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론 & 산책하기 1
날짜: 2025년 4월 21일
에스겔 들어가기
내용: 여호와의 떠나심과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여호와의 돌아오심과 함께 마침내 실현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하는 일련의 예언들 선지자: 주전 598년에 가장 먼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에 속한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에스겔. 예레미야와 동시대인이지만 나이는 어림. 활동 시기: 주전 593년(겔 1:2)에서 571년(29:17)까지 강조점: 죄, 특히 우상숭배 때문에 예루살렘 멸망의 불가피성, 만국과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초월적 주권, 임재의 상실과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가운데 거하심. 하나님의 임재의 상실과 회복, 언약적 신실함의 비결인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대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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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에는 다양한 예언적 이상과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들은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시기에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에게 22년(주전 593-571년) 동안 전한 것이다. 애굽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탄식(29:17-30:26)을 제외한 모든 말씀들은 연대기적 순서를 따른다.
이 책은 분명하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24장은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588년)이 있기 전 5년 동안 하나님께 받은 말씀들을 담고 있다. 이 말씀들은 일차적으로 자만에 빠져 있던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 확실한 심판의 말씀들을 선포하는 것이다.
25-32장에서는 바벨론이 주변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다. 마지막 말씀들(33-48장)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16년 동안의 기간에 해당하며, 미래에 대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구조는 에스겔 신학을 반영한다. 이스라엘, 성전을 포함한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거룩한 진노로(그의 임재의 장소인)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믿지 않았고, 또 그것에 저항하기까지 했다(1-24장). 여호와는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다른 민족들도 자신들이 행한 우상숭배와 죄악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25-32장). 그러나 여호와는 놀라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그들과 관계하실 것이다(33-48장).
에스겔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에스겔이 살던 시대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열왕기하 22-25장에서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에스겔은 요시야의 개혁(주전 622년)이 일어나기 6년 전에 한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고, 서른 살(주전 593년)에 시작되는 제사장 직무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598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때문에 갑자기 재난이 닥쳤다.
에스겔이 사는 동안에 유다의 왕들은 그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애굽과 바벨론의 싸움에서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였고, 여호야긴 왕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왕과 예루살렘의 저명인사들 대부분과 함께 에스겔의 가족들도 포로로 끌려가서(렘 29:2 참조) 그발 강가 가까운 곳에 있는 바벨론 남쪽의 포로 거주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이 포로 생활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영광스러운 역사의 장에서 단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에 불과한 것으로 믿었다(렘 28장 참조). 그러나 예레미야는 편지를 보내서(렘 29:1-23)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그곳에 오랫동안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5년이 지난 뒤에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선지자로 부르셨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집”에, 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겔 3:1, 11).
이 모든 것의 핵심에는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아들이는 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신학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속하셨으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그 땅과 특히 예루살렘)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상징됨)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신학의 의미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전례를 갖고 있었다. 백성 대다수는 이 신학을 예루살렘은 절대로 침공당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이 견해는 약 125년 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뒤에 예루살렘이 기적적으로 구출을 받은 사건으로 더욱 굳어졌다(왕하 17-19장 참조).
스바냐와 예레미야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궁정 선지자들(예컨대, 렘 28장의 하나냐)은 백성들에게 이 신학을 계속해서 주입시켰다.
에스겔 역시 이스라엘이 장소와 하나님의 임재로 규정된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결국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이 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데 실패함으로(16장; 23장의 인상적인 심상을 보라), 그 땅과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하게 되리라는 것도 인정하였다.
여러 가지 이상들과 예언적 행위들과 하나님께 받은 말씀들을 통해서 그는 예루살렘이 곧 멸망할 것과 여호와께서 자신의 성전을 떠나실 것(10장)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선포하였다. 이것은 에스겔에게 몹시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바벨론의 유대인 포로들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가장 좋았던 모든 것들이 미래에 갱신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내다보았다. 그것들은 왕, 땅, 백성, 언약, 하나님의 임재로서 결국 그리스도와 그의 새 언약 백성 안에서 성취되었다.
