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 1부. 성경과 선교
Date: 2022년 11월 9일 Tags: 하나님의 선교
1부. 성경과 선교
p35. 예수님은 먼저 엠마오 도상의 두 사람에게, 그 다음에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지금의 구약, 곧 히브리 성경 전체의 초점인 메시아임을 밝히셨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성경의 기독론적 초점 혹은 중심이라는 말에는 익숙하다.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 성경의 메시아적 중심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의 선교적 취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5-47)
… 성경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의 삶과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생겨나는 열방에 대한 선교, 이 둘 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둘 다를 통해 완성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p37. 성경에 대한 선교학적 접근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 성경이 존재하는 목적
-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
- 성경이 묘사하는 백성. 성경은 우리도 그들과 같은 정체성을 갖고 그들처럼 선교하라고 권한다.
- 성경이 이 하나님과 이 백성에 대해, 그리고 온 세상과 그 미래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생명과 우주와 만물’을 총망라하는 이야기다.
1장. 선교적 해석학을 찾아서
(선교적 해석학을 찾아 나가는 단계들)
“선교의 성경적 기초”를 넘어서
p42. 평범하지만 훌륭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기 때문에, 구원과 안전에 대해 말해 주는 성경 말씀, 괴로울 때 격려해 주는 성경 말씀,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이끌어 주는 성경 말씀을 좋아한다. 그들은 세상과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보편적 목적과 관련하여 도전하는 본문들, 복음의 다문화적 본질과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대면하면 깜짝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놀라움을 극복하고 성경이 주는 부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통적 커리큘럼이 제시하는 시야 속에 갇혀 신학을 좁게 이해하는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런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어떤 형태든(성경적·역사적·신학적·실천적) 선교에 대한 것은 놀랄 만큼 빠져 있다. 성경에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놀랄 만큼 방대한 본문들과 주제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면(나는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선교학은 신학교에서 다시 존중될 것이다(이미 그것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징조들이 있다).
부적절한 증거 본문 인용의 위험
p43. ‘중심 메시지의 취지’ 혹은 ‘성경 메시지의 본질’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에서 씨름하고 있는 문제다. 그 취지나 본질이 ‘선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도움이 될 만한 본문들을 몇 개 늘어놓는 것 훨씬 이상이 필요하다.
p.44. 선교 자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은 정당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선교 활동이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훨씬 더 미심쩍은 일이다. …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을 성경적으로 정당화하려 하기보다, 모든 선교 전략들과 계획과 작전을 성경에 근거해서 비판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려면 ‘근본적인 어떤 것’을 더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어떤 것이란 성경적 의미의 선교, 혹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 신학의 선교학적 틀을 말한다.
다문화적 해석학의 관점들을 넘어서
전 세계적 교회, 전 세계적 해석학
p45. 20세기 초에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거의 90퍼센트가 서구 혹은 북반구(즉, 주로 유럽과 북미)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초에는 세계 그리스도인의 적어도 75퍼센트가 남반구 혹은 동방의 대륙들, 즉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의 여러 지역에 살고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겠다고 고집할 것이다. 정확히 해석학적 혁명(종교 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세 가톨릭 학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이끌고 있는 서구 개신교 신학교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려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말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 그리고 초대교회 안에서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같은 본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었다. 그들은 성경이 선교의 산물인 유대 그리스도인과 헬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룰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서 14-15장에서 이러한 차이들을 갖고 씨름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그는 성경 명령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정죄하거나 경멸하지 말고 서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건 그리스도와 복음의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해석학적 일관성의 초점인 선교.
p.47. 하지만 선교적 성경 해석학이 단지 전 세계 모든 다양한 피부색의 교회와 선교 현장으로부터, 모든 가능한 본문 해석 방식을 모으는 것이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 … 우리는 어떠한 평가도 거절하는 상대주의에 굴복하는 것인가? 옳거나 그른, 혹은 심지어 더 낫거나 못한 성경 해석법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있는가? 그리고 그 경계선 혹은 판단 기준은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상황 신학과 옹호적 해석을 넘어서
상황과 이익.
