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날짜: 2025년 3월 6일

출애굽기 20: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루카 9,23~2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 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되고 편리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상처 입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 더 가지고 편리해지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조금은 불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아주 작은 불편이 지구를 살리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는데 보탬이 되게 하소서. 아멘.


어제 사순절 시작을 맞아 재의 수요일 예배 순서지와 설교문으로 혼자 사순절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순절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읽으면서, 사순절은 단순히 절제하고 슬퍼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는 번데기 속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를 품은 어머니가 태어날 아이를 기대하고 사랑하며 절제하고 조심하듯, 이번 사순절은 육신을 입은 내가 나와 창조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듭남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시간으로 보내길 소망합니다.

이번 사순절에 지킬 원칙 3가지를 정하였는데, 그 중 하나는 느리고 불편함을 참는 것입니다. 현대, 특히 한국은 정해진 날짜와 시간까지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을 묻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서비스가 늦고 잘못되면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내 것에 타인이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것에 화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때에, 그런 저의 모습 또한 봅니다. ‘정해진 원칙대로 항상 조금도 틀리지 않고‘라는 것을 빈틈없이 지키기 위해선 누군가는 긴장하고 무리하며 혹사하고 소모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느리고 불편하게 사순절 보내기를 다짐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화내기를 더디하며,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외식을 절제하는 삶. 어제 몇가지 안되는 일을 결단하며 사순절을 시작했지만, 분명히 넘어지고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도 마음 한켠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 공동체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예배의 자리, 함께하는 공동체를 보며 이 기간에 예수님의 한귀퉁이라도 닮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 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편의 말씀이 사순절을 지나며 오늘을 살아가는 저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묵상 하며 저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다를바 없는 사람임을 다시금 깨달으며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또한 어디로 돌아갈지 알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위안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기억의 기억. 짧은 단어가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한낱 티끌인 나를 기억함과 동시에 그런 나를 기억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는 이 사순절이 그리고 매일의 삶이 되었으면 하며 기도하게됩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억의 기억을 훈련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겠습니다. 또한 나의 손이 너무 차다는 것을 다시금 주님 앞에 고백하며 찬란하게 나를 비추는 그 빛으로 나의 손을 따뜻하게 데워보며 그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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