이제 에스겔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독자들은 에스겔이 앞선 선지자들과 대조적으로 주로 시 형식보다 산문 형식으로 말씀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에스겔서를 읽는 것은 언어로 된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계속 이어지는 예언의 말씀들이 선지자의 상징적인 행위나, 또는 환상이나 우화적인 그림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중 일부는 해석되기도 하는데, 1장부터 15장과 17장의 해석된 상징적 환상들, 그리고 16장의 비유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다. 16장의 비유는 직접적이라서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성전과 제사에 관련된 것들에 대한 에스겔의 관심을 비롯하여 에스겔서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다른 특징들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언의 말씀들이 얼마나 자주 여호와의 질문으로 시작하는지 살펴보라. 또한 그 말씀들이 얼마나 자주 “그러므로 네가/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되리라”(68번), 또는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18번)는 말로 끝나는지도 살펴보라.
이처럼 반복을 즐겨하는 에스겔의 경향은 현대 독자들에게는 때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을 보고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에스겔의 방식이었다. 또 그가 자신을 “인자”라고 반복해서 지칭한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히브리 어법(Hebraism)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신약, 특히 바울의 서신들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에스겔서의 표현과 사상들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많은 이미지들은 에스겔서의 이미지들을 채택한 것이다. 요한은 에스겔서의 이미지들과 다니엘서와 이사야서에 나타난 이미지들의 일부를 결합시켜서 전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행동 양식들을 새롭게 표현하였다.
산책하기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신탁(1-24장)
1:1-3:27 에스겔의 소명과 위임 1-2절은 에스겔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있다는 것과 그가 삼십 세가 되던 해, 즉 포로로 끌려간 지 5년째 되던 해(주전 593년 7월)에 소명을 받았음을 알려 준다. 에스겔의 소명은 극적인 드라마로 시작된다(1장). 여호와께서 그룹(cherubim)이 끄는 장엄한 수레로 된 보좌에 앉으셔서 영광 중에 그에게 나타나신다(10:20 참조). 그는 여호와의 영광 앞에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린다(단 10: 참조; 계 1:17). 그리고 소명을 받고 극히 어려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성령을 통해) 준비된다(겔 2:1-3:27). 에스겔이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은 이상/말씀의 마지막 시리즈의 서두에 다시 등장한다(33:1-20).
4:1-7:27 다가올 포위 공격과 예루살렘의 멸망 이 단원을 읽을 때 그 내용이 1:2에서 연대를 밝힌 사건들에 이어지는 부분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에스겔은 5년 후에 일어날 사건들과 관련해서 미리 세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4:1-3, 4:17; 5:1-4). 이 행위들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임박한 예루살렘 포위 공격과 멸망을 선언하신다(5:5-17). 그 뒤에 예루살렘과 산지가 황폐하게 될 것을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두 가지 예언의 말씀들이 이어진다(6-7장). 특히 이 말씀들이 이스라엘의 산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36:1-15 참조)과 두 말씀 모두 “내가 여호와인 줄 그들이 알리라”는 진술로 끝나는 것에 주목하라. 그 땅이 황폐하게 되는 유일한 원인은 우상숭배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체는 그들이 숭배한 우상들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될 것이다(6:5).
8:1-12:20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예루살렘을 떠나시는 여호와 1년 남짓 지난 뒤에(주전 592년 9월) 에스겔은 성령에 이끌려서 성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목격하게” 된다(8장).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비통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여인들이 담무스 신을 위해 애곡하고, 남자들이-여호와께 등을 돌린 채!-영원한 하나님의 임재 장소에서 태양을 숭배할 때 여호와께서 얼마나 비통해 하시겠는가?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마에 표를 하는 것으로 구원받을 자를 구분하시고 나머지 백성은 모두 멸망하라고 명령하신다(9장). 예루살렘은 불에 탈 것이며(10:2,8), 결국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10:19)과 예루살렘 성을 떠날 것이다(11:23). 특히 정치를 잘못한 예루살렘의 현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11:1-15). 그러나 남은 자들을 살려 달라는 에스겔의 호소(11:13)와 함께 미래에 대한 소망이 제시된다(11:16-25). 이것은 33-48장을 예고한다. 이 단원에 예언되어 있는 마지막 사건은 2차로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에스겔은 또 다른 상징적 행위를 통해 이를 예언한다(1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