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자료

14장. 구약 환상에 나타난 하나님과 열방

창조와 섭리 속의 열방

  • 열방은 창조되고 구속받은 인류의 일부다.
  • 모든 열방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 어떤 나라든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될 수 있다.
  • 어떤 나라든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열방을 이렇게 공평하게 다루신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말은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일터를 방문한 후에 한 말이다. 예레미야는 먼저 한 토기장이를 관찰한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이러저러한 토기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선언했으나, 후에 진흙이 어떤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계획을 바꾸었고, 그에 따라 처음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예레미야가 그것을 통해 이끌어 낸 교훈은,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선포한 의도에 대해 인간이 보이는 반응에 따라 반응하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서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 비유의 핵심은 신적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확실한 주권을 갖고 계시다는 것보다는, 진흙 편에서 토기장이로 하여금 그의 의도를 바꾸게 할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원리로, 하나님은 어느 때 어느 민족에게든 그러한 기회를 확대하신다.

예레미야는 후에 유다 주위의 나라들에게 그들이 돌이켜 야웨와 그분의 백성의 도를 배우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동일한 용서와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렘 12:14-17). …요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이나 열방을 다루시는 것에는 편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모두 하나님께 돌이켜 그분의 긍휼을 받을 수 있다.

  • 모든 열방의 역사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땅의 모든 족속들을 복주시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보편적 목표를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대단히 특정한 수단을 선택하셨다. 그들의 독특성은 하나님의 보편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위는 나머지 열방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독특한 구속 이야기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속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이루실(그리스도를 통해) 것에 대한 모범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맡은 독특한 청지기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로부터 열방들에게 그리고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윤리의 독특한 구조는 구속받은 인간 공동체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땅의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다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점에서 독특한 지위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활동의 두 영역 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어떻게 일반적 열방과 특별한 이스라엘이 ‘연관’되는가?

  • 열방은 야웨께서 이스라엘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시는 일을 관찰하는 증인들이다.
  • 열방은 이스라엘의 언약에 내재하는 축복의 수혜자들이 될 수 있다.
  • 열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게 될 것이다.
  • 열방은 궁극에 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과 같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증인인 열방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출15:14-16)

이 말과 함께 모세의 노래는 홍해에서 방금 일어난 위대한 구원이 주변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한다.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인 바로의 애굽을 그처럼 확연히 물리침으로, 분명 이스라엘이 나아가는 길에 있는 여러 작은 나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이다.

24 여러 나라 사람들도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이같이 크고 맹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냐 하면 25그 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신 29:24-25)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36:22-23)

이스라엘의 축복의 수혜자인 열방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시 47:1-3)

열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사 25:9)

이사야서 40-55장에서는 열방의 예배라는 주제가 더욱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볼 것이며(사 40:5), 그분의 정의와 율법이 그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열방들에게 전달될 것이다(사 42:1-4). 따라서 땅끝까지 모든 열방은 그분을 찬양하라는 명령을 받으며(사 42:10-12), 결국에 가서 하나님의 새로운 구속 사역의 물결 가운데 그렇게 찬양하게 될 것이다(사 45:6, 14).

이사야서 56-66장에서는 전에 이사야서 2:1-5에서 나왔던 열방들이 시온으로 순례해 올 것이라는 환상이 확대되고 증진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에 거부되었던 이방인들의 예배가 바로 성전 안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다(사 56:3-8). 다시 국제적 차원으로 돌아오면, 이사야서 60장은 이사야서 61:5-7과 함께, 열방이 드리는 예배의 모든 의미를 영광스럽게 환기시킨다. 그 예배는 이제 원래 의도대로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의 중재를 통해 드려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십일조와 예물을 자기 제사장들에게 가져온 것과 마찬가지로, 열방들도 야웨의 제사장인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공물을 가져올 것이다(사 61:6). 바울은 자신이 궁핍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 교회들 가운데서 연보를 모은 일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런 선지자적 환상들이 종말론적으로 성취된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열방은 이스라엘과 같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시 47:9)

16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23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 19:16-25)

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사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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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신약 선교에 나타난 하나님과 열방

구약의 선교 명령?

p634.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열방 선교는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백성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문제가 아니라, 종말에 하나님이 하실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이 명확하게 선교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도 발견한다. 어떤 곳에 간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야웨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야웨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알아야 했고, 오직 야웨만을 참되게 예배해야 했으며, 야웨와 맺은 언약 관계에 충성하고 헌신하면서 그분의 도와 율법에 따라 살아야 했다. 이 모든 점에서 그들은 열방의 빛과 증인이 될 것이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어떤 적극적 선교 활동을 실제로 했다는 표시는 없다. 첫째로, 열방이 모이는 것은 하나의 종말론적 사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미래에 속한 사건이다. 둘째로, 열방이 모이는 것은 이스라엘이 할 일이 아니다. …열방들을 모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셋째로, 이 선지서 본문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열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열방이 이스라엘에게로 오는 모습을 상상한다.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의 이 이동은 ‘구심적’이라는 적절한 명칭으로 불린다.

