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대회 대담 (직장인 선교)
- 구성원: 오숙근, 구영미, 허동욱, 이형식, 장충현
공통질문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
- 오숙근: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따듯한 사랑에 영향을 받아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 생김 장래희망? 늘 교사이었음. 유치원 교사로의 결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었던것 같음. 임용 후 유치원 교사로 37년 재직하며 아이들. 학부모. 동료직원들과의 만남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심을 보고 “아, 이건 하나님께서 나를 유치원 교사로 인도하셨구나” 느껴졌음.
-
구영미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시간과 요일등이 제약이 많고 아이들이 어릴 때이니 만큼 좀더 아이들을 잘 돌보면서 가질 수 있는 직업군을 늘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첫 직업군이 학원강사는 오후출근과 늦은 저녁퇴근이라는 업무환경이 아이들과 맞지 않았고 과외는 불규칙한 수입과. 저녁시간때만 이뤄지는 단점이 있었고, 회사도 다녔으나 전문직이 아니다 보니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늘 있었습니다. 공부방을 할 때가 아이들을 돌보며 하기 가장 좋은 직업이였는데 여건이 맞이 않아 고민하던중 9시 출근 6시 퇴근 조건이 제 워라벨도 향상될꺼 같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
허동욱:
직업군인을 꿈꿔왔고 꿈을 이뤄 직업군인으로써 살아가다 이것이 과연 내가 원했던 삶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직업을 고민하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카페 창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카페 창업을 하고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니 삶에서의 선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향을 주며 자연스럽게 교회 얘기가 가능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 일이 단순히 영리 활동의 결과물이 아닌 삶에서의 선교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이형식:
평소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고1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건이 있었고, 대학교 1학년 때는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가르쳐야 성인이 되어서 편견과 몰상식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좀 더 어릴수록 내 말을 더 잘 듣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피터지는 임용고사 경쟁률도 이 선택에 한 몫 했지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대학교 3학년 생활을 할 무렵에, 전국교대동맹 휴업 사건이 발생했는데, 명분은 OECD 수준의 학급당 학생수 보장 요구였습니다. 이는 곧 임용 T.O와 직결되지요. 그러니까 실상은 임용 경쟁률좀 낮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못마땅하여 동맹휴업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결국 가결되어 무기한 휴업투쟁에 들어갔습니다. 와중에 2학년 학생들의 교생실습이 있었고, 3학년 학생들은 투쟁에 실질적인 보조 역할을 할 2학년이 빠지자 ‘너네 챙길거 다 챙기고 어떻게 투쟁을 하냐’는 식으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곧이어 3주쯤 뒤에 3학년이 교생실습에 나갈 차례가 되니, 2학년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어디가고 ‘이번 실습 안 나가면 4학년 때 두 번 나가야 하는데, 4학년은 임용고사 준비하느라 안 그래도 힘들다’는 발언들이 쏟아져 결국, 3학년 실습과 동시에 동맹휴업은 막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맹휴업을 하냐 마냐보다 이런 지 이득 외에는 관심없는 이중잣대의 내로남불인 사람들과 직장동료가 될 생각을 하니 구역질부터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체?휴강을 강행하였고 결과는 3학년 2학기 올F로 돌아왔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생략하고, 어찌저찌 졸업하여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에 교육청의 기간제교원 공고를 보고 흥덕초등학교에 전화하여 1년 동안 총 2회 계약에 걸쳐 교사의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두 달 정도는 굉장히 삐걱거리며 내가 이렇게 못 돼쳐먹고 아이들도 이렇게 악마 같을 수 있냐며 진저리를 쳤습니다. 그러던 중 옆 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도 제 멘토이신 김지환 선생님인데, 연구실에서 항상 동료 교사들을 웃기시며, 아이들에게는 ‘개똥이 아빠’이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부모님보다 더 사랑받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선생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기존의 교사상을 버리고, ‘인간’ 이형식으로서 ‘인간’인 아이들을 만나자 많은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부터 교사는 저의 천직이 되었고,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그럴 듯 합니다.