p.49. 성경 본문을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때, 이해관계에 따라 성경을 읽는 일이 생긴다. … 즉 그 신학들은 모든 불의의 희생자 편에 서는 것이야말로 성경적 신앙의 기초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그래서 성경을 해방론적으로 해석한다. 즉, 사람들을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시키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20세기 서구 신학적 사고에 최초로 영향을 끼친 것은 남미의 해방 신학이었다. … 다른 예로는 인도의 불가촉천민(달리트) 신학, 한국의 민중 신학, 아프리카와 미국 흑인들의 흑인 신학 등이 있다. … 본문에 대한 이 모든 접근들은 의도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해석학을 제시한다. 즉, 자신들이 대표하는 사람들인 가난한 자들, 버림받는 자들, 흑인들, 여성들 등의 이익을 위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다.
선교사에 대한 고정관념 타파.
p51. 그렇다. 그래서 선교적 해석학은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을 읽고는 자신의 개인적 삶을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바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성경적 해석학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그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교회 전체가 일반적으로 그런 헌신을 해야 한다는 더 큰 확신이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할 때, 성경을 진지하게 믿는 교회라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복음이 선교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교적 해석은 해방을 포괄한다.
하지만 선교적 해석학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은 단지 몇몇 해방론적 신학이나 옹호 신학 혹은 ‘이해관계가 있는’ 신학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처럼, 성경 전체를 선교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해방론적 해석을 포함한다. 이 다양한 신학들 가운데서 숨 쉬는 정의와 해방에 대한 열정이, 종말에 이르기까지 내내 불의와 억압과 속박에 맞서 싸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 계시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p52 전체 읽기)
포스트모던 해석학을 넘어서
다양성은 괜찮지만, 상대주의는 안 된다.
…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씨름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즉, 천 년 이상 이어진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은 야웨 신앙을 변화하는 문화적·종교적 상황에 관련시키는 문제로 고심했다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기독교 선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선교에 참여하고 선교학적으로 성찰하면서 늘상 접하게 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웅덩이에서 수영을 하면서 도전을 받을 수는 있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 선교는 오랫동안 ‘포스트모던적’ 도전을 경험해 왔다.
p.55.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성경은 포스트모더니티가 꿈도 꾸기 전에 그런 문제를 아울렀다. (이하 읽기)
2장. 선교적 해석학의 형성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전체를 선교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타당한가? 유익한가?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선교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해석학적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선교의 산물인 성경
p.57. 성경의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다. 성경 본문과 우리 창조주 하나님의 자기 계시 사이에 약간의 관계(어떻게 표현되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정경 전체가 하나의 선교적 현상이다. …많은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살아내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 활동을 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투쟁과 갈등과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그 갈등은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발생하는 내적 갈등이었다. 또 때로는 주위의 다른 종교적 주장들 및 세계관들과 경합하는 외적 갈등이었다. 그래서 그런 본문들을 선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분명 (1) 객관적인 석의를 통해 ‘진짜’ 의미를 발견하고 나서 (2) 본문 자체에 대한 해석을 보충하기 위해 몇 가지 ‘선교학적 함의들’을 발견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본문이 종종 하나님의 백성이 선교적 상황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 필요, 논쟁 혹은 위협 등으로부터 생겨났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본문 자체가 선교 활동의 산물이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그 본문을 기록했다. 이것이 선교활동이다.)
p.59. 하지만 구약의 경우에도, 많은 본문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역사 및 언약 관계를 통해 알았던 하나님에 비추어 주변 세상과 관계를 맺은 것을 통해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셨거나, 행하시고 있거나, 행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과 관련해서 본문들을 만들어냈다.
p.60. 성경의 각 본문들은 갖가지 문화적·종교적 주장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선교를 해야 하는 백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정경은 결국 (신구약 모두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으로 부르신 자들이 바로 이 성경 본문들을 통해 기억과 소망의 공동체, 선교와 실패와 분투의 공동체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확고히 해준다. …간단히 말해,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피조물 전체를 위해 하나님의 세상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제시한다는 가정에서 나온다.
