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위한교회사
2020년6월5일 금요일 오후9:31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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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의 문 위에는 만화가 걸려있다. 이 만화는 “피넛츠”에서 오려 낸 것이다. 찰리 브라운의 작은 여동생인 샐리가 “교회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학교에 낼 작문을 하고 있다. 샐리의 옆에 앉은 찰리의 눈에 그녀의 작문의 첫부분이 들어온다. 그 내용은 “교회의 역사를 논하자면 그 시초부터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우리 목사님은 1930년에 태어나셨다.” 찰리는 기가 막혀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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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교훈의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는 과연 어떤 의미였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 간섭하심을 의미했는가,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이미 그의 나라가 현존하고 있음을 뜻하셨는가? 아마 그는 양쪽 모두를 의미하셨을 것이다. 우리가 그 구절의 의미는 단지 지리적인 영역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함을 깨닫는다면 이 두 가지 의미를 한데 조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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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사도들,” 즉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그의 추종자들은 또 다르게 구별되는 형태의 사회와 위대성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 왕국들에서는 세력이 강한 지도자들이 다른 이들을 위에서 짓밟고 군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봉사에 의해 전혀 다른 방법으로 통치되는 것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너희들에게 이 나라를 주시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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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너희들을 위해 주는 나의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같은 모양으로 그는 잔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나를 기념하여 마실 때마다 이를 행하라”
예수님은 이 “새 언약”으로 무엇을 의미하셨는가? 물론 그 배경은 이집트로부터의 탈출과 시내 산에서의 이스라엘 국가로서의 형성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처럼 명백한 사건들 이상을 그 마음에 두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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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핏속에서의 “새 언약”을 말씀하셨다. 그의 말씀들은 언젠가 돌판에 새긴 언약이, 인간들의 심정에 새겨지는 언약들로 대치될 날이 올 것을 약속하였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바가 있었다. (렘 3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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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처형한 후 8년간 유대인 공회는 계속 시달려야 했다. 아무도 나사렛인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 공회는 예수에 관해 말하는 것을 금지했으나, 나사렛 당은 점점 더 대담해지기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공회가 메시야를 살해했다고까지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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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게된 헬라파 유대인들을 교회에 환영하였다. 그런데 곧 팔레스타인 출신과 헬라파들 사이에 사이가 벌어짐으로 단결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일부 헬라파 출신들은 자기들의 과부가 교회 내의 복지제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이러한 불평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도들은 스데반과 빌립을 포함한 헬라파 출신들 일곱 명을 기용하여 구제 문제를 전담할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종들’ 혹은 ‘섬기는 자들’이라는 의미인 집사들(헬라어로 diakonoi)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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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통해 개종한 이들은 가지 각색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좋은 집안 출신이었으나, 대부분은 하류층의 이방인 출신이었다. 바울은 그의 편지들 가운데 하나에서, 이들의 과거에 관해 묘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음란한 자들이었고, 우상 숭배자들이었고, 간음자들이요, 동성애 창녀들이요, 도둑들이요, 탐욕자들이요, 술 취하는 자요, 사기꾼들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씻기웠고, 거룩하게 되었고,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 그러나 바울은 이는 불가능한 요구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또 다른 길이 있었다. 만약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이었을 것이다.
… 그러나 바울은 반대로 만약 이들이 진정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이들은 그리스도의 길과 그리스도의 마음도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좇는 깅를 항상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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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쯤엔 이미 전통적 유대교와 결별이 이미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다. 이방인 신자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의 식이법들을 알거나 지키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일곱째 날의 안식일(Sabbath) 대신,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난 첫째 날을 예배의 날로 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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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이 전체 인구의 7퍼센트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독특한 종교 생활 때문에 이방인 이웃들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많은 이방인들(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회당의 가르침이 심오하고도 정확한 지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항상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음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관심있던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God-feareres)“,즉 회당 예식을 관심있게 지켜 보는 자들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복음의 전파는 이 집단으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받았다. 기독교 설교가들이 이들에게, 할례 ─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모두가 모욕적이고도, 거부감을 일으키는 의식이라 생각하였던 ─를 거치지 않고도 유대교가 줄 수 있는 모든 헤택과, 또한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을 때, 이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이처럼 이미 준비된 상태의 엘리트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사도 시대와 그 후 시대의 전도 활동을 한데 비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성경(구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 신학 사상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윤리 가치관에 동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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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3세기 동안 신자들의 대부분은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 ─ 노예들, 여자들, 군인들, 상인들─ 이었다. 아마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시가 인구의 대부분이 이러한 계층에 속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골적인 기독교 반대자였던 켈수스(Celsus)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누구든 양식있고, 지혜롭고, 판단력이 있는 자들은 우리에게서 멀리 물러가라고 기독교인들은 소리지른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가치없고, 멸시받아 마땅한 인간들, 천치들, 노예들, 가난한 여자들, 어린 아이들을 호리려는데 있다 …. 오직 이러한 인간들만이 그들에게 속아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2세기 말경에는 이미 이 새로운 신앙이 제국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있는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 그리스도를 좇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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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로 변모하고 있었다.