- 장충현
중학교때부터 막연하게 창업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됐던 어른이 되면 내 사업 또는 나만의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대학교 때 교내 창업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고 꿈은 더 부풀었으나 일단 사회생활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취업부터 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직장들은 한마디로 건강하지 못한 사내문화 또는 분위기를 가진 곳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한다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들을 많이 고민하고 배웠습니다. 그러다 목사님 덕분에 사회와 환경에 눈을 더 크게 뜨게 되었고 운이 좋게 친환경 아이템으로 창업지원사업에 합격하게 되면서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창업한 건 지금도 후회하지 않고 일하는 게 감사하고 즐거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4년차가 되니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안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투잡을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기도도 하고 고민도 하고 지내던 중, 순례다녀오고 다서 노로바이러스에 걸렸고 수액맞고 실비청구 할 생각 하다가 우연히 보험 점검을 하게 됐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의 보험을 살펴보다가 온가족이 십수년간 보험료가 줄줄 새고 있었고 담당 설계사가 너무 별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고 제가 만난 설계사 중에 가장 정직하게 느껴지는 설계사님께 제 보험을 리모델링하고, 흥미를 느끼던 중 이 일이 사업하면서 투잡하기에 좋겠다. 나와 우리 가족처럼 피해입는 사람이 주변에 더이상 없도록 도와야겠다. 이 바닥을 깨끗하게 하는데 기여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투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각자의 직장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지
- 오숙근: 저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늘 ‘이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생명’이라는 마음을 갖고 대하려고 노력함. 아이들이 어리기에 학부모와 자주 만나거나 소통필요하여 지혜롭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고, 유아기 순수함이 복음을 전하는데 용이하였음. 저의 첫 발령일은 1987년 5월15일 입니다. 발령 받을 때 저의 처음 갖은 마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지로 사명자로 보내셨다 생각함. 나의 본업은 복음 전도자이고 부업으로 교사라는 주셨다 생각함.
■아이들 대상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함. - 예수님 믿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유치원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예수님을 믿는다’ 라고 말할 때 아이들이 예수님이 누구냐고 질문하고 알고 싶어 하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들려줌. - 교실 청소하러 오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함. -방학 중 유치원 아이들 대상으로 학부모 동의 후성경캠프 (일주일 정도) -학교 주변 놀이터 토요교회 - 2015정도부터 학교에서 복음 전하는 일이 많이 어려워짐 지금은 아이들에게 직접 신앙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제 말과 태도, 사랑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려 노력함.
■동료교사, 학부모 대상
학부모와 소통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인 임을 말하고, 나의 삶의 태도를 보고 저들이 하나님을 발견 할수 있도록 함.
- 삶의 순간마다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내게 왜 보내셨을까를 생각하며
대함.
-근무지를 옮길 때 마다
믿음의 선생님들과 작은 소모임을 통해 기도(학생. 동료교사. 학부모)와 말씀 묵상과 삶 나눔.
-힘들고 어려움에 있는 선생님들의 친구가 되어 주려 노력하며 하나님께서 만남의
축복 허락하심.
바쁠 때는 기도할 시간조차 없을 때도 있지만,
남들 보다 일찍 출근하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출근길에 짧게라도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어려운 점은 ‘직장에서 신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부분이지만, 그래도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사람들과 제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 구영미:
일을 하며 몰랐는데 구글을 찾아보니 사회복지사도 전문직이더라구요 다시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구요 일을 처음 할때는 그저 어르신들과 친하게 지내자 그들이 잘 지내고 나도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살아보자 이렇게 만 생각을 했는데 일을 할수록 단지 일적인 것만으로의 관계보다는 그들의 삶을 들어야 보고, 가족관계를 바라보고 그속에 저의 자리를 한사람 한사람 관계 찾게 되더라구요 센터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독거어르신집에 갖다 드리게 되고 요양선생님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집안일이 있으면 내손 하나 거들자 하며 집안을 정리하거나 드실 음식을 챙겨드리게 되고 어르신께 맞는 복지사업이 있으면 연결하여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며 그들의 삶을 한사람한사람 존중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주신 것이 주님이 시고 이것이 직장에서의 제 신앙인거 같습니다
- 허동욱:
카페를 운영하면서 모범적은 카페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운영 전반적인 부분에서 해서는 안된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임해 남들이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카페 운영 방식을 고집하고 있으며 직원 및 아르바이트생 고용 및 운영에 있어도 그들이 불편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그들의 마음에 전해졌을때 사장님이 다니시는 교회가 궁금해요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러한 친구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며 서로가 나아지는 삶을 고민하고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이형식:
신앙생활은 직접 전도나 말씀묵상, 기도, 찬양, 예배의 영역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삶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어떻게 예수 따름이로 살아가려는지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말과 행동하는 데에 지침이 되게끔 합니다.
-
왜 가르치는가?
- 아이들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의 형상을 찾게 하기 위하여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 - 인간으로 인해 황폐해진, 그래서 회복 노력이 중요한.