성경적 권위와 선교
p.61. 선교의 성경적 기초는 성경이 권위 있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선교적 명령을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성경 본문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성경의 선교적 해석학은 선교와 관련해서 성경적 권위의 본질 자체를 탐구한다.
명령으로서의 권위.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권위 하면 무의식 중에 군사적 개념을 떠올린다. … 명령에는 순종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권위다. 성경은 명령을 내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말해 준다.
…하지만 설사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인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해도, 권위를 일차적으로 군대식 명령과 연결시키는 것은 성경에 실제로 나오는 많은 자료들과 맞지 않는다. … 성경의 대부분은 최초의 독자들이나, 우리를 포함한 미래의 독자들에게 직접 지시하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는 권위를 오직 명령이라는 견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명령이 아닌 본문들에서 선교적 권위를 인식하지 못한다.
권위와 실재.
p.62. 우리는 권위라는 말을 더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권위는 권한을 준다. 그것은 경계선 안에서 행동할 자유를 부여한다. 그래서 나의 운전면허와, 영국 성공회 감독 면허는 날마다 내가 어디로 운전해야 하는지 혹은 내가 어떤 종교 예식을 집례해야 하는지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면허증들은 그런 것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나에게 권한을 주며,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운전해 가거나, 예배를 집전하거나, 설교하거나, 세례를 주는 일을 하는 자유와 권리를 준다.
성경을 읽고 알게 되면 우리는 실재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것은 또한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의 자유에 권한을 부여하고 그 자유 주위에 경계를 설정한다. …그런 실재들은 우리의 선교를 적절하고, 타당하며, 정말 필요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 선교에 대한 권위는 성경에서 나온다. 성경은 우리의 선교가 어떤 실재에 근거하고 있는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성경 본문들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실재, 이 이야기의 실재, 이 백성의 실재를 만난다.
이 하나님의 실재.
p.64. 구약에서 이처럼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에는 하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성품이 둘 다 포함된다. 요는 이 본문들에 야웨 하나님이 정말로 하나님이라면, 그 실재는 광범위한 반응들을 적절하고, 타당하며, 정말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배라는 반응뿐 아니라, 또한 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뜻에 맞는 윤리적 삶이라는 반응, 그리고 열방과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원대한 이야기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선교적 헌신도 포함된다. …선교는 이 하나님의 실재에 의해 정당하다고 인정받는다.
이 이야기의 실재.
p.65. 구약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본문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의 메타 서사, 한 가지 거대 서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이야기에 근거한 하나의 세계관이 있다. 그것은… 사물의 존재 방식과, 그것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이 될 것인지를 설명한다.
…실재에 대한 그런 묘사는 본질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정말로 사물의 존재 방식, 사물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타내고 것이라면,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예배, 윤리, 선교가 마음에 떠오른다. 선교를 포함해서, 이러한 반응들은 이 이야기의 실재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이 백성의 실재.
p.66. 고대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선택, 역사, 그들의 하나님 야웨와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견해로 인해, 나머지 인류 역사에 엄청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실재다. 열방에 대한 기독교 선교는 이 백성이 부름받은 것과, 그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는 방식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구약에서 그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가 있었으며, 둘 다 윤리적·선교적 반응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기억하고 소망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열방을 위해 존재했다. …이스라엘의 사명은 열방의 빛이 되어 궁극적으로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도록”(사 40:5) 하는 것이었다. 그런 환상은 이스라엘 안에서도 다양한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이 보장하신 미래라면, 그것은 지금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하는가? 그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 미래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현실,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며, 그에 비추어 사는 사람들에게 윤리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선교를 하게 명하는 권위다.