P.52 복음전파의 원인들
첫째, 명백한 것은, 초대 기독교 신자들이 불타는 확신에 잡혀 살았다는 사실이다. … 하나님께서 시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셨으며, 신자들은 이 위대한 소식이 가져다 주는 창조적인 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둘째, 기독교의 복음은 당시 인간들이 널리 느끼고 있었던 내심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 예를 들어 고대 스토아 철학은, 인간들이 획득하고 보존할 수 없는 일체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는 것이 곧 행복을 이루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이하 원본 참고)
셋째로는, 기독교적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 아마도 기독교의 성공을 가져온 가장 강력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터툴리안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교도들까지도 “보라,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를!”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러한 감탄은 결코 놀리는 말이 아닌 진정한 감탄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자들, 과부들, 고아들을 돌보았다. 그들은 또한 감옥에 갇힌 자들, 유배 당하여 광산에서 노역하는 자들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또한 전쟁, 기근, 지진 속에서 구제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랑의 사역이 있었으니, 이는 교회가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장례를 맡아 치러 주었던 것이다. (이하 원본 참고)
… “도대체 유대인들 가운데 거지가 된 자들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신을 모르는 갈리리 당원들(기독교인들을 의미함)은 자기들의 빈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빈자들까지도 돌보는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속한 가난한 자들은 아무데서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마지막으로 많은 경우, 박해가 기독교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수천 명의 관객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순교의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순교자(Martyr)“란 원래 “증인(Witness)“을 의미하는데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바로 이러한 증인의 모습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이다.
로마의 공중들은 잔인한 광경에 익숙해 있었으나, 그렇다고 인간 본연의 동정심이 전혀 결여되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순교자들의 의연한 태도, 특히 남자들 이상으로 용기있게 죽어 갔던 젊은 여성들의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은 당연하다. 신자들은 고통 중에서도 기품을 지켰으며, 원수들에게도 예의를 잃지 않았고, 고난이야말로 주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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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로서 생각하여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을 수 많은 기록들을 통하여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이 처형 당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개종과 회심의 결단을 내린 이교도들이 생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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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신경
2023년5월7일 일요일 오전10:20
(집례자) 다함께 그리스도교 공동의 신조인 니케아 신조를 따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시다. (다같이) 우리는 하늘과 땅의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한 분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습니다.
또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 분은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요 빛으로부터 나오신 빛이십니다.
지음을 받지 않고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자체이십니다.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와 처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성육신하사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고난을 받아 장사되었고 성경대로 세 번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로 오르시어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영광중에 다시 오셔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시어 생명을 주시는 주 성령을 믿습니다.
그 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또 우리는 유일하고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한 번의 세례를 인정하고 죽은 자의 부활과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을 고대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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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위한레위기 1
Friday, July 2, 2021 19:42
2021.7.2(금) 20:20
본문: 레위기15장19~26절(월경중의여인의부정),
마가복음5장25절~34절(열두해동안혈루증을앓던여인)제목: 여인의유출
혈루증을앓던여인- 온갖시도를해보았다. 돈을다썼고, 의사를만나보았고, 할수있는것은다해보았다. 마가복음저자는이여인의고통이정말컸다는것을강조한다. 죄와는관계없는것처럼보인다. 이여인이오랜세월동안온갖재산을다쓰고, 노력을했다는것은이증상(불안)을치료하기 위해 세상의힘을빌렸지만, 결국엔절망밖에남는것이없었다.
레위기에서여성은월경기간동안부정하다. 레위기에서 부정은더럽다는의미가 아니다. 제의적표현이다. 옳다그르다의표현이아니라, 부정한상태로는성소로들어갈수없다는뜻이다.
기어다니는것(벌레)의시체를만져도 부정하다- 집안에죽은벌레가있어서치우는것도부정하여일정기간성소로들어가지못한다.
월경중인여성이앉던의자에 앉아도부정하다. 월경중인여자와접촉하여도부정하다.