- 인간세계의 악함과 이를 해결할 유일한 수단 - 용서, 사랑, 믿음, 성실… 결국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국가교육과정을 재해석하여 정규교과 시간에 이 정신을 녹여냄
- 아이들은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을 적극적으로 잘 따르는 경향이 있음. →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 아이들도 나를 적극적으로 따름. → 나를 잘 따른다면 나의 평소 행실이 그들에게 모델이 될 것임.
-
직장 동료와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
-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을 포섭하여 직장 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 이 사람들에게 힘든 일, 궂은 일에 발 벗고 나서서 도움 주기
- 이 무리가 다른 동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과 용기 북돋기
- 학교 전체가 이러한 흐름으로 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행동하기
-
장충현
소속한 지점 인원 절반 이상이 크리스천이다보니, 영업조작이지만 서로 노하우도 공유하고 교회 분위기처럼 따뜻하고 서로 돕는 분위기가 잡혀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뒤에 들어온 신입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점 내 문화 중에 매일 아침 단톡방에 감사 제목 3가지를 자유롭게 누구나 올리는 게 있는데 안올리는 사람은 매일 안올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참여하려하고, 감사를 의식적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적고 나누어보니 저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안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믿는 사람들은 서스럼없이 신앙 얘기도 녹여서 합니다. 기도제목을 나누며 서로 중보하기도 합니다. 회사 조직 내에 신우회가 있는게 아니라 신우회가 회사 조직이 된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좋은 밭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좋은 씨앗을 뿌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아보험의 수익 1%를 희망날개에 기부하기, 이런 문화에 동참할 동료들을 모집하기. 이런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더 공부하고 많이 아는 게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지속적으로 공부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는 직원이 1명이고 풀재택입니다. 한달에 1번 정도만 대면해서 만나서 회의하고 삶을 나눕니다. 전적으로 믿고 맡기고 지원해주려고 합니다. 직원이 부담을 느끼거나 싫어하는 것 같으면 직원 뜻을 존중합니다. 한마디로 대표가 직원 눈치를 봅니다. 어쩌면 이게 하나님나라, 사자랑 어린양이 같이 노는 것 같기도 합니다.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조금은 수정해나가야 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좀더 수평적이고 직원이 일하기 좋은,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성과와 성취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등 여러 가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회사 버전으로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일을 합니다.
개별질문
-
오숙근:
- 악성 민원 학부모 사례와 그 대처 방안이 궁금합니다.
-
- 유치원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솔직한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신앙적으로 참 감사하다’ 느꼈던 순간이 있을까요?
-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며 하나님을 보게됨. 그래서 유치원 교사인것에 참 감사함.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것은? 어린이라 생각됨.
-
- 교사로서 신앙과 업무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때는 어떻게 풀어나가나요?
- 사실 교사로 일하면서 신앙과 업무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가 가끔 있음. 예를 들어, 요즘은 종교적인 표현을 조심해야 하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마다 ‘그럼 나는 행동으로 보여주자’ 하는 마음으로 바뀜. 아이 한 명 한 명을 하나님이 맡기신 귀한 생명으로 생각하면서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함. 또 마음이 흔들릴 때는 짧게라도 기도하면서 ‘내가 이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중이다’라고 다짐. 그렇게 마음을 바로잡으면, 힘듦이 오히려 감사의 시간으로 바뀜.
-
구영미:
- 이 일을 하시면서 어떤 상황에 뿌듯함과 후회감을 느끼시나요?
그냥 단지 반가운 인사말 하나에도 즐겁게 받아주거나 제가 도와드린일들이 잘 되고 그간의 고 관계들 속에 어르신들께서 “구선생 고마워 할 때 예요, 어제도 ”어디가도( 이사예정) 나 항상 잘 챙겨달라 구선생 만난게 진짜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과의 오고가는 대화속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후회가 드는 순간은 이일도 자본주의 사회안에 있는 직업이고, 생업수단으로만 하시는 분들이 있다보니. 어르신들의 권익과 복지보다는 한사람이라도 취하여 본인센터 소속이 되게하기위해 저를 헐뜯고 비난하고 불법적인 방법이라도 사용하는 센터를 만날때와 타기관의 영업수완에 마음을 옮겨 어르신들게 이유없는 비난을 받거나, 단지 센터를 바꾸기 위해 다시 안볼꺼처럼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그간의 히스토리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속상함에 후회가 들때도 있었습니다.
-
- 사회복지 현장은 어려움 속에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현장에서 신앙이 어떤 힘이 되어주나요?