권위와 예수.
p.68. 구약의 이 세 가지 특징. 곧 하나님, 이야기, 백성은 … 모두 사실상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특징들이 지닌 권위와 선교적 적절성이 유지될 뿐 아니라, 더 향상되고 변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된 성경적(즉, 신구약을 가로지르는) 신학이 지닌 선교학적 의의를 나타낸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절정과 마지막 결말을 확실히 안다. …우리는 이 백성의 일부가 되어, 그들과 같은 포괄적 정체성과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선교는 분명 성경의 권위에서 나온다. …그 권위는 단지 순종해야 할 하나의 큰 성경적 명령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더 깊다. 오히려 대위임령에 대한 우리의 순종, 그리고 심지어 대위임령 자체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 그분의 우주적 권위가 예수님께 주어진 하나님의 실재에
- 대위임령이 전제하고 또 상상하는 이야기의 실재에
- 이제 열방 가운데서 스스로 복제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백성의 실재에
이것이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고, 이것이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이야기이며, 이것이 우리가 속한 백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선교는 무엇인가?
선교에서 성경적 직설법과 명령법
p.70. 이야기는 직설법을 표현한다. ‘너희 역사에서 일어난 일은 이것이다.’ ‘그리고 야웨 너희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이것이다.’ 그 다음에 율법이 그에 상응하는 명령법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사실들에 비추어 너희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십계명은 곧바로 첫 번째 계명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체성과 이스라엘의 이야기(지금까지)에 대한 서술로 시작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서술이 율법의 명령과 그에 대한 순종보다 먼저 나오며, 그 토대와 권위가 된다.
p.71. 이제 대위임령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스라엘은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이 가장 큰 계명들의 권위는 야웨의 실재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나머지 율법과 선지서 전체가 그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선언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단히 분명한 명령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엄청난 우주적 주장을 하신다. 그것은 모세가 야웨 자신에 대해 단언한 내용을 반영하는 말로(신4:35,39),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라는 말이다. 이것이 그 명령 배후에 있는 실재, 명령법 배후에 있는 직설법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과 권위는 우주론적 직설법이다. 그것은 선교 명령에 권한을 부여하는 근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위임령 같은 중요한 명령법에 헌신적으로 순종해야 할 뿐 아니라, 전체 성경과 거기 나오는 위대한 직설법들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선교적 해석학은 단지 대위임령(Commission)에 순종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심지어 대계명(Commandment)의 선교적 함의를 성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도 않는다. 그 둘의 배후에서 대의사소통(Communication), 곧 하나님의 정체성,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동,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에 대한 계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를 선교적으로 해석하면, 대위임령 같은 위대한 선교 명령에만 사로잡히거나,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러저러한 우선순위(예를 들면, 복음 전도 혹은 사회 참여, 혹은 해방 혹은 교회의 명령만 유일한 ‘진짜’ 선교라고 보는 것)를 강요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그 위대한 명령법들을 토대가 되는 직설법, 즉 성경이 하나님, 창조, 존엄과 부패의 역설 가운데 있는 인간의 삶, 모든 포괄적 영광을 지닌 구속,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새 창조 등에 주장하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볼 것이다. …선교적 해석학은 성경 본문을 총체적으로 해석함으로서 선교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성경적인 신 중심적 세계관과 하나님의 선교
p..73. …우리는 성경 전체가 ‘온통 선교’라는 식의 선교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의문을 던질지 모른다. 이런 불편한 느낌은 선교가 근본적이고 일차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 곧 교회의 인간적 과업이라는 끈질기고 거의 무의식적인 패러다임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선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축소해서 전도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면 특히 그렇다.
…’성경의 선교적 기초’라는 말은 선교의 패러다임을 다음과 같이 바꿀 때에만 적절하다.
