 유용성이나 결과(이를테면 인간에게 주는 유익 혹은 전도의 열매)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땅을 돌본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p504. 자연을 그런 식으로 인격화하는 것은 (즉, 자연에 실제로 인격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인격화하고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비도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창조 세계에 하나님께만 합당한 인격적 지위와 영예를 부여하는 것은 타락만큼이나 오래된 우상숭배다

p525. 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가이아나 어머니 지구 여신이 아니다. 그것은 자립적인, 감각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한 분 살아계시고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한 신성을 찬탈하거나 숭배되거나, 경외되거나, 심지어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땅의 창조주이자 구속주가 되시는 분에 대한 사랑과 순종의 행위로 땅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형식의 개똥신학 2>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실 때, 그것은 오로지 책임이나 당위의 측면에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쁨이자 축복으로 다가온다.

  • 하나님께서는 왜 빛, 어둠, 물, 창공, 땅, 바다, 식물, 천체, 생물(새, 바다 짐승, 집짐승, 들짐승, 기어다니는 것, 사람)을 만드시고 좋았다고(טוב, 토브**)** 하셨을까? 토브는 ‘좋다, 아름답다, 선하다, 의롭다, 복되다, 행복하다, 기쁘다, 은혜롭다’ 등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용)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를 바라보시고는 물론, 그 분의 솜씨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독자가 읽기에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아끼고 사랑하신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 반려 동물, 반려 식물들과 대화해 본 적이 있는가?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소통해본 적이 있는가? 그저 시적 표현처럼 ‘의인화’였는가, 아니면 정말로 마음을 나누었는가?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신격화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인격화’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 생기와 생령 (인용)

    • 혹자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실 때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었으니 인간만이 영적인 존재이고, 인격을 가졌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생기’는 니쉬마트 하임, 즉 ‘호흡, 바람’으로 번역되고 이는 ‘영’으로 번역되기 어렵다. 또한, ‘생령’은 네페쉬 하야, 즉 혼을 가진 생명체로 번역되는 것이 타당하다.
    • 성경을 살펴보면, 사람만 “생령”(네페쉬 하야)이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짐승들도 동일한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창1:21, 1:24, 1:30, 2:19등) 만일 ‘생령’을 “영적인 존재”로 해석하려면, 각종 들짐승과 새등 짐승들도 모두 영적인 존재라고 해석하여야만 한다.
  • 하나님께서는 실로 땅과 세상을 사랑하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의 핵심이자, 본질적인 방법이다.

  • 이태석 신부님의 “예수를 전하러 왔는데, 도리어 이 곳에서 예수를 보았다.” 이형식의 “도움을 주고자 특수교육과에 지원했지만, 도리어 내가 도움을 받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13장 선교와 하나님의 형상

p530.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는 것이다.

p534. 과업을 위해 창조됨. 인류는 하나의 사명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유지하고, 돌보는 일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형성된 바 이 말들에 대한 훨씬 유력한 해석은, 다른 피조물을 인간의 관리 아래 맡겨진 것으로 보고 자비롭게 돌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p.537. 관계 안에서 창조됨.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좋았더라” 그리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묘사되다가, 갑자기 뭔가 “좋지 않은” 것이 들어온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좋지 않은 것은 사람이 혼자라는 것이다(창 2:18).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착수하시는 계획을 말씀하실 때, 그가 더 이상 외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동료를 찾는 것이 아니고, 그의 곁에서 창조 세계의 종, 유지자, 충만하게 하는 자, 정복자, 다스리는 자로서 주어진 이 거대한 과업을 함께 할 돕는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기본적인 성적 연합에서부터 광범위한 인간 공동체 집단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관계들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구속적 행동에 포함되므로, 관계 또한 우리 인간의 선교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p542. …그래서 우리의 선교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좋은 소식을 가져가는 것이라면, 나쁜 소식이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해 얼마간 연구와 분석을 해야 한다.

p564. 솔직한 신앙. …전형적인 한 가지 문제는 한편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축복과 성공에 이르는 반면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단언(신명기와 시편에 많이 나오는 것처럼)과,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경험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는 단순한 관찰 간에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불평과 항의와 당혹스러운 질문은 이스라엘의 야웨 경배의 핵심인 시편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어찌하여…” “어디 있나이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실제 세상에서 살면서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는다. 이스라엘은 솔직하며,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부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세상을 위해 몸부림치며 싸우는 문제들이다.

p567. 우리가 이 장과 지난 장에서 함께 살펴본 것은 실로 광범위한 전망이었다.

창조 세계 전체는 하나님의 선교 현장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부름받은 선교에는 불가피하게 생태학적 차원이 포함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인간적 속성에서 많은 선교적 함축들이 생겨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또한 철저히 그리고 포괄적으로 죄와 악에 오염되고 영향을 받았다. 우리의 선교적 반응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능력으로 다루는 문제들만큼, 철저하고 포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 문화는 인간성의 모호성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현자들은 다른 나라들의 지혜에서 선하고 참된 것을 인정했으나,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평가했으며, 우상숭배적이고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것은 모두 거부했다. 그들은 또한 모든 인간의 지혜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인생의 가장 힘든 문제들과 싸움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 성경적 지혜는 우리의 선교적 노력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녀야 함을 큰 소리로 외친다.

  •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비판적이면서 개방적인 마음
  • 인간 앞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존중
  •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장하고 대답할 때 신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