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담당자: 이성빈 파일과 미디어: ../3%EC%9E%A5_%EC%82%B4%EC%95%84%EA%B3%84%EC%8B%A0_%ED%95%98%EB%82%98%EB%8B%98%EC%9D%80_%EC%9D%B4%EC%8A%A4%EB%9D%BC%EC%97%98_%EC%95%88%EC%97%90%EC%84%9C_%EC%9E%90%EC%8B%A0%EC%9D%84_%EC%95%8C%EB%A6%AC%EC%8B%A0%EB%8B%A4.hwpx
3장 살아계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다
발제자: 이성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에 대한 체험 특히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핵심사건을 통해 어떻게 야웨의 유일성을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반대로 이스라엘과 다른 열방들이 야웨의 심판을 통해 어떻게 야웨를 알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것
*출애굽 –야웨께서 알려지시리라(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은 야웨는 비교할 수 없는 분_‘주와같은자가 누구니이니까’ 다른 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위대하시다는 것이 최상급으로 단언되었기에 유일신론에 대한 주장이나 다름 없다, 주권적인 분,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웨는 왕이시다 –야웨는 유일하시다
*바벨론 포로 귀환 –야웨는 역사를 주관하신다 –야웨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주권을 행사하신다. -야웨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 행동하신다 –야웨의 주권은 모든 피조물에게 미친다 –야웨는 자신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증거하는 일을 자기 백성에게 맡기신다.
이스라엘이 야웨를 한 분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바로 그 하나님)으로 알게 된 것은 주로 그들이 역사적인 해방을 통해 야웨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는 것
- 애굽-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킴으로 하나님을 알리신 동시에 바로의 억압을 심판하심으로 자신을 알리심 ‘그러면 너희가 알리라’‘너희가 알게 하기 위하여’,
- 바벨론 포로가 된 이스라엘-느부갓네살의 손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하고 예루살렘이 파괴된 사건. 야웨가 패배하신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주관하고 계셨다. 여전히 자기 원수들을 처리하고 계시다. 이스라엘이 야웨와 같은편이라면, 예루살렘은 파괴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야웨와 반대편이라면 예루살렘은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야웨의 역설적 주권이 시종일관 단언된다.
- 야웨는 편애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언약 상대자로 선택된 것은 편애가 아니라 엄청난 책임을 받은 것이다. 윤리적 삶을 살지 못했을 때 더 엄중한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열방을 공정하게 다루신다는 것과 이스라엘이 편애받는 지위에 있지 않았다.
- 야웨는 어떤 나라든 심판의 대행자로 사용하실 수 있다. 어떤 나라든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그분의 주권적 자유와 결합되어 있다.
- 야웨의 심판은 의롭고 공정하다. 즉 정의가 야웨의 통치의 가장 핵심이며, 이것은 모든 열방에게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지어 심판을 받을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열방에게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바벨론에서 불러냄을 받은 한 사람의 후손이 이제 포로로 잡혀 다시 바벨론으로 가며, 바로 거기에서 그 약속을 성취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바벨론에서도 기도와 평안의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심판을 받는 열방들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서의 내용은 열방이 야웨 한 분 만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 유일한 정체성, 보편적 통치, 무적의 권능을 지닌 분이시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알게되리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노출됨으로서 세상은 야웨가 초월적으로 유일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것, 야웨가 제국의 군대에 의해 약탈당한 한 지역의 패배당한 하찮은 신들 중 하나이기는커녕,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신 분임을, 그분만이 실제하시는분, 실체와 중요성을 지닌 하나님이라는 야웨의 영광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이나 포로귀환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경험하지는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는 경험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계시의 매개자로 사용되었다면, 오늘날 교회나 성도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는 통로가 되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