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교 - 서론

Date: 2022년 10월 12일 Tags: 하나님의 선교

성경적 선교 신학 VS 선교적 성경 해석

양쪽을 다 조금씩 포함하면서, 후자를 더 강조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성경적 선교 신학을 제시하는 책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구약 부분이 나오고 그 다음에 훨씬 많은 분량의 신약 부분이 나온다. 그러고는 각 부분에서 (특히 신약 부분에서) 성경 여러 부분을 검토하거나, 특정 저자들, 이를테면 각 복음서 저자나 사도 바울의 선교 신학을 따로 떼어 내어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 나는 좀 다른 접근법을 사용했다. 나는 성경의 거대 서사 전체에 흐르고 있는 몇 가지 근본적인 주제들을 밝혀 내려 했다. 그 주제들은 성경적 세계관의 기초이며, 따라서 성경 신학의 기초가 되기도 하는 기둥들로, 유일신론, 창조, 인류, 선택, 구속, 언약, 윤리, 미래에 대한 소망 등이다. 각 경우 먼저 구약의 뿌리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나서, 그것이 신약에서 어떻게 발전되거나 확장되었는지 살펴보았다.
  • 구약의 본래 모습에 귀 기울여 구약적 견지에서 해석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구약의 궁극적 초점이자 성취라고 주장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예수님을 증거하는 신약 성경에 비추어,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과 관련하여 구약을 해석하는 것이다.
  • 당시에는 … 신학과 선교는 거의 연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신학은 온통 하나님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다시 말해 신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는지, 그리고 대부분 죽은 사람들인 신학자들이 그 세 가지 모두에 대해 무엇을 사색했는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반면에 선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인 우리에 대한 문제, 그리고 우리가 윌리엄 캐리(첫 번째 선교사) 때부터 해 오던 일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 나는 학생들이 그저 성경에 우연하게 선교 활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많은 본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뿐 아니라, 전체 성경 자체가 하나의 ‘선교적’ 현상이라는 것을 알기 원했다. 현재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의 산물이며 증거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관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다. 성경은 이렇게 목적을 갖고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드라마다. 그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 이스라엘과 열방, ‘생명과 우주와 만물’을 포괄하면서, 그리고 그 선교의 중심, 초점, 절정,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고서, 우주적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선교를 하고 계신다. 선교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여러 사항 중 하나, 그중 다른 것보다 조금 더 긴급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우 남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선교는 ‘전부다.’

선교(mission).

근본적으로 우리의 선교는(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에 의해 정당성이 입증된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의 구속을 위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 게다가 나는 선교를 설명하면서 그 말의 ‘어원’이 ‘보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미토(mitto)’라는 점만 강조하고, 선교의 일차적 의미를 보내는 것 혹은 보냄을 받는 것에서 찾는 것에 불만이다. … 그것은 선교를 ‘보내는 것’이라는 견지에서만 규정할 경우, 성경의 가르침 중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실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는 다른 많은 측면들을 제외시킨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대체로, 나는 선교라는 말을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정확한 목표와 계획된 행동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장기적 목적 혹은 목표라는 것이다.
  • 사명 선언은 그들의 존재 목적과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요약해준다. 성경은 의심할 바 없이 분명한 목적을 지닌 하나님의 모습을 제시한다. … 이 책의 사명은 하나님의 사명과 그것에 포함되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주제들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세상과 관련해서 탐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선교사적(missionary).

  • 이 말은 보통 명사로, 일반적으로 자신의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 … 더욱 유감스러운 사실은, 선교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고, 또 현재 타문화 선교에 종사하는 사람들 다수가 서구인이 아니라 ‘다수 세계’(Majority World : 인류의 다수를 차지한다는 의미로 ‘제3세계’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쓰이는 말)의 성장하는 토착 교회 출신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교회에서조차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수 세계’의 교회 및 선교 기관들과 연계망을 구축하고 협력하는 많은 서양 선교 기관들은 이러한 낡은 이미지 때문에 선교사라는 용어를 피하고, 대신 ‘선교 파트너’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 내 생각에(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열방에 선교사를 보내라는 명령을 받지는 않았다. 성경에는 가장 광범위한 의미의 선교, 특히 하나님의 선교를 대단히 잘 이해하게 해주면서도 보냄받는 선교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신약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본문들과 주제들을 ‘선교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선교적(missional).

  • 선교적이라는 말은 선교와 관련되거나 선교에 의해 규정되는, 혹은 선교의 특성, 속성, 혹은 역학을 가진 어떤 것을 나타내는 형용사다.
  • 이 말은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의 역동적 의의와 오늘날 기독교 선교와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해석을 뜻한다. 또는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서 선교적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열방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궁극적 의도와 연관된 정체성과 역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이 열방에 가라는 선교사적 명령을 받았다고 암시하지 않으면서도 선교적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선교학(missiology)**과 선교학적(missiological).

앞으로의 여정

… 사람들은 여러 가지 틀을 통해 본문을 해석한다. 페미니즘적 틀, 심리학적 틀, 세대주의적 틀 등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에선가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링턴은 다음과 같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저러한 특정한 틀들은 본문의 취지를 성경적․신학적 문맥에서 정당하게 취급하는가, 아니면 본문을 왜곡시키는가? 다시 말해, 본문을 틀에 넣는 것 자체가 필연적으로 잘못이라는 것도, 심지어 그렇게 할 때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렇게 해서 종종 도움을 받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 틀이 본문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하는 것과, 본문이 어떤 순간 그 틀을 비판하도록 허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 1부 “성경과 선교”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기독교 선교가 성경에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선교의 구약적 뿌리에 의도적으로 더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확고한 신학이 성경 전체를 읽는 효과적인 해석학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 이 책 나머지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지도가, 이 책의 부제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의 웅대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지 살펴본다.

p.29 마지막 줄부터 끝까지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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