예수님과 전도자들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은 무엇을 하기 시작하셨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개인적 선교를 어떻게 이해하셨으며, 자신이 죽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셨는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은 열방을 새로운 하나님의 메시아 백성으로 모으는 운동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신약을 읽을 때 예수님의 사역의 이 이중적 차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다음에 열방이 모이리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이방인들.

다음의 사건들과 말씀들을 모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 외에는 관심이 없으셨다는 말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로마 백부장의 하인(마8:5-13; 눅7:1-10)
  •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 자와 데가볼리 지방의 귀머거리 (마8:28-34; 막5:1-20; 눅8:26-39; 막7:31-35)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이 이방인들의 영토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지만, 스스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기로 결심하신다. …예수님은 대단히 색다르게도, 치유된 그 사람에게 주님의 전능한 행동과 자비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열심히 그 말씀을 따른다.
  • 수로보니게 여자(마15:21-28; 막7:24-31)
  • 성전에서 보이신 예언적 표적(마21:12-13; 막11:15-17; 눅19:45-46)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이 ‘정화’ 훨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데 대해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것은 성전 자체의 임박한 멸망을 예언한 예언적 표시였다. …예수님의 행동은 “성전과 그 지도자들의 ‘심판의 때’를 알리는 것이며, 이제부터 성전과는 무관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할 ‘열방의 구원의 때’를 알리는 것이었다.
  • 포도원 농부의 비유(마21:33-46; 막12:1-12; 눅20:9-19)
  • 혼인 잔치 비유(미22:1-10; 눅14:15-24) 예수님의 비유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포함할 위대한 종말론적 잔치를 말한다. 그때까지는 여기 이 땅에서 나누는 실제 식사가 그렇게 통합된 교제의 중대한 상징이 되었다. ‘식탁 교제’에서 누가 누구와 함께 먹는가 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함(마24:14; 막13:1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받을 시련들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그리고 어떤 것을 진짜 종말의 표시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주의를 주시면서, 그 기간 전체를 ‘산고’라고 묘사하신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사건들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마치 산고가 시작되는 것처럼 불가피한 결과를 가리킨다.
  • 부활 후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마28:18-20; 눅24:46-49; 요20:21)

p659. 열방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구심적인가, 원심적인가? 구약과 신약이 선교에 대한 개념에서 중대한 차이는 구약은 기본적으로 구심적(열방이 이스라엘/시온/야웨께로 올 것이다)인 반면, 신약은 기본적으로 원심적(예수님의 제자들이 열방에게 나아가야 한다)인 것으로 종종 말한다.

한편으로, 구약 환상에도 원심적 요소들이 있다. 열방들은 중심부로 모여든다고 묘사되긴 하지만, 또한 열방에게로 나가는 것들도 있었다. 율법은 그것을 기다리는 섬들에게로 간다. 종은 열방에 의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땅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해 열방에 사신들을 보내실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신약에서, 열방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원심적 명령은 밝아 오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에 발맞추어 이루어지는 철저하게 새로운 출발이긴 하지만, 열방으로 나가는 것의 목적은 열방이 성경의 환상을 성취하여 하나님 나라로 모여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열방은 실제로 모여들고 있었다. 예루살렘이나 물리적 성전, 혹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신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영으로 거하시는 처소로 짓고 계시는 하나님의 새 성전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끝맺는 말

선교학적 틀을 사용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의 타당성… 그리스도인들이 선교라는 각도에서 성경 전체를 해석하는 것이 가능한가? 타당한가? 유용한가?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이다.

그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려 할 때 즉각 되돌아온 도전은 모든 것은 선교가 누구의 선교를 의미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교’(mission)라는 말이 ‘선교 사역’(missions) 및 타문화 선교사들의 훌륭하고도 칭찬할 만한 노력들을 말한다면, 첫 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성경 전체가 인간의 선교적 활동이라는 협소하게 규정된 의미에서 말하는 선교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되고 과장된 해석학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히려, “구원하심이 하나님께”(계7:10) 있는 것처럼, 선교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선교(그분의 목적과 주권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선교)로 충만해 있다고 묘사하고 그렇게 계시한다. 우리가 시작하는, 혹은 우리 자신의 소명, 은사, 에너지를 쏟아 붓는 모든 선교(mission) 혹은 선교 사역(missions)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선교에 종사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의 멋진 표현을 빌려 말하면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3: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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