진짜 열악한 판자촌, 화장실도 없는 곳에 생활하시면서 자존심을 똘똘 뭉쳐 나는 필요한 게 없다는 집도 있었고, 치매가 심하여 돌봄을 받기 위해 존중과 소통이 있어야 함에도 막무가내로 화를 내거나 결벽증에 온 집안에 광을 내시고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요양선생님이 그만두는 집도 있었고, 눈이 안보이는데 섬망도 있어서 온 집안을 난리 법석하게 만들어도 같이는 못산다며 따로 사는 자녀들을 볼때도 있는데. 저는 그분들다 소중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가 한번이라도 더가서 집안을 정리해드리고 좀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고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허용하도록 설득도 해보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녀가게 되는 것 같아요 자주 들어다보고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업무가 좀 밀리기도 합니다.
-
- 혹시 복지 현장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일을 하다보면 좋을때도 있지만 다양한 이슈들 속에 힘들때가 많은데 그럴때마다 제 마음을 다독이시며 잠잠하게 됩니다. 또 최근에
욕쟁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어르신 한분이 계신데 너무 괘팍하고 고집이 쎄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둔 요양사가 2-30명 정도 되는데 그분을 모신다고 70넘은 교회 목사님께서 기도하다보니 그분을 다시 섬기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시며 그분 때문에 금식기도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어르신도 보듬고 함께하는 이를 보내신 것이 그런 마음을 그 선생님께 주신 것이 참으로 놀라웠던거 같습니다.
-
허동욱:
- 진상 손님의 종류와 대처 방법이 궁금합니다.
-
- 군 생활에서 카페 운영으로 전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군인일 때와 지금, 신앙의 모습이나 중심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
-
카페를 운영하면서 손님들과의 만남 속에 신앙을 전할 기회가 있었던 적도 있나요?
-
-
이형식:
- 말을 드럽게 안 듣는 학생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 먼저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학생은 저와 친하게 지냅니다.
- 저도 말을 드럽게 안 듣는 학생이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양이라는 사실도요.
-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왜 말을 듣지 않았을까, 무엇이 불만이었나를 그 학생에게서 찾아냅니다.
-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따끔하게 혼을 내기 보다는 농담이나 비꼬기를 시전하여 먼저 현장 분위기를 누그러뜨립니다. 그 다음 학생의 감정이 진정되었으면 짧든 길든 상담을 통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게 합니다. 제가 잘못하거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사과도 합니다.
- 이 학생의 버릇이나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점점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교사로서 신앙이 교육 철학이나 학생 지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수업이나 생활지도를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도 나눠주세요.
- 2.신앙과 직업 사이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예를 들어, 한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일하고 계시구나’ 느꼈던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말을 드럽게 안 듣는 학생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
장충현:
- 제로 웨이스트 회사 운영과 보험설계사 일을 하시면서 각각 어떤 장/단점을 느끼시나요?
공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돈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거나 100에 수렴한다. 하는 만큼 돈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사회와 주변인이 응원해줘야하고 지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다 자리를 잡고 지속가능성이 생기면 그보다 멋진 일이 없다.
영업은 하는 만큼 돈이 된다. 금융, 영업, 단어만 봐도 자본주의 냄새 풀풀 풍긴다. 그래도 헛돈 쓰고 있어서 그 지출을 줄이고 저축하거나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돕는 일, 실제로 질병을 겪게 되어서 청구를 돕고 받게 해주고 고마움의 인사를 받으면 보람차다.
공통점은 둘 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하다.
눈 앞의 이익과 욕심, 게으름, 비교의식..
-
- 자영업을 하시면서 신앙이 경영 철학이나 운영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고객을 대할 때나 직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믿음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적다가 해당 질문에 대한 이야기들을 녹여내서 패스
-
-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움도 많을 텐데, 그럴 때 신앙이 어떤 힘이 되어주나요? 혹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응답을 경험한 일화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무력함, 낮아짐, 두려움 등을 느낄 때면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상황이 조금 풀리면 안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건 내 능력 밖,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라고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아서 나눌만한 건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 같은데, 튀르키예,그리스 순례에 갔을 때 여행 초중기에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가서 제출해야될 서류들이 있었기에 다음날 마이크를 잡고 버스에서 “저는 올 한해 농사 망쳤습니다.”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해는 창업지원을 꼼짝없이 못받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돌아오고 나서 기대보다 더 큰 지원을 받게 되었고,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나의 신앙보다는 신앙 공동체가 힘이 되어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