- 우리 인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 목적들로
- 우리가 하는 ‘선교 활동’이라는 의미의 선교로부터 하나님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의도하시고 성취하고 계신 선교로
- 인간 중심적(혹은 교회 중심적) 개념으로부터 철저하게 신 중심적 세계관으로
…**도대체 누구의 선교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 대답은 새 창조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이 부르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계7:10)라는 노래를 조금 바꾸어 보면 잘 표현할 수 있다. …’선교가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는 말도 똑같이 타당하다. 선교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과 선교. 미시오 데이.
p.74.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말은 독일 선교학자 칼 하르텐슈타인이 …칼 바르트의 가르침을 요약하기 위해 그 말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 말은 원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의미했다. 성부가 성자를 보내시고 그분들이 성령을 보내신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의 선교는 이러한 신적 보내심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창조, 타락, 구속, 미래의 소망) …즉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는 한 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며, 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궁극적으로 성취될 하나의 목표, 하나의 목적, 하나의 선교를 갖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선교다.
그것은 물론 물줄기가 한 개만 있는 강처럼 단 하나로 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온갖 종류의 더 작은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많은 작은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독립적이다. 온갖 다른 자료들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큰 삼각주와 비슷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내가 제시한 방향,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선교라는 중대한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읽는 것은 이에 비추어 성경 전체의 세세한 부분들을 읽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것이야말로 성경의 선교적 해석학의 핵심 전제다.
인류와 선교.
p.77. 그들은 그들의 등장을 학수고대하던 이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명은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나머지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이다(창1:28). …피조물을 돌보고 지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사명이다. 인류는 하나님 자신의 창조 목적에서 나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존재한다. 인류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서 생태학적 책임, 일, 생산성, 교환과 거래를 포함하는 경제 활동, 모든 문화 명령들이 나온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피조물 안에서 목적 있는 역할을 갖는다는 의미다.
이스라엘과 선교.
p.78. 이스라엘이 선택된 것은 다른 나라들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모든 나라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과 선교.
p.78. 예수님의 선교 의식, 곧 그분의 기록된 말씀과 행동 배후에 있는 목표, 동기, 자기 이해는 열띤 학문적 논쟁의 주제였다. 하지만 예수님이 자기 아버지의 의제라고 인식하신 것을 근거로 자신의 의제를 정하셨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이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적 선교가 철저히 신 중심적이라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에서, 하나님의 선교는 절정에 이르렀다.
교회와 선교.
p.79. 이스라엘은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정체성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열방들과 그 신들의 세상에서 그 사실들을 증거하도록 위임받았다. 제자들은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을 안다.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때, 불가피하게 그것을 증거하는 선교를 하게 된다.
…선교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활동이나 주도권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선교는 피조물 전체의 구속을 위해 하나님의 목적에 하나님의 백성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종합하면, 선교적 해석학이란 성경 모든 부분을 다음과 같은 점에 비추어 읽는 것을 의미한다.
- 피조물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 여기에는 인간의 구속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포함된다.
- 이 땅에서 인간의 삶 일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성경이 인간 문화, 관계, 윤리, 행동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것.
- 하나님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 열방과 관련된 그들의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예배, 사회 윤리, 전체적인 가치 체계에 대해 하시는 요구들.
- 나사렛 예수의 중심성, 이스라엘 및 열방과 관련된 그분의 정체성과 선교,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 하나님이 교회, 곧 아브라함 언약의 확장된 백성인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공동체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열방에 하나님의 복을 전해주도록 부르신 소명.
해석학적 지도
p.82. …우리는 모두 지하철 지도가 그것이 설계된 목적을 위해 실재를 왜곡한다는 것을 안다. 그 목적이란 우리가 실제로 런던의 지하철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정도 왜곡은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진다.
나는 해석학적 틀을 이렇게 지도와 비교하는 것은 일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실재는 성경 본문 전체다. 어떤 틀도 모든 세부 사항을 다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지도와 마찬가지로, 해석학적 틀은 전체 지역을 보는 방식, 그곳을 통과해 나가는 방식, 가장 중요한 것을 관찰하는 방식, 실재 자체를 만나는 방식을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