지금도편의점에서생리대를사면종이봉투에내용물을알수없게포장하여건네준다. 레위기는월경에대하여 자세하게, 솔직히언급한다. 고대 이스라엘은적어도월경에대하여 폐쇄적인사회는아니었을것이다.
12년째월경을하는여인- 나병환자에준하게 격리생활을했을것이다. 혼자 살았을것이고, 당연히결혼도못했을것이다. 인생의가장아름다운시기를이렇게보냈을것이다. 2000년전의여성들은어떤소재의생리대를사용했을까? 천생리대였을것이다. 요즘에나오는생리대들도사용하기에불안해서새지는않았는지, 치마에 묻지는않았는지걱정하는데, 그당시는더했을것이다. 고대시대의의사는어땠을까? 대부분남자였을것. 이여인의삶이완전히 무너져 내렸을것이다. 성전에나갈수없고, 제사도 드릴수없었을것이다. 예수님에대한갖은소문들을들은여인은옷자락만만져도 나았을것이라는생각이있었다. 이여인은예수님의앞으로가서 만진것이아니라, 뒤쪽으로가서 몰래만졌다. 예수님과정면으로마주하지 않고나음을받은사람은이여인이유일하다. 왜뒤쪽으로접근했을까?
탈무드를비롯한고대 문서를보았을때고대 이스라엘사회는월경중인여성을매우 부정적으로생각했다. 월경중인여성에게축복하면하나님의이름이더러워지므로 축복하면안된다. 월경중인여성은머리를빗어도안된다. 월경중인여성이남성보다먼저 가서도 안된다. 밟는곳마다부정하게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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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에기록되어있는월경중인여성에대해 자세한규례들을지킨다면실제로는어떤일이일어났을까? 이여성은보호받고쉬게 되었을것이다. 이는7일이라는숫자가완전함을대표하므로 타당한생각이다. 이규례들을통하여여성을보호하고자하는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본능은피를두려워한다. 따라서 고대 이스라엘남성들은월경중인여성을불결하고 더러운것으로보았다.
심지어나병환자도예수님앞에서소리지르며 달려오는데, 중풍병자도친구들이밧줄로매달아지붕위에서내려오는데, 열두해동안혈루증을앓던여인은이렇게부정적인사회적인식때문에예수님의뒤로 접근했을것이다. 놀라운것은이여인이길거리로 나왔다는사실이다. 만약군중이이사실을먼저 알았다면매우 큰문제가 되었을것이다.
마가복음의본문을보면예수님은이여인을낫게할생각이없었다. 오직이여인의믿음이그여인을낫게한것이다.
예수님이당시사람들과같은생각이었다면, (여성에대한부정적인생각) 치료되었으니끝! 이었을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이여인에게자신의인생에관한구구절절말할시간과기회를주었고군중들은그이야기를들었을것이다. “딸아, 너의믿음이너를구원하였다. 너의병에서놓여건강해라. 평안히가라.”
종합하여보았을때오늘레위기의본문은여성을억압하기위한것이아니라, 보호하기 위한규례(계명)였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요한일서4:18
두려움… 코로나- 두려움을팔아먹는사업은두가지가 있다. 종교와보험. 우리가 평소에가치 있고옳다고생각하던것이두려움이관통하고나면그가치에 혼동이온다.
두렵다는말과같은말은혐오이다. Phobia. 지나친두려움에사로잡히면남는것은내안전에대한생각이다. 오직나. 내새끼. 내남편. 우리의안전을위협하는나쁜놈들을혐오하게된다. 그러나 만약상대가강하다면혐오하지못한다. 혐오할수있는대상은나보다 약자이다.
코로나초기 신천지, 이태원(게이 클럽)등이대표적이다. 물론그들은잘못했지만, 지나치다 싶을정도로(광적으로) 개신교계가반응했다.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여성, 남성등..
레위기15장을잘못읽으면여성을혐오하는이유를지지하는것처럼보인다. 그러나 사실은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두려움과편견, 글자가운데머물러계신것이아니라 성경가운데의의미와사랑을읽으셨다. 그리고 곰곰히생각하시고실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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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나에게.. 이말씀이왜있지? 당시에어떤의미였을까? 고대 이스라엘백성들의문화와예수님의말과행동에서성경을읽는방식에어떤차이점이있는가? 예수님은간음하다현장에서적발된여인에게왜기회를주셨을까? 레위기의전통과정반대되는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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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위한레위기2
2021년7월3일 토요일 오전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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